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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30) 다윗의 고백, 당부, 명령 역대상 28:1-10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은 저마다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의 위대한 고백, 베드로의 고백은 이렇게 되어 있지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다윗은 어떤 고백을 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많이 했던 사람인데, 그중에 제일 대표적인 고백은 시편 18편 1절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자, 먼저 여기서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 대단한 고백인데, 이것은 귀신들도 할 수 있는 고백이지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그래서 우리의 고백은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죠? 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주일 말씀을 적용해 보면, 예수님께서 바로 ‘그 선지자’라는 것을 확인하였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샤마, 듣고 따르는 것, 청종하는 백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확인하신 것은 당신의 하나님의 아들되심, 그 선지자되심을 알고 있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것이지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양을 먹일 수가 없고, 양을 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은 귀신들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귀신과 제자의 차이, 귀신과 사도의 차이, 귀신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차이는 하나님을 아느냐 모르느냐, 믿느냐 못 믿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되 믿되, 두려워 떠느냐, 사랑하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 다윗의 고백이 참으로 귀한 것이지요?
다시 한번 같이 고백해볼까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저와 여러분의 참 고백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자, 그렇다면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의 힘이 되어주심을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4절을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전에 나를 내 부친의 온 집에서 택하여 영원히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셨나니 곧 하나님이 유다 지파를 택하사 머리를 삼으시고 유다의 가문에서 내 부친의 집을 택하시고 내 부친의 아들들 중에서 나를 기뻐하사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느니라”(대상 28:4)
아시는 대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질 못했습니다. 사무엘하 16장에서 보듯, 그에게는 일곱 명의 형들이 있었고, 사무엘이 보기에도 “여호와의 기름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하고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집에 천덕꾸러기같은 취급을 당한 것 같지요? 사무엘이 기름부으러 왔을 때, 다윗의 형들은 모두 성결하게 하고 사무엘 앞에 서서 제사를 드리고자 하는데, 다윗은 여전히 들판에 양 떼를 돌보고 있었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일까요? 솔로몬 역시 왕이 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질 못했습니다. 다윗이 보기에도 어리고 미숙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의 어머니는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였지요. 다윗이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취한 일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끔찍한 죄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은 오늘 솔로몬이 왕이 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윗과 솔로몬을 여러 아들들 가운데서 선택하셨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다윗에게는 엘리압이라는 출중한 형이 있었고(삼상 16:6), 솔로몬에게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던 압살롬이라는 형이 있었습니다(삼하14:25). 사람의 눈, 사람의 기준으로는 분명 다른 형제들이 더 나았을 터인데,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과거와 현재를 보실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것까지도 보시는 하나님의 선택은 다윗과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래요. 다윗은 자신의 삶이 지금 이렇게 세워진 것, 전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 형들에 미해 미숙하고 볼품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고백처럼 모친이 죄악 중에 출생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선택하셨고, 이어서 다윗의 모든 아들 중에서 막내 솔로몬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은 물론 솔로몬을 선택하셔서 힘이 되어 주시고 왕으로 세워주셨음을 선언함으로, 솔로몬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고 인정할 것을, 그 놀라우신 하나님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 힘껏 섬기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다윗은 한 번 더 이야기를 합니다. 이스라엘 모든 고관들을 소집해서 자신이 얼마나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사실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감당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 여러 전쟁과 국사, 외교와 복지의 일들을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보내주시고 허락하신 지혜자들, 모사들, 친구들과 함께 잘 감당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하고 소원한 일 하나, 성전건축에 대해서 만큼은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게 하신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내 힘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작은 자기 아비의 집과 자신을 택하셔서 왕이 되게 하셨고 힘이 되어주셨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하나님께 웅장한 성전을 지어드림으로 그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었던 것이고, 올 열방에 하나님의 명성과 영광을 알리고 돌려드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왕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처럼, 성전을 짓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함을 인정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했고,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하나님의 뜻을 늘 받아들이고 인정했던, 내 생각과 내 뜻을, 그 분의 뜻 앞에 맞출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했지요? 사도행전 13장 21-23절까지!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를 통해 당신의 뜻을 다 이루겠다 마음 잡수신 사람,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겠다 하신 사람, 오늘 그 다윗의 특징이 뭐라고요? 내 마음에 맞는 사람, 자, 메시지 성경은 이것을 뭐라고 번역했다고 말씀드렸지요? 확인합니다.
“'I've searched the land and found this David, son of Jesse. He's a man whose heart beats to my heart, a man who will do what I tell him.'”(Acts 13:21-23, MSG)
“하나님의 심장에, 자신의 심장 박자를 맞추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하나님과 똑같이 심장이 뛰는 사람, 내 심장의 두근거림에 따라서 하나님을 이랬다 저랬다하며 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의하여 그 삶의 모든 것이 결정되었던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위해 자기 생명을 걸었던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이어 말씀합니다. 그런 그는 “내가 그에게 말한 것이라면 의지를 가지고 다 행할 사람이었노라”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했기에 성전을 건축하려 했고, 사랑했기에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성전건축의 욕심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입장, 일전에도 살펴보셨듯이 많이 서운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려는 참 선한 의도와 마음으로 성전건축을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몰라주신다고 생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a man who will do what I tell him”
여러분, 이게 참 사랑입니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 뜻대로 하는 사랑 말고,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고 그가 말한 대로 하는 사랑말입니다. “이게 왜 싫어? 니가 몰라서 그래! 이게 제일 좋은 거야! 내가 얼마나 수고하고 애썼는지 알잖아! 이렇게 하려고 다 준비했으니까 너는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라 오해, 착각한 가장 악한 폭력일 수 있는 것이지요.
아닌게 아니라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내 생각과 판단대로 사랑하고 섬깁니다. 내 심장이 뛰는 대로,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신앙생활합니다. 하나님도 교회도 말씀대로 섬기기보다 내 뜻대로 섬깁니다. 게다가 시간과 재물을 바치고 애정과 열정을 쏟기 시작하면 더더욱 타인의 의견과 생각에 귀를 기울이기 어려워집니다. 어느 순간 제일 많이 헌신하고 제일 많이 수고한 내 생각이 제일 옳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옳고 좋은 일이고 거룩한 일이라면, 그 일이 하나님께서도 바라시고 기뻐하시는 일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사고가 일어납니다.
한 번 더 물으셔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선하신 뜻인가를 말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보다 바른 섬김은 없습니다. 수많은 제사와 제물보다 그 말씀 청종하는 것이,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소아시아로 선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1차 선교여행 이후 내내 준비하고 밀어붙였지만,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사람을 보이실 때, 유럽으로 모든 뜻을 수정할 수 있었던 것이 오늘 저 사도바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던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확인해볼까요?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6-10)
그래서 오늘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8절입니다.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이 보는 데에서와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는 데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대상28:8)
뭐라고 말하지요? 여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기로 하라, 그냥 지키기로 하라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 네, 구하여서 지키기로 하라입니다. 무슨 말씀이지요? 네, 내 생각이 여호와의 뜻이려니 하지 말고, 하나라도 내 뜻대로 하지 말고,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모르는 것만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도 애매한 것도, 모든 계명을 구하여서! 하나님께 여쭙고 물어! 그 뜻대로 지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저와 여러분의 걸음은 저 세상보다 느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우리는 늘 물어 확인하고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저들이 가는 넓고 좋아보이는 길에 때로는 함께 갈 수 없는 사람들, 좁고 협착한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세상보다 느리다고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경험해 보셨잖아요. 빨리 가봐야 엉뚱한 길로 가면, 천천히 바른 길로 가는 우리보다 늦게 가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가는 곳에 못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는 분들, 하나하나 늘 주님과 동행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우리의 길을 걸어, 어두웠던 눈이 밝아 예수님을 알아보고, 또한 가슴이 뜨거워져,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끝으로 나아가게 되시는 우리의 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어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두 가지 당부와 한 가지 명령을 내립니다. 물론 다 명령입니다만, 확인해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9절인데, 오늘 솔로몬이 다윗의 고백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소원하며 당부입니다. 첫 번째가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라”입니다.
그래요. 이 말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지식을 가지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특별히 너와 나를 택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성취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을 허락하시며, 다윗의 악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왕조를 세우시고 지켜주신 하나님, 오늘 너 솔로몬을 택하시고 당신이 거하실 성전건축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순종할 수 있고, 나아가 그분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바르게 알아야, 그분을 이용만 하고, 두려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묵상하신 말씀을 빌리면, 하나님 앞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부터 이웃을 향해 사랑의 범위를 확대해가는, 영생을 살아가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부양, 생득권(본분과 사명, 은사와 달란트)을 가지고 우리가 서야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야 한다는 말씀을 다윗은 벌써 솔로몬에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가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입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뜻이고, 기쁜 뜻이란, 감사와 감격, 사랑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고자 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온전함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사랑, 우리의 섬김, 그 모든 마음을 감찰하시고 그 의도를 알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척할 수 없습니다. 겉모습만 회칠해 가지고는 썩어가는 무덤의 역하고 더러운 냄새를 가리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요. 왕이라는 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들은 저 세상의 왕들과는 달라야 했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자기 위에 아무도 없고, 오직 자기 아랫사람들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들은 ‘내 위에 항상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했던 것이지요? 이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내리막길로 치닫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척 해 가지고는 안되었습니다. 오히려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시지요? 다윗의 이런 당부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 품은 마음을 끝까지 품었다면, 온전한 마음으로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끝까지 섬겼다면, 늘 하나님이 내 위에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고 늘 그분을 찾고 만났더라면, 구하여 지켰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요. 만나지도 않고 찾지도 않으며 사랑한다고 섬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만나지도 않고 찾지도 않으며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식을 찾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고 사망 보험금만 54년 만에 찾아와 타가면 부모가 아닌 것입니다. 연인을 만나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그 뜻과 마음과 생각을 묻지도 않으며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찾으면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그를 버리면, 그는 영원히 우리를 버리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명령합니다. 10절입니다. “그런즉 이제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하니라”(대상28:10)
다윗은 하나님 앞에 진실함으로 삼가라는 경고와 함께, 힘써 행하라고 권하며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10절).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때, 열심히 해야 할 것, 힘써 행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혜롭게 분별해야 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을 내 삶 가운데 늘 경험하고 확인하며,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바르게 알고 그 일에 힘쓰는 지혜가 우리에게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그 지혜가 없어, 오늘도 우리는 엉뚱한 일들에 힘을 다 쓰고, 정작 하나님의 명령과 사명은 감당할 힘도 없고, 하려고 하나 이내 지치고 탈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찾아 만나고, 그분의 마음을 구하여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요. 우리의 삶,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를 지으시고 이곳에 나를 보내신 분이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나를 지은 분, 창조주가 계심을 기억하고, 나를 다스리시는 통치자가 계심을 기억하고, 나를 심판하시고 구원하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이제부터는 더더욱 그분을 귀찮고 두려운 존재로 여기는, 나를 괴롭게 말고 얼른 여기서 떠나시라고 말하는 귀신의 믿음 말고, 그분을 사랑하기에 순종하는 믿음,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행함으로 보일 수 있는 산 믿음이 우리의 것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더욱 우리 하나님을 찾아 만나 구하여, 오늘 우리의 삼갈 것과 힘써 행할 바를 확인하시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된 교회와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돌보고 더욱 세워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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