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6일
열차는 베니스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치아다. 베니스는 영국식 표기다. 어릴 적에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으면서 베니스라는 도시를 알게 되었는데, 그때 베니스가 영국의 어느 항구도시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세익스피어가 영국사람이었고, 영국이 대외무역으로 번창을 구가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항구도시인 줄은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되었다.
베네치아는 기적의 도시다. 바다 가운데 모래로 둘러 쌓인 수많은 석호( 강릉의 영랑호가 경포호 같은 염호)에 사람들이 정착을 시작한 것이 2천년이 된다. 처음에 온 사람들은 어부이고, 그 다음에 정착한 사람들이 염전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소금이 귀한 시절이 염전업자들은 여기에 정착할 만한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이들이 여기에 모여들기 시작한 때가 예수 탄생과 비슷한 시기다. 베네치아를 대리석의 기적이라고 한다. 염호에 축대를 쌓고 바닷물을 빼고 세상에 있는 온갖 것을 다 모아서 매립을 한 다음, 바닥을 돌로 깔기 시작하면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억척스럽게 삶의 조건을 개선해 나온 사람들이 베네치아의 선조들이다. 물이 귀한 곳이라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한 방울도 바다로 보내지 않는다. 광장 같은 데 가면 가운데 우물 같은 게 있어 여기에 무슨 샘이 있을까 하고 물어보니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담는 곳이라 설명한다. 대형화물선은 물과 생필품을 실어 날랐다. 1800년대 말 열차가 들어오면서 베네치아 주민들의 모든 생활여건은 훨씬 나아졌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의 수로나 육상의 도로들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지배당시 완성되었다 한다.
운하의 도시, 곤돌라의 낭만이 있는 도시, 이태리 여행을 가면 제일로 가고 싶었던 도시,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서 내렸다. 역광장 바로 앞이 바닷물이 출렁이는 운하다.

작은 수레를 가진 짐꾼들이 호객을 한다. 가격을 물어보니 20유로, 가격을 좀 깎아서 가자니 안된다고 고개를 젖는다. 그냥 캐리어를 밀고 가기로 했다. Google Map에 의지하여 숙소를 찾았는데 많이 헤맸다. 짐꾼들이 부른 가격이 결코 바가지요금이 아니었다는 수긍이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유대인들만 사는 게토에 있다. Kosher(고셔)라는 유대인 고유의 음식을 팔고 검은 빵모자 키캅을 쓰고 검을 복장을 한 유대인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호텔 로비에 들어가는데 엄격하게 신원을 확인하고 나서 문을 열어주는데 좀 유별나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지독한 유대인 샤일록이 얼핏 떠올랐다. 유대인 특유의 과잉방어 습관이 드러나 보인다. 우리 앞에서 체크인을 하던 젊은 사람들도 유대인 인데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를 거쳐 왔다고 한다. 그도 검은 옷에 키캅을 썼다.
짐을 풀고 번화가를 찾아 나섰다. 베네치아의 거리에는 자동차가 없고 오토바이도 없다. 오직 손수레만 다닐 뿐이다.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사람들의 흐름만 따라가면 명소를 다 돌아볼 수 있었다. 레알토 다리 산마르코 광장을 돌아보았다.

레알또 다리

저녁녁에 곤도라 선착장에 갔다. 오후 7시 이전에는 80유로, 7시 이후에는 100유로를 받는다. 100유로짜리 곤도라를 선택했다. 오래 그려왔던 베네치아의 곤도라에 타게 된 것이다. 곤도라는 좁은 수로를 따라 돌아간다.

본젤라또 아이스 크림: 장미 꽃 모양인 데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손과 어울리지 않는다



저녁녁에, 물위에서, 좁은 골목 수로에 울림이 아주 좋다. 머뭇거리지 않고 준비해왔던 노래를 불렀다. 무정한 마음, 남몰래 흐르는 눈물, 산타루치아, 오솔레 미오 등의 이태리 가곡과 마지막에는 한국 가곡 뱃노래를 불렀다. 다리위에 관광객들의 박수가 터져나왔고, 뱃노래를 부를 때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환호를 보내주었다. 삼십분이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노래 다섯 곡을 부르니 곤도라를 내릴 시간이 된 것이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베니스 곤도라 여행에 관해서 잘못된 안내가 있다. 곤도라를 젓는 사공 곤도리가 노래를 아주 잘 불러서 관광객을 호사시켜준다고 안내가 되어있는데, 이것은 순 엉터리였다. 내가 탄 곤도라의 곤도리에게 노래를 불러보라 권했더니, 나는 곤도라를 운전하는 사람이지 노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툭 털어버렸고, 이웃배의 곤도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곤도라를 타는 동안 노래를 불러주는 곤도리는 하나도 없었다. 혹시 이것을 착각한 것은 아닌지. 베네치아를 안내하는 가이드 중에 이태리에서 성악을 전공했던 사람들이 여행가이드로 전업을 하여, 관광객이 곤도라를 타면 목이 좋은 곳에서 노래를 불러준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곤도라를 내려서 다시 산마르코 광장에 갔다. 대운하를 따라 걷는 저녁녁의 경치가 아름답다. 때마침 거대한 크루즈 선이 들어와 대운하는 통과하고 있다. 비가 한 방울 씩 떨어지고 건너편 섬 쪽에서 번개가 계속 치는 데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놀다보니 시간이 많이 늦었다. 돌아올 때 수상택시를 탔다. 종일 돌아다녀 피곤해서 배안에 쉬고 있으려니 밖으로 나오라고 성화가 심하다. 배 밖으로 나오니 밤바람이 상쾌했다. 수상택시는 베네치아 운하를 미끄러지듯 물길을 헤쳐나간다. 다시 노래를 불렀다. 밤바다라 울림이 좋았다.

아까부터 택시 운전사는 여행객의 낭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핸드폰 통화하느라 바쁘다. 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 그리고 스스로의 노래에 나르시즘을 가지고 있는 가객이 있으면 충분하다. 알고 있는 이태리 노래는 다 불렀다.
밤바다와 베네치아의 야경에 취해서 황홀경이 되었다.
아차차! 택시를 내려서 숙소에 와서 보니 목에 걸었던 카메라가 없다.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다.
8월 7일
산마르코 광장 택시를 탔던 곳에 가서 어제의 택시 운전사를 찾았더니 없었고, 도크에 정박하고 있는 택시 운전사들에게 카메라를 찾을 수 있는 방범을 물어보니 택시비 영수증이 있으냐 물어보았다. 영수증을 받아 놓지 않았다 했더니 그러면 어렵다 했다. 베네치아에 수십개의 택시회사가 있고, 수백대의 택시가 있는데 알아볼 방법이 없고, 그리고 어제의 운전사는 오늘 쉬고 있을 거라 했다.
로마에서 핸드폰 잃어버리고 베네치아에서 카메라 잃어버리고 이번 여행에 찍은 좋은 사진을 다 잃어버렸다. 허전한 마음 그지 없다. 포기하고 다음 여정에 올랐다. 아직 늙지 않은 나이인데 벌써 정신이 빠졌나. 반성해야 겠다.
이태리 여행의 옥에 티, 카메라 핸드폰 잃어버린 것. 다행히도 지갑은 무사했음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근의 부라노 섬과 무라노 섬을 둘러보았다.
부라노 섬

무라노 섬

무라노 섬은 유리공예품이 아주 수려했다. 이곳에는 유리장인이 많이 있고, 유리를 녹이는 가마가 있다. 매장 여러군데를 돌아보고 앤티크한 거위 깃털펜하나를 샀다.

서재에 놓고 매일 바라보며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8월 8일
이태리 여정을 베네치아에서 마치고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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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다.. 덕분에 구경 잘 했고 목은 괜찮은지? 옥에 티가 분실물 뿐이 겠는가 여행중 아프면 정말 곤란하지...
아프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안했지만 토스카나 와이너리간 이후로는 매일 밤 팔이 아려서 잠을 이뤘다.
한 일주일은 재미있었고, 나머지 열흘은 억지로 끌려 다녔다.
다시 오기도 쉽지 않았고, 비행기 삯도 만만치 않았으니
제주도만 같았어도 바로왔겠지.
이제 나이듬을 인정해야겠다. 조심해야지
내눈 내발로 구경 한것처럼 생생하고 자상한 여행담 이었네 귀경한번 잘했네 고마워유 ~~~^^건강하세요
그래요. 건강하지 못해서 전주 병원다니고 있어요. 학산은 잘 있지라우, 언제 학산이나 한번 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