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Secret Sunshine)
최용현(수필가)
‘밀양’은 이청준 소설가가 1985년에 발표한 중단편소설 ‘벌레이야기’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작가 겸 감독이 직접 각색하고 제작까지 맡아 2006년에 연출한 영화이다. 여자주인공 전도연은 이 영화로 2007년 칸영화제에서 우리나라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를 필두로 이 영화는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남녀주연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다.
영화의 제목은 경남 밀양이라는 지명에서 따온 것으로, 한자로는 빽빽할 밀(密) 또는 비밀 밀(密), 그리고 볕 양(陽)을 쓴다. 밀양이 한 여름에 전국 최고 온도를 기록하여 자주 방송에 나오는 것과 밀양에 벼 품종 등을 개량하는 기관인 국립식량과학원 남부작물(舊 영남작물시험장)이 있는 것은 분명히 빽빽한 햇볕과 관련이 있다. 영어제목 ‘Secret Sunshine’은 ‘비밀스런 햇빛’이란 뜻이다.
남편과 사별한 33살 신애(전도연 扮)는 5살 아들 준과 함께 남편의 고향으로 가던 중 목적지 밀양을 5km 앞두고 차가 고장이 난다. 연락을 받고 온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 扮)은 모자(母子)를 밀양까지 인도한다. 이곳에 정착하기로 한 신애는 먼저 살 집을 구한 다음, 전공을 살려 피아노 교습소를 열고, 아들을 웅변학원에 보낸다. 그리고 주위사람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약간 허세를 부려 여기저기 땅을 보러 다니기도 한다.
39살 노총각 종찬은 처음부터 신애에게 마음이 끌려 신애가 살 집을 구할 때나 피아노 학원을 차릴 때도 살뜰히 챙기고 보살펴준다. 또 신애가 땅을 보러 다닐 때도 여기저기 알아봐주고 따라다닌다. 그러나 신애는 그런 종찬이 더러 고마울 때도 있지만, 별로 달갑지 않고 거북하다. 그럼에도 종찬은 계속 신애를 쫓아다닌다.
어느 날 밤,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아들 준이 보이지 않는다. 좀 있으니 협박전화가 온다. 신애는 준이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도움을 청하려고 종찬의 카센터로 뛰어간다. 그러나 종찬이 카센터에서 노래방 기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돌아선다. 신애는 무작정 도로를 걷다가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유괴범은 전화로 목돈을 요구한다. 신애는 은행에서 찾은 돈과 신문지로 돈다발을 만들어 요구한 장소에 가져다 두지만, 결국 준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웅변학원 원장의 중학생 딸이 신애의 피아노교습소를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찾는 모습이 수상해서 신애가 경찰에 신고를 하는데, 결국 웅변학원 원장이 체포된다. 땅을 보러 다니는 신애가 돈이 많다고 생각하여 아이를 유괴했던 것이다.
준의 사망신고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신애는 갑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라고 쓰인 현수막을 보고 교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신애는 피울음을 토해내듯 오열하는데, 목사가 신애의 머리 위에 가만히 손을 얹자 놀랍게도 울음이 그친다.
신애는 기독교에 귀의한다. 가정에서 하는 기도회 모임에도 열성적으로 참가하고 포교도 한다. 종찬도 신애를 따라 교회에 나가고 교회 행사에도 앞장선다. 신애는 교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며 이제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그리고 종찬과 함께 교도소에 찾아간다.
유괴범은 신애의 예상과는 달리 말쑥한 모습으로 면회장에 나타난다. 그리고 신애가 용서에 대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이미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한다. 신애는 억장이 무너진다.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기 전에 하나님이 어떻게 먼저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교도소에서 나오던 신애는 길바닥에 쓰러진다.
신애는 기도회를 하는 집 창문에 돌을 던진다. 그리고 가게에서 훔친 CD를 부흥회에 가서 몰래 틀고 볼륨을 올린다. 김추자가 노래하는 ‘거짓말이야’가 설교 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진다. 또 자신을 교회로 이끈 장로를 드라이브하자고 유혹하여 불륜을 저지르면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째려본다. 그날 밤에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은 신애는 피를 흘리며 거리로 뛰쳐나와 ‘살려주세요!’ 하며 절규한다(소설에서는 신애가 자살한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신애가 머리를 자르려고 종찬과 함께 미용실에 들러 그곳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유괴범의 딸과 조우하게 되고, 그 딸에게 머리를 맡겼다가 갑자기 뛰쳐나온다. 집에 돌아온 신애가 마당에서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데, 어느새 종찬이 와서 거울을 들어준다. 신애의 잘린 머리카락이 나뒹구는 마당 한구석에 햇빛이 비치는 장면을 한동안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밀양’의 직접적인 모티브는 중학교 교사 주영형이 도박 빚 때문에 제자를 살해한 이윤상군 유괴살인사건(1980.11)이다. 이창동 감독은 1984년에 5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치밀한 각본과 연출은 감독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유괴범이 뻔뻔스럽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하여 관객들의 공분을 사는데, 이것은 자칫 반기독교적 정서를 자극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은 ‘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다’고 밝힌 바 있으며, 마태복음 5장에 ‘예물을 제단에 올리려다가 네 형제에게 원망 받을만한 일을 한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구절이 있다. 교리의 문제는 아니다.
‘밀양’에서 다룬 주제는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회개’와 ‘용서’이다. 쉽게 생각하자.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신애가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용실에 들른 것은 자신의 심경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마지막 장면에서 마당 한구석을 비춰주는 햇빛은 한줄기 햇살만으로도 삶은 영위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네, 감사합니다.
월산처사님 안녕하세요. 밀양 즉 Secret Sunshine과 관련한 매우 다양하고 중요한 자료 대단히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영화 밀양에 관한 많은 정보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밀양은 제가 중학교까지 나온 제 고향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