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내 몸이 안스러워
개암 김동출
늙어 가는 것을 두고 세간에서는 '익어 간다'며 아련하게 미화하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늙음이란 매 순간 서글픈 일이다. 특히나 늙으막에 예기치 못한 병치레라도 겹치는 날이면 그 서러움은 가슴 깊이 파고든다.
젊은 시절, 직장 선배가 허리 디스크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생하던 모습을 보았을 때는 그저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결코 그러지 않으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얼마 전 나 역시 까닭 없이 머리를 감고 욕조를 나오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통증에 짓눌려 아내의 도움을 받고서야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타박상이려니 여겼다. 며칠 지나면 자연스레 나아지겠지 싶어 가볍게 넘기려 했으나, 사흘쯤 지나자 오른쪽 엉치 부근에 새파란 멍이 묵직하게 피어올랐다. 구급약통에서 멘소래담을 찾아 며칠 동안 마사지하듯 발라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진작 정형외과를 찾아 바른 진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한의원에서 일주일 넘게 침을 맞으며 시간을 지체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얼마 전 고관절이 불편해 MRI를 찍었던 종합병원 정형외과를 다시 찾았다. 담당 의사는 디스크 협착증인 것 같다며 물리치료와 함께 열흘 치 약을 처방해 주었다.
하루 세 번 제때 약을 복용하며 찜질과 전기치료, 척추 견인치료까지 꾸준히 받았지만 차도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아들과 상의한 끝에 아들이 권해준 전문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그날 오후, 신앙 안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박 유스티노의 차를 타고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전문병원의 정형외과 의사는 엉덩이 부위를 중심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X-ray를 찍게 한 뒤, 촬영한 사진을 보며 뼈의 문제보다는 척추 관련 질환이 의심된다며 원내 척추 전문의에게 진료를 의뢰해 주었다.
신경외과 전문의 선생님은 증상을 세심히 묻더니 CT 촬영을 권했다. 영상실로 올라가 하의를 갈아입고 촬영을 마친 뒤 신경외과 진료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전광판에 내 이름이 띄워졌다.
의사 선생님은 그간 거쳐 온 어느 의료진보다 친절하고 명확했다. 화면에 띄워진 CT 사진 속 척추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 주셨다. 나의 통증은 척추 4번과 5번 사이의 디스크가 돌출되어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을 건드려 일어난 증상이라고 했다. 다행히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니 우선 신경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복용하며 일주일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다. 신경주사를 맞고 나자 마음 탓인지, 아니면 주사의 효능 탓인지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대기실을 둘러보니 나처럼 몸의 통증을 짊어진 환자들로 가득했다. 저마다의 고통과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온 그들의 얼굴에는 나와 똑같이 심각하고 깊은 그늘이 서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슴속에 만감이 교차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안일함과 미련함이 결국 병을 키운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아릿하게 자책으로 물들었다.
돌아보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크고 작은 병원 문턱을 드나들었다. 네 살 무렵 할아버지의 따스한 등에 업혀 병원으로 향하던 아련한 기억부터, 대학 1학년 시절 치렀던 충수염 수술, 마흔 초입에 당한 교통사고로 오른쪽 정강이뼈가 분쇄되어 부산의 뼈 전문병원에 장기 입원했던 고통의 시간들, 그리고 2001년 불어닥친 심근경색까지…. 평생을 따라다니며 심신으로 나를 괴롭혀온 심장병은 2020년 4월, 기적 같은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서야 비로소 밝은 빛을 보게 되었지만, 그 이후의 사후 관리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은 삶의 과제를 던져주었다.
이제야 겨우 숨을 돌리고 '살 만하다' 싶었더니, 뜻밖의 낙상으로 또다시 이런 시련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평생을 파도처럼 밀려오는 병마와 싸우며 여기까지 지탱해 온 고단한 내 몸인데, 제때 아껴주고 보살피지 못해 다시금 통증을 짊어지게 한 나 자신과 아내를 비롯한 나의 가족에게 참으로 미안하고 애틋할 따름이다.
바오로 형님께서는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하시는 따스한 말씀으로 살그머니 내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셨다. 앞날을 가로막은 막막한 안개 속에서도, 간절히 올리는 기도 한 자락에 살포시 희망의 온기를 품어본다. 지나온 삶의 궤적을 차분히 정리하고 정성껏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태산처럼 쌓여 있으니, 가슴 한구석은 자꾸만 조급함으로 일렁인다.
어느덧 계절은 바야흐로 가을의 깊이를 더해가며 붉게 물들어 간다. 문득 그 옛날, 청량했던 젊은 날의 친화회 친구들과 내장산으로 단풍놀이를 떠났던 그 환했던 날이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강물처럼 아득히 흘러가 버린 세월이지만, 소중했던 우리들의 거리마저 멀어지지는 않을까 괜스레 조바심이 난다.
당분간은 다른 탐욕을 내려놓고, 허리를 보살피고 치유하는 일을 삶의 으뜸으로 삼아 조용히 거닐어야겠다. 모나고 굽어진 길을 바르게 이끄시어 치유의 은총을 가득 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치명자들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원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에도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6년 10월 17일
첫댓글 아이구 무슨 말로 위로해얄지, .....
이것을 겨울호 수필로 실으면 좋겠네요. 한두 편 추가하여 이달에 만난 수필가 등등의 타이틀로 ....표지에도 나오게 하고 말이지요.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