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탈바꿈
놓아 버림 기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변화가 매우 뚜렷하게 보인다. 그런 변화가 자신의 삶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다만 때로는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진전 상황을 계속 의식하고 자각할 수 있도록 목록으로 만들어 놓고 성과가 생길 때마다 체크할 것을 권한다.
높은 수준으로 제구실하는 일은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권리라고 처음부터 자신에게 일러두어도 된다. 그것이 본연의 상태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영향을 받은 프로그램 일체에게 그 상태를 빼앗겼을 뿐이다.
먼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한결 높은 수준으로 제구실하는 일에 대한 저항을 놓아 버리겠다고 마음 속으로 결정하면 좋다. 이것은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스스로 부인하기를 그만두고 행복, 성공, 건강, 받아들임, 사랑, 평화를 가로막는 모든 걸림돌을 놓아 버리겠다는 결정을 의미하는 행동이다. 이렇게 하면 할 일을 이미 다 한 것이다. 저절로 펼쳐지기 시작할 맥락에 경험 전체를 고정시켰기 때문이다.
건강
사람은 보통 몸에 사로잡혀 있다. ... 마음은 대단히 다양한 방법으로 몸을 방어하기 위해 먹는 일, 몸무게, 운동, 건강에 좋은 환경에 과도하게 신경 쓴다. 이런 마음속 긴장 속에서 하루가 끝나면 누구나 자신이 피해자라고 느낀다. 진이 빠지고, 공허하고, 너무 피곤하다.
모든 관심사의 바탕에는 '나는 몸이다'라는 무의식적 등식이 깔려 있다. 영적 세계에서는 사실상 '의식이 되지 않는' 상태로 본다. 자각이 뚜렷이 좁아진 데서 비롯하는 동일시 오류이기 때문에, 마치 경주마가 좌우를 보지 못하는 눈가리개를 쓴 상태와 같다.
끊임없이 몸에 사로잡힌 탓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지를 자각하라..... 다양한 대응책으로 모든 '위험'을 상쇄하려는 강박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런 취약성은 마음의 산물일 뿐이고 몸은 마음에 품은 것에 반응한다.
모든 공포를 놓아 버리고, 신념 체계들을 취소하고, 나의 진정한 큰나는 '무한'하며 어떤 제약에도 영향 받지 않음을 거듭 확언하는 일에 들어가면, 건강과 행복, 필수 에너지가 한결 높은 상태로 옮겨간다.
자신에게 확언하는 데 도움이 되는 표현법은 이렇다. "나는 ( ) 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무한한 존재'다." 괄호 안에는 '위험'으로 여기도록 내 마음에 프로그래밍된 질병이나 물질을 뭐든 넣는다.
항복한 사람은 어떤 것이든 먹을 수 있고, 아무 데나 갈 수 있고, (생략) ~에 대한 공포에 더 이상 영향 받지 않는다. 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 이제 몸이 꼭두각시 인형이나 반려동물처럼 느껴진다. "나는 몸이다."에서 "나는 몸이 있다."로 인식이 바뀐다.
마음 없이 몸을 지각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마취가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마음이 잠들면 몸은 감각이 없다.
무의식은 질병을 움켜쥐고 그것을 보복에 활용한다. 내면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항복하면, 보복도 갈수록 줄어든다. 그래서 부정성과 죄책감에서 벗어난 사람은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난다. (생략)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 시점에서 그녀는 ⌈기적 수업 ⌋ 워크북을 공부해 죄책감을 포기하는 방법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 가정 학습 코스는 365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짧은 가르침을 묵상하는 구성인데, 코스를 밟으면서 그녀는 용서 기제를 통해 모든 죄책감과 울분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부정적 감정을 끊임없이 용서하고 취소함으로써 내면의 죄책감을 제거하자 다발성 경화증이 나아졌다. (생략) 카르마적 성향 같은 미지의 요인으로 인해 질병이나 병약한 상태가 수그러들지 않는 드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부단한 항복은 치유를 불러온다.
부
한정적 신념 체계와 부정적 생각, 부정적 감정을 품고 있는 마음에게 돈은 '문제'다.
무의식은 자기 딴에 우리가 받을 만하다 싶은 것을 우리에게 안긴다. 죄책감이 쌓여 내가 나를 보는 관점이 좁고, 한정되어 있으며, 인색하다면 무의식은 그에 맞는 경제적 상황을 안겨 준다. 돈이 의미하는 많은 것을 바라볼 때 돈에 대한 마음가짐이 어떠한지 드러나기도 한다.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자리에 앉아 '돈'이라고 제목을 쓰고 그 밑에다 삶의 모든 다양한 갈래에서 돈이 분명히 의미하는 바를 자세히 적어 보면 매우 도움이 된다. 그런 다음, 각 부분과 관련되는 감정을 적고 각각의 부정적인 감정과 마음가짐을 항복하는 일에 들어간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돈이 그 자체로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 아님을 알게 된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으로 얻고 싶어 하는 감정적 만족이다.
돈이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한 목표는 곧바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항복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내적 외소함과 자신 없음, 낮은 자존감에서 자유롭다. 그때 돈은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도구가 될 뿐이다. 항상 충분하고 넉넉할 것임을 알기에 내면에 안도감이 있다.
행복
행복은 곧바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그런 점에서 행복은 건강이나 부와 무관하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판단과 비판을 포함하는 부정적인 감정, 생각, 마음가짐 때문에 우리는 자주 자신이 타인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낀다. (생략) 이런 내면의 부정성으로부터 "사람은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다."와 같은 신념이 생긴다. 사실 이보다 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도 없다. 임사 체험을 다룬 책들이 밝히고 있듯, 사람이 혼자라고 느낄 때는 살아 있는 동안이고, 죽음의 순간에는 전적으로 일체성과 연결성을 느낀다.
우리는 내면의 공허감을 직면하는 일만 피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뭐가 되었든 활동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런 활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활동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방식은 어떤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내면이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똑같은 사건과 경험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마음가짐을 포기할 때, 세상에 넘겼던 힘을 되찾는다.
많이 놓아 버릴수록 세상에서 매력을 많이 벗겨 낸다. 세상에서 매력을 많이 벗겨 낼수록 세상에 덜 휘둘린다. 매력에 영향 받지 않아, 더 이상 매력으로 조종당하지 않는다.
항복한 사람은 더 이상 개인적 성취에 타인이 필요하지 않다. 사랑과 즐거움을 위한 선택에 의해 타인과 함께할 뿐이다. 타인과 그들의 인간성에 대한 연민이 자신의 삶과 모든 인간관계를 바꾼다.
내적 자유의 상태
끊임없이 항복할 때 삶은 어떻게 될까? 어떤 일이 가능할까? 항복한 상태에서는 만족의 근원이 바깥 세상에 있지 않기 때문에 바깥 세상과 무관해진다. 행복의 근원을 내면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유롭고 보살피는 자세로 타인을 받아들인다. 느긋하고도 활기차며 에너지가 넘친다.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저절로 쉽게 진행된다. 더 이상 남을 위해 희생하거나 뭔가를 '포기'한다는 동기에서 행동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타인과 세상에 사랑으로 봉사한다고 여긴다.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도전 과제가 아닌 기회로 본다. 성품은 온화하고 개방적이며, 부단히 놓아 버리고 항복하는 자발성이 있다. 끊임없이 계시를 받는 과정이 내면에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는 몸이다.'라고 동일시한다. 그러나 항복 기제가 계속되면서 '나는 몸을 느끼는 마음이지 몸이 아니다.' 라는 사실이 매우 뚜렷해진다. 감정과 신념을 더욱 항복하면서 마침내는 '나는 마음도 아니다. 나는 마음과 감정, 몸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어떤 것이다.'라고 자각한다.
내면을 세심하게 지켜봄으로써 바깥세상 또는 몸이나 감정, 마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변함없고 동일하게 그대로인 어떤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 자각과 더불어 완전한 자유의 상태가 온다. 내면의 큰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제 자신이 시간을 벗어난 공간이며 그 속에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스크린 상에서 깜빡거리며 드라마를 펼치는 이미지가 아니라 스크린 그 자체다. 삶에서 펼쳐지는 영화를 비판 없이 목격하는 자이며, 시작도 끝도 없고 잠재력은 무한하다. 이렇게 자신의 참된 본성을 깨달을수록 '의식'의 정체성과 '신성 그 자체'에 대한 '궁극의 깨달음'이 일어날 장이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