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의 화해 (2)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전통(傳統)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은데,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가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전통과의 화해’ 혹은 ‘전통으로 회귀’라는 생각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듯해서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1 – 주인공인 나의 동양적 기법으로 그림 그리기
나는 외모를 바탕으로 실물과 닮게 그려주는 단순한 초상화에서 동양적 오랜전통의 하나인 영혼을 담은 기법으로 인물을 그려내는 회화 세계로 돌아온다.
2 –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의 작사 아마다 도부히코의 서양화에서 동양화(일본화)로 회귀
친구 아버지(아마다 도부히코)는 젊은 시절(1920년대) 서양화가로 일본에서 명성을 떨친다. 그리고 더 나은 공부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갔다가 일련의 정치적 사건으로 급거 귀국하고 만다. 귀국 후에는 전쟁을 피해 일본의 후미진 시골로 숨어 들어가 일본화에 대한 기법을 배우고 익혀 전쟁 후 그 명성을 떨치게 된다. <기사단장 죽이기>도 테마는 서구에서 따왔지만 그림은 일본적인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3 – 가족으로 회귀
1)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에게 접근해서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요구하는 거대한 부호 멘시키씨는 알고 보면 그 원래적 의도는 주인공의 집 뒤, 어느 시골 주지의 저택에 사는 어린 소녀가 자기의 딸일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노후에 접어들어 하나 밖에 없는 혈육인 딸의 근처로 다가가는 가족이라는 혈연집단이 지닌 전통과 관련이 있다.
2) 주인공인 나는 아내로부터 어느 날 이혼을 통고받고 떨어져 살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을 못 잊어한다. 그로부터 7개월 후 뜻하지 않은 아내의 임신(주인공과의 사이에서 생긴 임신은 아닌)을 듣고도 주인공은 아내와의 재결합을 강력하게 원해 그 과정에서 아내의 허락을 얻게 되고, 자기의 핏줄이 아님에도 아내가 낳은 딸을 자신이 기르게 된다.
4 – 불교나 동양적 초자연적 현상으로 현대적 삶을 돌아보기
주인공이 사는 집 뒤에는 오래된 마을 사당터가 있고 그 터 지하에는 사람을 묻었을 법한 우물같이 생긴 구덩이가 하나 있다. 주인공의 한밤중인 수면을 깨웠던 희미한 방울소리의 근원지이자 방울이 발견된 자리이기도 하다. 이 구덩이는 작품 속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이야기 세계 속으로 주인공과 독자를 끌고 들어가는데 이 부분의 이해에 있어서 선행되어야 할 학습은 동양 전래의 종교인 불교와 일본 고대 사회의 정신 세계이다.
위에서 지적한 4가지 요소는 작품 줄거리 전반을 이끌고 가는 커다란 4가지 맥이랄 수도 있는데, 이 요소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과거 전통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었고 난 그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작품 전반의 이해를 위한 핵심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