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여,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네!
당신을 사랑하게 해준 것은 축복이었네!
아내여, 지금도 사랑할 수 있는 나는 진정한 남자였다네!
흘린 눈물마저 부끄럽지 않은 나는 행복한 남자라네…….
........인생의 절벽에 선 나에게 .......큰 희망을 주었던 이 칼럼!
인생의 절벽에서 쓰기 시작했던 ‘아내와 함께 떠나는 배낭여행’이란 이 칼럼....
2000년 11월부터 올리기 시작한 이 칼럼은 여러분과 함께한지 오늘로 꼭 183회째가 되는군요.
여러분과 함께한 이 칼럼은 어느 날 갑자기 백척간두에 서 있는 나에게
하나의 신선한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우리들 삶의 곳곳에서 게릴라처럼 도사리고 있다가 불시에 쳐들어오는 고난의 절벽.
그 암흑 같은 절벽은 시도 때도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중년이란 산을 오르고 있었던 찰나에 아내가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언제 꺼져버릴지 모르는,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은 여자였습니다.
나는 이런 아내와 숲에서 살고자 1998년 1월, 멀쩡한 직장에 희망퇴직이란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떠나 숲으로 가는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어느 날 밤,
실 날 같은 기력을 회복한 아내가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 이렇게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기력이 있을 때 어디론가 떠나요. 그저 이대로 내일만을 기다리지 말고... 차라리 긴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우리가 내일을 찾아가면 되잖아요. 여행을 다녀오면 투병생활의 지치고 고통스런 마음들이 치유되어 한결 나아질 것도 같아요. 그러니 우리 조금 덜 아플 때 함께 여행을 떠나요. 남아있는 시간들이 노력하며 사는 순간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를 향해 이 말을 던진 아내를 회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해지고 괜히 허공을 쳐다보게됩니다.
나는 눈물이 많은 남자이기도 합니다.
마음으로 우는 남자, 눈물을 집어삼키는 그런 약한 남자입니다.
언제 인생의 끝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하며 그 끝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아내를 바라보며
그 날밤 나는 아내 몰래 소리없이, 한없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그 날밤 일을 생각하노라면 목구멍으로 눈물을 와락 삼키게 됩니다.
아내의 간절한 소망에 따라 배낭하나 걸머지고 무작정 아내와 함께 단 둘이서만 긴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뉴질랜드 남섬의 밀포드 사운드.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들의 공연
... 여행이란 묘약 ...
병실의 침대에서 죽느니 차라리 세상을 걸어 다니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떠나자고 하는 아내의 말은 나의 마음을 격렬하게 요동치게 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병든 아내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이렇게 나에게 삶과 죽음의 화두를 화살처럼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난 지금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고,
사람들이 내게 어떤 짐을 챙겨야 하는지 듣고 싶어하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일들을 하라구.
그런 일들을 하게 되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순간 루게릭 병으로 죽어가며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모리교수의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마치 ‘지상에서 마지막 동행’이라도 하듯이 모든것을 뒤로 접어둔 채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건 너무도 위험한 도박과도 같은 여정이었습니다.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고, 수백개의 주사바늘과 한 보따리의 약을 걸머지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그런데...
아내는 놀랍게도 여행을 떠나면서부터 생의 강한 의욕을 찾으며 건강을 회복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여행에서 오는 묘약인지,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기적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하여간 여행을 떠난 이후로 아내의 심신이 건강해 진것만은 여실합니다.
휠체어를 밀어주고, 죽과 약을 먹여주고.... 해야만 했던 아내였는데......
이제 아내는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되찾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
뉴질랜드 남섬의 밀포 사운드로 가는 길에...
... 독자님들께 드리는 감사의 말 ...
그리고.....
2000년 11월, 나는 이 다음 사이트에 칼럼이라는 글을 무심코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퇴직 후의 남은 시간 무료함을 달래고, 취미삼아 그냥 끄적거렸던 낙서에 불과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독자님들이 글을 읽어주셨습니다.
아내와 함께 다녀온 배낭여행을 다시 한번 글로서 반추하면서 2년 8개월 동안 써 내려간 이 칼럼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의 많은 새로운 것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칼럼을 통해 산소처럼 싱싱한 생각들을 지닌 독자님들과 오프라인으로 교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은빛 날개를 퍼득이는 내 인생에 있어서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오는 동안 오늘까지 183회란 칼럼을 연재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에서 그 내용을 책으로 한번 엮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책을 낸다는 것은 글을 쓰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나의 부끄러운 신변잡기를 세상에 드러내는(coming out)것 같기도 하여서 짐짓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무거운 배낭을 마치 생명의 산소통처럼 짊어지고 여행을 떠났던 아내가 기사회생의 묘처럼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 너무도 신기하기도 하고, 나에게 어떤 책을 써보라는 듯 어떤 숙명같은 여분의 시간이 나로하여금 붓을 들게 하였습니다.
나는 아내의 승낙(?)끝에 아내와 함께 떠나온 여정을 책으로 엮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우리와 같은 고난의 절벽을 맞이하고 있는 이 세상의 아내와 남편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의 등대가 되어준다면 하는 바램도 있었습니다.
나는 내 혼을 다하여 온 몸으로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비록 글 재주는 없지만, 서투른 솜씨로 컴퓨터의 자판을 두둘기며 투박한 마음 그대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아내와 아이들이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한권의 책을 엮어내는 데 나는 2년 8개월이란 세월을 보낸 샘이 됩니다.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책을 쓰게 된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이 책을 그동안 '아내와 함께 떠난 배낭여행' 칼럼을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바칩니다.
"한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라야만이
또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나는 지금도 아내라는 한 여인을 사랑합니다.
누가 나를 팔불출이라고 불러도 개의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적처럼 일어나 한 남자의 사랑을 계속하게 해준
이 여인에게 진심으로 뜨거운 갈채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난을 빌어서
내 인생에 희망의 등대가 되어 주신
다시 한번 독자님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7월 7일
책이 출간되는 여름날 아침에
산소같은 남자가 되고픈
찰라 최오균 올림
*컬럼-아내와함께 떠나는 배낭여행에서 제공
이제 우리 강수회원 모두는 떠날 때가 되었지요!!德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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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돋는군요. 감동적이라 퍼왔어요.네? 배우자가 없다고요? 너무 국한하지 마시고 더욱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달려 나가시길-. 연휴에 책한권 왕창 섭렵합시다요.네?네!
!!!!!!!!!!
희망과 용기를 주는 정말 좋은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좋은시간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역시 짱이야..ㅎㅎㅎㅎㅎㅎㅎ
가슴이 뭉클해지는군요. 그가 죽기전에 진작 배낭여행을 떠나볼 걸....그럼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을텐데....부질없는 얘기지요.
!!!!!!!!!!1!.
여행이 그런 효험을??? 그런 기적을???
목구멍까지 뜨거운 슬픔이 밀어 오르는 생의 길목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때 떠날 걸-. 사는게 무엇인지-. 입에 풀칠 때문에 먼저 님 보내고 가을 햇살받으며 용케도 살아갑니다. 이오덕이 권정생에게 한말이 기억납니다 사는 것은 괴로운 것이라고-.떠날 걸!!
아아!! 세상의 짐을 벗어 놓고 오직 사랑하나 걸머지고 훌훌 떠난 여행이니 병이 낳을 만도 하지요. 일본의 어느 부자가 암에 걸렸는데 죽기전에 돈이나 실컷 써야지... 하고 싶은 일을 다하다보니 모르는 사이에 완치가 되었다는 일화와 비슷하군요.
전 그 아내가 한없이 부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