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택함
롬 16:12,13
언제나 굉장한 신앙의 인물들 뒤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섬김을 통하여 큰일을 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쓰임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들 뒤에서 드러내지 않고 섬겼던 동역자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인정하며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들을 보면 공통적인 특성들이 있습니다. 기도만 많이 한다고 해서 교회가 저절로 부흥되는 것도 아니고, 성경만 잘 가르친다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행정이 좋다고 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는 세 개의 구조가 있는데, 그 구조들이 모두 건강하고 튼튼할 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힘차게 쓰임 받는 교회가 됩니다.
1) 영성(spirituality)
살아 있는 복음의 선포,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성령의 은혜가 상부 구조에 속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죄인들이 회심하고 성도들은 은혜를 체험합니다.
2) 기능(function)
교회의 조직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여러 기능들에 질서가 잡혀 있으면서도 역동적일 때, 교회는 이 어그러지고 뒤틀린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 교회 당시 사도들은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을 직접 감당했습니다. 그 동기는 선했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사건은 사도들의 영적 권위를 흔들었고, 히브리파 교우들과 헬라파 교우들이 서로를 원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는 반성이 일어났고, 그들은 자신들이 기도와 말씀을 제쳐놓고 구제하는 일에 나서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일꾼들을 세워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일곱 명(집사)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초대 교회에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물질(material)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치스러운 예배당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방해받지 않고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출 때 성도들은 설교에 집중하고 성경공부에 집중하여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잘 갖추어진 교육관 시설은 성인들뿐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들을 보다 잘 교육시키는 데에 꼭 필요합니다.
교회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구조가 모두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구조가 모두 동시에 건강할 때, 교회는 힘차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뿐 아니라, 각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모습을 모두 갖출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첫째 : 주 안에서 수고한 여인들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2절)
여기에 세 명의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 로마서의 마지막을 장식한 바울의 동역자 명단에 이 여인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들은 바울에게 아주 소중한 동역자들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트루파이나)와 ‘드루보사’(트루포사)다. ‘사치, 방탕’이라는 뜻이다. 좋지 않은 뜻이기에, 옛날에 세상에서 놀던, 자매들이었던 것 같다.
사치스럽고 방탕하던 자매들이, 주님을 만나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수고했던 여인들이다.
주 안에서 ‘수고한’(코피오사스, 코피아오의 현재분사) ‘피로를 느끼다, 열심히 일하다.’로, 열심히 일을 해서, 피곤할 정도로, 주님 일을 열심히 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주님을 위해, 지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던, 젊은이로 보인다.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될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를 부르는 말과 버시를 부르는 말이 약간 다릅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는 “주 안에서 수고한”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반면 버시에게는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즉, 앞의 두 여인에 비해서 “많이”라는 말과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표현한 것은 버시의 섬김 때문입니다. 버시는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사람이었습니다.
‘주 안에서 수고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섬김의 동기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섬기든지 상관없이, 자신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섬기겠다고 뜻을 세워 섬겼다는 뜻입니다.
둘째 : 사랑하는 버시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2절,하)
사도 바울은 버시를 부를 때 또한 “사랑하는 버시”라고 묘사합니다. 이 구절의 원문을 보면, 이 말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사랑을 받는 버시’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겠습니까? 먼저는 하나님이시고, 또한 사도 바울과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중에 독선적인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열심히 하는데 과격한 충성심으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입기도 합니다.
그런데 버시는 주님을 열심히 섬긴 사람이었지만 거칠어진 인격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버시는 사랑받을 만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버시가 여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영어 NIV 성경도 여자로 번역을 했습니다. 원래 ‘버시’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페르시스(Persis)’인데, 이 말은 페르시아 사람을 의미하는 ‘페르시코스(Persikos)’의 여성형 명사입니다.
그렇다면 버시는 지금의 이란 출신 여성이었다는 말인데, 이렇게 민족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이름을 대신할 만큼 하찮은 신분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처럼 버시는 역사에 남을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고, 지극히 낮은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은 그가 누리는 자원이나 명예나 성공에 상관없이 모두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사실 크고 작다거나, 중요하고 하찮다는 것은 인간의 구별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작아 보이는 일이 하나님께는 큰일일 수 있고, 우리의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사람이 하나님께는 중요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버시의 이름이 단 한 번만 나오지만 버시는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이었습니다.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다. ‘수고하고’(에코피아센, 코피아오의 과거, 동작이 행해진 사실)을 말한다.
이 말을 보면, 아마도 버시는, 이전에 교회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하다가 늙어 은퇴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버시’(페르시, 페르시아 여인)도, 하나님께 봉사했다.
버시는 이방 페르시아 여인이지만, 주님의 은혜를 알고, 더 열심히 수고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여자 성도들의 헌신을 기록하고, 그들의 모범을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그들에게 문안하라고 했다.
셋째 : 택하심을 입은 루포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3절)
‘택하심’(에클렉토스)은, 에크 + 레고 = ‘밖으로 부르다. 마음에 든다, 선출되었다’는 뜻이다.
루포는 많은 사람가운데, 특별한 택하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람이, 바로 구레네 시몬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루포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는, 체험을 했기에, 그의 인생이 변화되게 되었습니다.
시몬은 예루살렘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북 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월절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주는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유대교인 시몬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경험했으며, 십자가 위에서 발생하는, 이상한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후계자며, 이스라엘을 재건할 자라고 믿던 메시아가, 십자가 처형되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저주하는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눅23:34).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3일 후에 발생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마27:53-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이었도다 하더라”
시몬은 그 사실을 확인하고, 가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교회를 찾아가, 신앙생활을 하게되며, 나중에 수리아(시리아) 안디옥교회에서 시몬은, 선지자와 교사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행13:1).
그리고 그의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도, 복음의 젊은 일꾼이 됩니다. 그래서 젊은 마가가, 그들과 교류가 있었기에 시몬의 이름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막15:21).
안디옥교회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쳤던 사도바울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를 더 잘 알고 있다.
성경을 살펴보면 객지 안디옥에서, 교역자 생활을 하던 바울은 시몬의 집에서 신세를 많이 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루포의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이, 사도바울을 감동시켰습니다. 이방인 선교사로 파송 받은 바울이, 10년 세월을 소아시아와, 유럽선교에 열심을 내게 됩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에 돌아오면, 항상 시몬의 집에서 신세를 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보살핌을 받은 바울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