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12장 7-12절 제목 : 성령을 받으면
(2020년 12월 13일 저녁)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머물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온 유다,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내 중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럼 성령을 받으면 정말 이렇게 될까요. 라고 할 때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악성경 요엘서 2장 27절과 28절에선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으로 주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27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여기서 보면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자녀들이 장래의 일을 말할 것이며,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열심히 살아 주변으로부터 수치를 당하지 않고 결국에는 그들에게 소망을 주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이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여 그 안에서 살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장 13절에선 이렇게 격려해 주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는 성령을 받으면 진리 즉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여 주시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 예수님을 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고 사도바울은 성령을 받으면 유익함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성령님께서 주시는 유익함이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혜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잠언 1장 2절에선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리고 했습니다.
그럼 지혜는 무엇을 말합니까?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말합니다.
즉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은 베드로를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직업이 어부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 베드로를 이렇게 평가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3절입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현대인 성경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보잘 것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또 이 사람들이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개역개정에선 범인으로 알았다고 했고 현대인 성경에서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보잘 것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공부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성령을 받기 전에는 좀 무시한 행동을 했는데 그 무식한 행동은 한번 더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고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감정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다가 용모가 변화가 되고 두 사람하고 대화를 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한 사람들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이 때 베드로와 제자들이 잠을 자다가 깨어 이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합니다.
누가복음 9장 33절입니다.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이는 신중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두 번째로 마태복음 26장 52절에 보면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칼로 대 제사장의 귀를 떨어뜨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해 줍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세 번째는 예수님을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했지만(막14장 20절)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합니다.(막14:72절)
이는 베드로는 자기 생각 속에서 말을 하고 행동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있었고, 담대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되 감정에 의해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던 분이 예수라는 사실을 전하고 예수님만 유일하신 구원자이심을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베드로를 본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한 것이고 베드로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고 당당하게 회개하라고 하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구주가 되심을 증거하고, 연약한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령을 유익함을 준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 천국 소망 속에서 사람들에게 그 소망을 주는 삶이 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