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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먹물의 민낯과 인민의 감성 그리고 아이되기 실험.
두 딸의 속옷 손빨래 하다가 문득 20세기 위대한 기술적 진보가 가사노동과 육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세탁기.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이론보다 일상으로 가장 깊숙이 침투한 기술의 총아가 아닌가! 이것이 없다면,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여전히 동네 어귀 우물가 빨래터나 개울에서 마주치기 어렵지 않았을 게다. 어린 시절 빨랫터에서 추락사했다던 큰외숙모의 어이없는 죽음도 오늘에 와서 보면 이상할 일도 아닌 듯 싶다. 나의 어머니 세대들 중에서도 여전히 시골에서 그런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를 화석처럼 마주할 때도 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할머니 세대들에게 세탁기가 어떤 의미였는가를 자세하게 나눌 기회가 없었던 나의 남성성이 아쉽기도 하다. 외할머니와 할머니 모두 빨래는 쭈그리고 앉아 빨래판에서 문지르고 대야에서 헹구기를 수 차례 끝에 팔뚝에 정맥혈이 솟아오를 만큼 물짜기 과정으로 끝맺곤 했다. 그리고 햇살 가득한 정오 무렵 옥상이나 창가에서 팡팡 털면서 온갖 노고를 잊으려는 듯 속시원하게 널면 완성되는 가사노동의 대사중의 대사였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는 특별히 다른 공간에 산다는 느낌보다는 비슷한 일상의 문화를 공유한 듯한 느낌이 강했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한반도와는 달리 위도 4도 차이는 5시간의 육로질주와 4시간의 뱃길을 타고 넘어온 제주라는 섬에서 습한 공기와 종일 흐린 날씨로 바뀌었다. 아침을 먹고 두 딸과 나들이를 한 후 둘째의 낮잠 시간에 맞춰 다시 서귀포 지인의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일 주일 정도 반복되다 보니 자연풍광을 제외하면 일상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저녁 후에는 지인의 아들까지 합쳐 세 아이들을 밥해 먹여 치우고 씻기고 나면 어느 새 잠잘 시간. 집에서는 아내와 둘이서 두 딸을 돌보다 잠잘 때면 내게 주어지던 자유가 그대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하워드 진이 헉슬리의 표현을 빌어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말이 내게도 필요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대로 남은 나날을 보낼 수는 없다는 어떤 예감이다. 제주의 바람은 끝없이 내게 행동을 재촉했던가?
균열은 의외로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휴무를 얻는 지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참석을 망설이던 학회모임은 바로 그 날에 열린다. 육아 품앗이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제 그 지인이 나의 오랜 춤판 인생의 인연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심봉사도 아닌데 두 딸을 데리고 난데없이 내려오겠다는 나를 무던히도 받아준 것에는 오래 된 인연, 그 중에서도 춤으로 엮인 것을 감안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가 없다. 어쨌든 토요일 하루는 그녀가 일요일은 내가 그렇게 하기로 역할 분배가 끝났다. 외아들 밥먹이느라 애먹이던 식사 시간이 이제는 세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먹성 좋아진 모습을 보면서, 느긋하게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가 꿈만 같다는 그녀는 소위 독박 육아맘이다. 나는 자발적 독박 육아빠인가? 뭐라고 규정하기 힘들지만, 이 시절들이 이미 삶의 긴 호흡에서 오래 전부터 꿈틀대던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은 분명하다. 핵가족 시대의 육아에 대해 고민만 하지 말고 뭐든 다르게 겪어보기를 언제고 한 번은 해 볼 생각이었으니까. 결국 우리 둘은 아주 멀리에서 만나서 새롭게 육아에 대한 고민과 부담을 자연스레 공유하게 된 덩어리가 되었다. 혈연이라는 고리타분한 규정만 없다면, 세 아이와 남녀로 이루어진 신가정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서울. 고작 일 주일 전에 떠났건만 학회 참석을 위해 다시 찾은 서울의 풍경이 낯설다. 바람의 냄새가 달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자연풍광도 그렇지만 인파와 건물들의 배치와 흐름도 낯설다. 이런 걸 귀촌 신드롬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제주 지인 말마따나 서울은 일주일에 3일 정도만 바람쐬러 갔다오면 좋은 도시인 건가? 제주에 도착해서 점심은 늘 두 딸과 나들이 후의 외식인 터라 동네 부근의 밥집을 뒤져보다가 주택가 한 복판에 외로이 자리잡은 신생 밥집을 찾아냈다. 정작 지인은 집 근처인데도 존재자체를 모르던 그곳. 여행자의 감성과 거주자는 다를 수 밖에 없나보다. 마침 사장이 서울살이 하다가 내려와 제주살이 시작한 지 1년 되었단다. 상계동에서 포장마차 하다가 마누라 애들 뒤쫓아 와서 열었다는 밥집 메뉴는 김밥과 우동 그리고 튀김이다. 조만간 딱새우회를 술안주 메뉴로 다시 올려본다는 얘기부터 어쩌다 이 곳에 내려오게 된 사연까지 폭포수처럼 얘기를 쏟아낸다. 덩달아 나도 상계동 학원가 얘기하다 전직을 털어놓게 되고. 그랬더니 제주에서 학원 열라며 부추기는 말이 그냥 지나가는 덕담이 아닌 게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내기들이 내려와 제주에 기묘한 대치동 짝퉁 문화를 이식하려는 중인갑다. 며칠 전 제주 지인이 들려 준 서울내기 아파트 투자자들이 제주 부동산 시장을 버려놨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어디를 가나 부동산과 교육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벗어나기가 힘든 대한민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허기사 나도 대치동 강사 시절 제주의 어느 교수 부인이라던 학부모에게 고액과외를 제안받았으니 벌써 10여 년도 훨씬 전부터 이 곳의 교육은 뒤틀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대치동을 가야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제주야말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짝퉁 사교육의 요람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 부의 대물림 이것이 사교육의 진정한 욕망이라고 한다면, 다른 욕망을 집어 삼키는 동일성의 신화를 가볍게 비껴서서 한바탕 웃어줄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런 욕망 말고도 인생에 누릴 것들이 많다는 단순한 사실을 겪는 수 밖에 없다.
세상사에 무심하게 두 딸과 천혜의 섬을 돌고 있는 듯 하다가도 가끔씩 음식점과 숙소에서 들려오는 뉴스와 정치 얘기를 흘려 넘길 수 없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오늘처럼 양승태 같은 위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소위 법관의 양심 운운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외치던 지난 5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을 때. 그리고 여전히 법조항을 부여잡을 수 밖에 없는 딱한 먹물 법관들의 ‘신중해야’라는 자위적인 합창을 들었을 때, 왜 내가 실천적으로는 육아를 통해 삶의 방향을 전환했던가를 떠올리게 된다.
한 때는 어떤 사건번호를 익숙한 전화번호처럼 외웠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2008년 MB정권의 등장과 함께 내 일상에 짙은 정치적 영향을 느끼게 된 소송이 시작됐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뭔지도 모르고 읽었던 카프카의 성채를 떠올리는 그 2 건의 행정소송이 총각에서 유부남이 되고 다시 첫째 딸을 갖기까지 만 4년을 넘어서야 정부의 상고포기 확정판결로 종결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집은 넘어섰던 그 마지막 관문을 양승태의 부당거래로 넘지못하고 자살에 이르게 된 KTX 어느 여승무원의 삶이 남일처럼 느껴질 수가 없다. 아버지는 철도 공무원으로 만 33년을 사셨다. 남들은 법원에 한 번을 갈까 말까한 인생에 초짜 여객계장이던 70년대에 이미 파면 취소 행정소송을 겪다니. KTX 여승무원들에게는 부여조차 되지 않는다는 승객의 안전업무를 그 옛날에는 ‘차장님’이라고 불리던 남자 공무원들이 담당했다. 양승태는 열차에서 사고가 빈번하지 않으니 안전업무는 여승무원들에게 할당된 업무가 아니며 따라서 KTX의 하청업무에 해당된다는 판단을 했다. 8량 400미터에 이르는 KTX의 안전업무는 사법먹물의 잣대로만 본다면, 딱 1명에게만 할당된다. 70년대보다 뭔가 나아졌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요지경 같은 세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2건의 행정소송으로 거대한 정치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을 끔찍하게도 괴롭힐 수 있음을, 그나마 우리 집안은 확률 1/30의 성공을 한 편이다. 자살한 여승무원은 1, 2심 승소의 달콤함이 오히려 독이 되어 그동안 받았던 급여에 대해 환수는 물론 이자추징까지 당하게 되면서 순식간에 억대의 빚쟁이가 된 것이다. 아버지의 행정소송도 비슷한 류의 소송이었기에 단순히 패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어쩌다 우리가 승소했던 것일까? 정말 사법먹물들처럼 대부분은 온순한 양떼처럼 법의 수호자인데, 양승태 같은 승냥이 같은 놈들이 그저 몇 년 일탈을 했던 것일까? 수호자라면 양떼보다는 사자의 심성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다 못해 목동의 벗 개의 성정이라도 닮아야지.
70년대 인혁당에 내려진 사법살인, 조봉암에 내려진 사형판결을 떠올려보라. 그것도 몇 가지 에피소드 같은 사건이었나?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본다면, 사법먹물들은 늘 상식 수준의 판단보다도 못한 법적 판결들을 쏟아냈을 뿐이며, 오히려 최악으로 다가갈수록 정권의 하수인으로 갈채를 받거나 요즘처럼 주목받았을 뿐이라고. 2건의 행정 소송 중 하나는 1심에서 패소해 항소심까지 가게 된 사건이었다. 나는 읽고 또 읽었다. 패소한 판결문과 승소한 판결문의 차이를. 그리고 내린 결론은 사법부라는 집단이 어떤 논리를 들이대든지 그것은 인민의 상식과는 부합하지도 부합해서도 안되는 저들만의 법칙이라는 점이다. 양승태는 단지 그것을 보다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60년 4.19와 80년 5.18 87년 6.10 2017년 촛불의 결실들이 어떻게 인민에게 돌아오지 않고 먹물에 의해 쪼개먹기로 전락했는가의 절정에서 사법부의 민낯이 드러난다. 장자연 사건이 떡검의 민낯이듯이 KTX 여승무원 사건은 판새의 민낯일 것이다.
그렇게 한 때는 먹물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뻔하다가 생리에 맞지 않다 여겨 등졌던 시간을 돌고 돌아서 다르게 침투해 보기를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먹물과 동일하게 되기보다는 다르게 되기라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체험이 책벌레 같은 공부만으로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육아는 그 연결고리다. 똑같이 되기나 모방을 넘어 다르게 살아보며 공부하기. 하워드 진이 고전학자 앨런 블룸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에서도 엄혹한 시국에 예일의 학생들은 세파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꿋꿋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었다며 자랑했단다. 60년대 흑인 민권 운동 시절 시위에 나가느라 결석했던 학생들의 결석을 용인했던 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길이다. 아이도 좀 보고,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도 보고 하다 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리고 책을 보면 먹물의 세계도 달라 보인다.
최근 마포에서 시민의 힘으로 구청장을 바꿔보려던 인민의 실험이 현실 정당의 텃새와 기득권에 밀려 좌초한 뒤에 마을에서는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라는 대토론회가 잡혔다. 바람하면, 이 곳 제주도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곳도 없다. 그 바람이 이 바람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만약 프랑스 감성의 역사가 꼬르벵처럼 귓가를 스치는 바람을 순전히 역사적 분석으로 대상화할 수 있다면. 그러나 인민이 만드는 바람과 인민에게 속삭이는 바람을 자연과 인간이라는 대립구도가 아니라 삶의 실존처럼 묶어 볼 수도 있다. 김수영의 풀처럼 말이다. 꼬르벵의 ‘감성의 역사’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결국은 먹물들의 감성에 대한 추적에 그칠 뿐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던 것도, 어떤 정치적이며 실존적 감수성이 사라져 버린 감성의 역사가 도달하게 될 지 모를 통속적 낭만성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관점이 아무리 신선하다 한들, 먹물에 의해 남겨진 감성의 조각들을 짜깁기 하기보다는 부둣가에 나가 바닷바람을 종일 맞아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요 며칠 새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두 딸과 해변으로 나가 조개줍기 방게, 소라, 고둥, 모래무지 등을 잡고, 두 딸의 모래놀이에 빠져 있다. 그렇게 하루를 놀고 나면, 말 그대로 쓰러져 자게 된다. 아이들에게 바다와 산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한다면 재우느라 애쓴다는 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닫힌 감성을 강요받고 일탈에 의해서만 그것이 한시적으로 주어지는 콘크리트 건물 도시의 인간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에너지 덩어리 같은 생명체들과 시간 속에서 뒹굴다 보면, 잘 때가 되면 스르르 쓰러진다. 분명 둘째 딸의 조그만 손을 붙잡으며 재우고 나면, 일어나리라 했던 다짐이 무산된 지금. 내가 깨어 있는 건 어떤 분노이자 공감때문이다. 사법먹물의 부당거래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어느 KTX 여승무원의 남겨진 아이들이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거대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어도, 뭔가 변혁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먹물의 단색에 균열을 내고 싶어 새벽잠을 깨서 기록하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 저녁 석양을 등지고 바람을 가르며 출항하는 배를 보면서, 바람의 색깔과 맛이 얼마나 다채로울지 감히 예상해 봤다. 삶 속에서 느끼는 바람이야말로 명상과 관조로 일관하는 먹물의 감성에 철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 먹물의 한계를 가볍게 탈주하는 인민 감성의 대변자는 사실 우리 주변에 넘쳐 난다. 나에게는 지금 우리 두 딸이 그렇다.
첫댓글 근데 참, 형 그럼 투표는 어서 하는겨?
신분증만있으면 전국어디서든 부재자투뵤가능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