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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담아낸 풍경과 화폭에 그림으로 담아낸 풍경에는 분명히 어떤 다른 맛과 느낌과 의미가 남다름이 존재하겠지만 도무지 나는 지금 그 차이를 딱 부러지게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만 같다. 수묵화를 그리시던 어떤 선생님께서는 내게‘그림 속에는 여백의 미가 존재하며, 그것을 통해 그리는 사람은 풍경 뒤에 가려진 사연을 담아내기도 한다네’ 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선생님께서 내게 애정을 가지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음에도, 끝내 나는 화가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진 작가가 되지도 못했다.
꽤나 오랜시간 독학을 하다시피 하면서 들로 산으로 사진을 찍으로 싸돌아다니기는 했으나, 영 소질이 없었음인지 나의 사진은 늘 거기서 거기인 모양새다. 누군가가 ‘캠핑이 장비빨 이듯이 사진도 어느 정도는 장비빨이여. 허구헌날 입문자용 기본 카메라만 눌러대니 어디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오겠니? 초고가 비싼 장비로 무장하고 사진동호회라도 쫓아다녀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는 거여. 맹충아.’라고 나를 놀려대던 친구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난 내 멋에 산다.
비싼 장비를 살 돈이면 어디로든 훌쩍 여행을 한 번 더 떠나겠다. 내게 있어서 사진은 그냥...... 두고두고 나의 여행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게 최소한으로 기록해 두는 정도의 의미이면 충분해. 내가 무슨 작품 사진을 찍어서 책을 내거나 어디에 내다 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죽어라 많이 찍다보면 어쩌다 작품 비스무리한 것도 나오지 않겠어? 냅둬. 난 그냥 이제껏 해왔듯이 내 방식대로 살래.
그랬었다.
적어도 이제까지는 쭉 그래왔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확 달라졌다. 여전히 장비빨이야 달리 아무것도 더 갖춰진 것이 없지만 그래도 이젠 멋진 사진을 한 번 제대로 찍고싶다.
이젠 기록사진 정도로는 안될 것 같다. 강렬하게 때론 잔잔하게 가슴으로 다가오는 CF의 한 장면같은 그런 사진을 찍고 싶다.
우리 태리랑 세리를 제대로 렌즈에 담아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속에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을 함축시켜 담아내고, 그것이 훗날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기억으로 담겨지기를 바라느니 어쩌느니’ 하는 설레발은 지금 내게는 전혀 필요치 않다. 그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고, 많은 순간들을 사진에 마구마구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찍는 것은 어디까지나 할아버지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그것을 오래오래 보관해주고 기억해 주는 것은 오로지 훗날의 녀석들 몫일 뿐일테니 말이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속에서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게 묻어나기를 내맘 속으로만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함께 산책길을 걷고, 물장구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풍등을 날리고, 공항 패션으로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지나고, 괌에서 호핑 투어하고, 트래비 분수에서 동전을 뒤로 던지고, 피렌체 두오모 종탑을 걸어서 오르고, 몰타 해변 바위 벼랑에서 다이빙도 하고, 돌로메티에서 남알프스 트래킹을 하고, 샹젤리제 거리를 손잡고 걷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예배도 참석하고,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나타샤 댄스’를 할아버지가 들려주고, 앙코르 사원에서 태리가 흉내내는 안젤리나 졸리도 만나보고, 코카서스의 대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보여주고 싶어. 그 모든 시간들을 사진에 담아 우리의 추억이 소록소록 묻어나는 사진첩을 만들어 선물처럼 태리랑 세리에게 남겨주고 싶구나.
그런 많은 시간속에서 우리가 함께 있고, 서로 바라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할아버지의 남은 시간속에서 더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거야. 더 이상 할아버지의 소원은 필요치 않을거야. 지금까지 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니까....... 그럼에도 아직은 조금만 더 가보고 싶어. 사진을 열심히 찍으면서.....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단다. 할아버지가 내손으로 직접 찍을 수 있는 마지막 사진은 어떤 게 좋을까 하고 말이다.
‘숙녀로 성장한 너희들과 펍(PUB)에 가서 할머니. 태리. 세리.그리고 할아버지랑 넷이서 생맥주 마시는 사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단다. 엄마 아빠는 옆 테이블에 떨구어버리고 말이야.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
나나니 나려도 못노나니
아니리 아니리 아니노네
에야 디야 에야 나나니요
오지도 못하나 나도 가마.
꽤나 오래전에 <대장금>이란 TV 드라마에 배경음악으로 나와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오나라)라는 곡의 가사이다.
구구절절이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신세를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벌(나나니)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었다.
한동안 자주 들어보기는 했으나, 그때는 어디까지나 <대장금>이란 인기 있는 드라마의 아련한 회상과 기억 속에서 였을뿐이다.
그런데 근자에 어느 순간....... 이 노래가 불쑥 떠올라 어떤 전율처럼 나 스스로 크게 놀란적이 있다.
누군가 말하길 ‘나이들면 괜히 센치해지고 멜랑꼬리해 진다고 하더니만 지금 내가 바로 그 짝인건가?’하는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개뿔! 멜랑꼬리는 무슨? 쓰잘데 없는 가을병이지.’라고 챠밍여사라면 당연히 푸닥꺼리 해야한다고 난리도 아닌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그러게, 개뿔 맞네? 이 나이에 가을은 무슨? 가만...... 나에게 아직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이란게 남아 있기는 한가?’
오라고 오라고 한들 오더냐
가라고 가라고 한들 가더냐
나나니 벌처럼 하염없이 기다려도 님과 어울리지 못하니
아니구나 아니구나 사랑이란게 다 뜻때로 되지는 않는구나
어이구 어이구 이를 어찌하나
오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나도 그곳으로 데려가려무나.
‘할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허우대 멀쩡한 아들이 하나 있으니 자연스레 언젠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속내가 어떤 것인지는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저 내게는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께서 손자라면 사족을 못 쓰다시피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뭔가 변하기는 하나보다’라고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당신, 태리 세리가 커 갈수록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변해? 모르겠는데? 그제가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또 내일 같을 건데?’
‘많이 바뀌었어. 신통하리만치........’
‘멋진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지. 병아리들이 커서 사춘기가 되고 아가씨가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랑 안 놀아줄 거 아니야? 그때까지 어떻게든 늘 보고 싶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뿐이야.’
‘지나칠 정도라고 생각될 때도 있으니까 문제지? 문득 문득 서운할 때도 있어.’
‘헐!!! 할아버지가 병아리들 사랑한다는데 할머니가 서운하다니? 질투해?’
‘질투해. 언제는 나뿐이라더니 이제는 아예 안중에도 없나봐. 갤러리가 저게 뭐니?’
‘갤러리? 허허허허. 내리 사랑이라잖아. 갤러리도 조금씩 내 주어야 하지 않겠어?’
‘그렇기는 하지만...... 너무 갑자기 다 뺏어가는 것 같잖아?’
‘태리한테 할머니가 그런다고 문자 보낼까?’
‘할머니 죽는 꼴 볼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도 좋기는 해. 너무 예쁘잖아.’
우리 집 내 서재의 한쪽 벽면은 온통 챠밍여사의 여행사진 갤러리다.
여행을 다녀 올 때마다 자동으로 갤러리가 엎그레이드 되어왔다. 갤러리의 주인공은 그동안 오로지 챠밍여사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병아리들과의 캠핑사진이 한 장 붙었다가 두 장이 되고 세 장으로 늘어가는 추세다. 당연히 한정된 벽면에서 그 수만큼 할머니 사진이 밀려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걸 할머니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할망구야. 그런 게 자연스런 우리의 인생살이야. 비워주고 덜어내는 것을 배워가야지. 그것도 모르니? 이 공간(우리 집)도 애초부터 병아리들 몫이라고 자기가 해놓았으면서....... 우린 지금 애들 거 빌려서 쓰는 처지잖아?’
태리야. 세리야. 아무 때고 오고 싶으면 오렴.
갈 때는 좀 더디게 가고 뒤 좀 돌아봐 주렴. 다음 이라는 약속이 너무 길게만 느껴져.
써핑해야지? 흘림골 주전골 트래킹 해야지? 울릉도 캠핑 가야지? 담에 오면 보조바퀴 없는 성인용 자전거 배워야지? 할아버지가 창고에 청소년 자전거 새 거로 할머니 몰래 사 놓았어. 함께 조립해서 바퀴에 바람 넣고 공원에 가서 연습해야지? 겨울방학엔 서울 가서 연극이나 뮤지컬 한 편정도 보고 싶고, 국립 중앙박물관도 가야하지? 여울낚시 해야지? 거기에다 충주 올 때마다 시립도서관에 가서 노는 법 배워야지? 할아버지가 사는 동안 너희에게 꼭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오로지 두 가지야. 재미있게 여행하는 방법과 책과 함께하는 즐거운 생활이란다. 이 두 가지만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로 남겨 둘 거야. 거기에다가 하나 더하자면 그것은 너희 몫이자 하기 나름으로 주위에 많은 친구를 사귀고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 할아버지가 너희에게 간절하게 당부하고 싶은것은 오로지 그것뿐이란다.
할아버지가 ‘손녀 바라기 바보’라고 놀림을 받아도 좋아.
오래오래 너희들과 손잡고 걷고 함께 여행하고 마주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어서 자라서 함께 생맥주 마실 수 있는 예쁜 숙녀로 성장한 너희를 볼 수만 있다면........
아내는 꾸불꾸불한 옛길을 좋아한다.
길을 나서면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를 타고 쌩쌩 달려가는 것보다, 아주 먼 옛날에 처음 생겨나 오로지 사람이 걸어서 다니던 불편하고 협소한 그런 옛길을 좋아한다. 살아가는 것에 열심이었고 찌들기만 했던 생활이었겠지만 그 사람들은 거친 호흡소리와 땀과 눈물이 서려있는 그 길을 따라가면 산들바람에 취하고 여전한 자연의 푸른 생명력에 감동하고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그리면서 어느 정도는 숙연함으로 먼 길을 아주 천천히 가는 것을 좋아한다.
길을 나서면 우선 의자를 가장 뒤에까지 빼고, 안전벨트를 맨 다음에 두 발을 걷어 올려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다. 반쯤 창문을 열고는 커피와 다이제스티브 비스켓을 즐기면서 한껏 여유를 부리다가, 그것마저 지루해질 즈음이면 우리 병아리들 이야기로 한껏 달아올라 수다를 떨다가, 그것도 지치면 아들 며느리를 난도질하는 이바구로 넘어가기가 다반사다.
어디든 굳이 날아가듯 차를 몰고 빨리 가야만 한다면 아내는 애초부터 그 길을 여행이라 부르지 않았을 것이며, 그런 여행이라면, 어쩌면 아예 따라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여, 아주 가끔은 아주 옛날 왜정시대에 있었다는 벌목을 위한 임도를 따라 고개를 넘다가 되돌아 나오기도 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무작정 바닷가를 따라만 가다가 길이 막혀 되돌아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은 그럴 여유도 짬도 없다. 가다가 휴게소에서 뭘 먹이고, 고속도로 내려서면 어디 하나로 마트에 가서 병아리들이 맘에 들어 하는 음료수와 과일도 새로 사야하고, 저녁에 뭘 먹고 싶어 하는지 물어봐서 장을 봐야하고, 목적지에 당도하기 전에 어느 휴게소든 들려서 하루 한 번은 뽑기 해주어야 하고....... 암튼 정신이 없다. 예전엔 사전에 미리 푸짐하게 장을 미리 보았었는데...... 애들 입맛과 관심이란 게 너무도 수시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토마토를 무척 좋아하기에 한 박스를 사서 챙겨왔더니 이번엔 웬걸 한참 비쌀 때 블루베리 타령을 하고, 블루베리를 챙겨왔더니 바나나를 찾는다. 밀키스를 좋아하기에 잔뜩 사왔더니 처음보는 낯선 어린이 음료로 날마다 입맛이 바뀐다. 하여 결론은....... 미리 사지 말자. 그때그때 데리고 가서 물어보고 사자. 어떻게든 좋아해서 실컷 먹어주기만 하면 고맙겠다. 병아리들과의 여행은 그저 편안한 일상처럼 이미 익숙해지고 자신이 생겼는데....... 다만, 때마다 끼니 챙겨 먹이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염병할...... 지금 날씨가 이게 뭐야?
거기 지극히 높은 곳에 앉아계신 양반! 정말 자꾸 이럴 거유?
금산 캠핑 폭싹 망하게 했지, 싸인이 안 맞았던 효도여행 때도 비를 뿌려댔으면서, 오늘까지 이러시면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사단을 한 번 내보자는 겁니까? 시방?
캠핑장을 예약할 때부터 이후로 비 소식은 없었다. 그제까지도 일기예보는 온통 쾌청이었다. 그러더니 어제 아침에 느닷없이 흐림이 떴다. 저녁에 비 소식으로 바뀌더니 약하게 5mm 정도의 비만 뿌리고 그친다고 했다. 그래서 별 지장이 없겠구나하고 안심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고에서 짐을 꺼내다가 차에 싣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은 흐린 얼굴이고 나머지 반은 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냥 지나가려나 보다하고 안심을 했다.
개뿔!!!!! 안심은 무슨? 하늘에 계신 그 양반 요즘 심사가 뭔가 잔뜩 뒤틀리셨나?
차를 몰고 충주 시내를 벗어났다고 생각할 즈음에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니지 소나기가 아니고 운전에 지장을 줄 만큼 폭우가 내리 퍼붓기 시작했던 것이다.
헐! 어린이 집에 우리 작은 병아리 데리러 가야하고, 큰 병아리 학교에서 걸어서 올 텐데 이를 어쩐다. 우산을 챙겨갔을까?
‘아빠. 날씨가 장난이 아닌데 괜찮으시겠어요?’아니나 다를까?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덜. 아빠가 아직은 현역이야. 뭐든지 잘 해나갈 자신이 있다고. 병아리들과 이미 한 약속이고, 녀석들이 많이 기다렸을 텐데 좀 더 신경 써서 조심하면서 계속 해야지. 걱정 마.’
‘그건 잘 알지요. 뭐든지 해결해 나가시리라는 것은...... 빗길 운전 조심하세요.’
‘애들 옷은 많이 챙겨 넣었니? 추워질 것 같아. 장화도 챙겼지?’
‘네. 애들 짐은 잘 챙겨 놓았어요. 엄마가 보시고 부족하겠다 싶으시면 옷장에서 더 챙겨 가시면 될 거에요.’
‘그래. 우리가 더 챙겨서 잘 다녀오마. 대신 너희도 좋은 시간 보내렴.’
우리가 병아리들을 뺏어가고 나면 2박3일간 아들과 며느리는 또 어떻게 좋은 시간을 보내려나? 늘 그것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지난번엔 일단 아침마다 늘어지게 잠을 실컷 잤고,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하고 영화 관람을 했다고 했는데...... 그래. 일단 내일 아침에 실컷 늦잠이나 자두렴. 병아리들 아침은 할머니 할애비가 잘 챙길 테니 염려하지 말고. 우린 그 시간에 바다에 나가 있을 거야.
-- 글 올리는 작업중입니다. 일하느라 조금 바쁜시기이네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