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표적 중의 표적 십자가,
제자들도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믿은 다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함
(찬송 488장)
2023-12-16, 토
맥락과 의미
16장은 예수님의 사역 중에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는 병 고치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이 중요했는데도, 사람들은 병 고치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21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십자가를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여러 기적은 십자가의 가르침에 대한 준비였습니다.
1. 실리를 채우는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기적(1-12절)
2. 베드로의 신앙고백: “당신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13-20절)
3.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심(21-28절)
1. 실리를 채우는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기적(1-12절)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통한 사단의 시험(1-4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1절). 4장에서 마귀가 한 시험이 그들을 통해서 이제 계속됩니다. 성경을 아주 잘 아는 그들이 슬프게도 마귀의 입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은 현실적인, 정치적, 경제적 필요를 채워주는 표적을 말합니다. 앞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고,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마귀에게 절하라.” 이 시험은 잘 먹고 자기를 과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적을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기적을 구하는 사람 중에는 대개 물질과 명예를 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저녁에 하늘의 색깔을 보고서 다음날 날씨를 예측하면서도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한다고 말하셨습니다(3절).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셨던 기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이미 새롭게 시작하셨음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표적/표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그때나 우리 시대나 다 음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진리가 없는 것,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요? “악하고 음란한 세대”(4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악과 영적인 음란이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죄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표적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를 씻는 일입니다. “요나의 표적”(4절)입니다. 12장 40절에서 이미 말씀하신 표적입니다. 16장에서 그 표적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이라고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21, 28절).
우리 시대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표가 된 시대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이 망가진 것을 고치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그 풍요함을 알지 못합니다. 더 가지려 하는 탐심 때문에 우리의 눈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을 배웁시다. 탐욕과 불안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에 대한 주의(5-12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그 말을 듣고 제자들은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걱정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는 뜻이었습니다(8-11절). 제자들은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습니다(12절).
바리새인은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고, 기도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겉으로 드러난 율법주의적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에만 관심이 있는 표적 신앙이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고 헤롯과 결탁한 세속적인 사람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보라는 마귀의 탐욕에 빠져서 표적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먹을 것(탐욕과 물질주의)을 구하러 오는 신앙을 삼갑시다. 물질주의에 물든 신앙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무너뜨립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은 자기의 물질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악하고 음란함”의 누룩을 복음에 섞어 넣습니다.
2. 베드로의 신앙고백: “당신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13-20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해한다고 제자들은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당신)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아라고 고백합니다. 메시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을 베드로에게 알게 하신(계시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고 메시아라는 지식은 하나님이 계시로 베드로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고백을 나중에 제자들은 전할 것입니다. 베드로(“반석”이라는 뜻)의 이 고백 위에,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온산 반석 위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과는 다른 새로운 성전을 예수님께서 지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성전은 예수님께서 세우실 교회입니다. “예수는 주(하나님)요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고백(복음) 위에, 예수님이 직접 “내 교회”를 세울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바른 신앙고백에 기초하여 세워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이 교회는 목사나 어떤 탁월한 성도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세워가신다는 사실을 바로 압시다. 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목사는 복음을 설교하고 성도들은 말씀대로 순종합시다.
베드로(교회)는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 복음을 믿고 나온 사람을 교회의 세례교인 회원으로 인정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 새로운 생명이 나옵니다.
20절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부활함으로써 메시아 되심을 나타내기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21절). 준비될 때까지 침묵하도록 한 것입니다.
3.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심(21-28절)
1) 베드로의 세속성을 책망하고 고난의 제자도를 가르치심(21-26절)
아니나 다를까 베드로는 아직 그리스도에 대해 공적으로 전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실 것에 대해 “항변했습니다” (22절). 이 말은 “책망했다”는 아주 강한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시며 꾸짖으셨습니다(23절).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받을 때, 자기에게 절하면 온 세상의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했던 바로 그 사단에게 한 “사단아 물러가라”(4:10)와 같은 말입니다.
조금 전 예수님에 대해 바른 고백을 했던 베드로의 입에서 사단의 생각과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베드로가 굴복한 사단의 생각을 쫓아내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세상적인 사고는 사단의 생각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그리스도가 지실 십자가에 대해 무지하고 그것을 싫어합니다. 이것은 인간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싫어하고 거기에 대해 무지한 것으로 연결됩니다. 참으로 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왕으로 승리하고 군림하는 예수님을 섬기고 싶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찾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고”와 “목숨”은 12장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12:28,29)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도 나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를 따라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목숨을 얻습니다. 바로 겸손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고 갈 때, 참된 평안에서 오는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손해보면 삽니다. 이 땅의 실리를 구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면 목숨을 잃습니다(25절).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면 삽니다. 자기 목숨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살면 이 땅에서는 잘 살지 모르지만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2) 인자가 영광 중에 오시는 것을 볼 자들이 있음(27-28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시면서, 재림을 바로 연결시킵니다. 성령 강림과 제자들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도 당연히 미리 보고 계십니다. 구원 역사의 전체를 바라보고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신 주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그 비참해 보이는 현실을 앞두고 제자들이 낙담하지 않도록 재림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또 그들이 생존할 때에 성령 강림으로 강력하게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참으로 큽니다.
그 영광을 미리 맛보여 주시는 일을 17장에서 합니다. 산 위에서 예수님이 영광의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자기 탐욕을 따라 돈 버는 데 빠지면 지옥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고백하는 것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할 때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려 주십니다.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능을 의지하여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릅시다. 믿음이 작은 자가 되지 맙시다. 믿는 자로서 주님을 따릅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7절, 알게 한 일 (아포칼립소)
베드로가 “주는 그리시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알게 하신(계시하신-아포칼립소) 이가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자기 힘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