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동지 2주기
<사진> 한겨레. 2020. 10. 15
수많은 김용균이 있던 그 자리
12월 10일이면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먹먹함과 함께 김용균과의 약속을 얼마나 실천했는지를 생각하는 반성의 글이 쉽지만은 않다.
시키지도 않은 일과 충실하게 업무지시를 따른 죽음
2년 전 그날, 사고 소식을 듣고 이른 아침 태안화력으로 허둥대며 출근을 했다. 공공운수노조 담당 간부에게 전화로 사고 소식을 전하고 TT- 04C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119 대원들과 현장 조합원들이 함께 수습하는 중이었다, 현장은 혼란스러웠고 정신이 없었다.
작업 중지 명령과 함께 현장 대기실에서 보낸 하루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고에 대한 정황과 예측들에 서로들 놀라며, 김용균이 고통스러워했을 순간을 떠올리며 그저 괴로운 마음뿐이었다.
퇴근 후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에 갔을 때는 김용균의 부모님께서 그 짧은 하루에 당하신 여러 가지 상황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는 평소 고집스러웠던 용균이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회사의 어처구니없는 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발전기술의 태안사업소 간부가 하도급 업체 노동자들과 함께 ‘몸소’ 사고 현장을 깨끗하게 물청소를 했다는 것이다.
한국발전기술의 임원이 채용 당시 면접에서나마 보았을지도 모를 입사 3개월 차의 신입사원인 김용균의 고집스러움까지 기억하시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하청 업체가 가진 안전사고에 대한 의식 수준과 유가족을 상대로 그들이 행해왔던 재해 당사자에게 책임 떠넘기기식 사고수습 방식까지, 모든 것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현장을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게 직접 물청소한 것도 문제이지만, 원청인 서부발전의 지시가 있었던 없었던 하청 업체 간부의 사고 현장 증거인멸과 은폐는 변하지 않는다. 회사 측의 업무지시에 따라서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을 하다가 죽음에 이른 비정규직 노동자와 지시가 없었는데도 스스로 은폐하려 물청소에 임한 자는 생과 사로 나뉘었다.
현장의 설비개선과 발전사의 한결같은 ‘삽질’
발전사 출신 하청업체 임원 및 간부들의 아낌없는? 원청 발전사에 대한 사랑은 현실에서 인력구조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김용균 사고 이후 분명 현장이 바뀐 것은 있다. 대표적으로 2인 1조로 함께 작업한다는 것과 랜턴 없이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두려웠던 그 컨베이어 벨트 현장이 놀라울 정도로 밝은 LED 조명으로 바뀐 것이다. 어디서 나를 지켜볼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감시카메라와 함께 말이다. 현장을 밝히는 불빛의 용도인지 현장 작업자들의 근무를 감시하기 위함인지 모르겠다.
2인 1조에 충원된 인원들은 1년 계약직이고,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노사전 협의체가 운영되는 동안은 하청업체 용역 계약의 3개월 단위 연장에 따라 근로계약도 연장은 되고 있다. 하지만, 하루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요즘의 상황에서 3개월 이후는 점쟁이나 알 일인지 모른다.
더욱 웃지 못할 사항은 그 자리가 여전히 발전사 퇴직자들의 재취업 창구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와의 일상적인 사투와 낙탄 삽질을 경험하지 않은 발전사 퇴직자들 말이다.
적응하지 못한 채 퇴사에 따른 빈 공백은 교대근무 다른 과 인원의 대근으로 채우는 실정이다.
김용균 사고 이후 구성돼 운영되었던 설비개선 TF는 수많은 설비개선 항목의 공감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남기고 원청의 결정에 따른 셀프 설비개선 계획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낙탄 회수 장치는 650m 구간을 200m 구간에만 설치했고, 그마저도 무용지물로 재공사를 해야 해서 지금은 정지되어 있다. 여전히 그 넓은 공간과 길이를 삽질로 처리하고 있다.
분진 저감장치는 제작사의 제어시스템 외주화로 업체는 사라지고 현장 설비와 자동제어는 엇박자가 나게 되어 그 문제를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돌아온 것은 중점관리로 인한 노동 강도의 증가다. 벨트에서 떨어지는 낙탄을 물을 흘려 처리하는 워터크리닝은 보여주기식으로 김용균 사고 현장 타워 내부에만 설치했고, 다른 구간은 낙탄에 막혀 물이 역류하는 상황이라 사용을 못 하고 있다.
산더미 같이 쏟아지는 낙탄을 치우느라 그저 한결같이 삽질이다. 오죽하면 근로감독관이 점검창을 열어 보고서 쏟아지는 낙탄량에 탄식했을까.
<사진> 경향신문. 2020. 10. 15
원청 발전사와 김용균이 있던 자리
태안사업소의 휴게실에는 아직도 버젓이 2019년 2월 자,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장 명의의 벽보가 붙어있다. ‘사망사고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
최근 태안화력의 화물노동자 사망사고에 따른 태안화력 본부장의 특별안전교육 문서에 내용은 더욱더 가관이다.
“2018년 12월 중대 재해 이후 국민 눈높이에 맞게 현장 환경개선 및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했으나, 최근(9월 10일) 안전사고 재차 발생함. 발주사는 안전의식이 많이 개선되었으나, 협력사는 아직도 부족하다.” 등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청 발전사는 설비의 법적 소유권을 갖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손님일 뿐이다. 아무 권한도 없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손님 소유의 설비에 문제와 하자가 있다고 소리쳐도 소유권을 가진 발전사는 싫은 사람이 나가라고 한다. 그곳이 김용균이 일하던 발전소 삶의 현장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기업 발전소가 이렇듯 상식 밖의 내용으로 운영되는 실상을 그 누구도 잘 알지 못한다.
얼마 전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추석 명절 기간에 태안화력을 방문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환노위 소속 의원으로 화물노동자 사망사고와 김용균 사고 이후 실태를 점검하러 방문했다. 늘 그래 왔듯이 국회의원 방문을 앞두고 대대적인 청소 지시가 떨어졌다. 함께한 근로감독관들조차 깔끔해진 현장에 놀라워했다.
방문 다음 날, 화물노동자 사망사고에 따른 특별근로감독 기간 중에도 또다시 하청 비정규직 정비노동자의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대퇴부를 크게 다쳐 수술까지 했다고 한다.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모르겠다. 해마다 반복되는 죽음의 현장인 태안화력은 특별근로 감독이 아닌 상시 근로감독이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높아진’ 발주사의 안전의식만큼 높은 수위의 책임과 처벌이 강제되도록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한국발전기술의 임금협상 과정에서 실명을 지칭하며 고액연봉자라는 표현이 나왔다 한다. 하지만, 김용균의 급여명세서가 보여주듯이 그들은 최저임금 보다 고작 9만 원을 더 받았다. 그것도 임금협상의 결과이지 회사 측에서 알아서 올려준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하청업체는 발전퇴직자의 재취업 창구로,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을 양산하는 강소기업으로 키워졌고, 원청은 그 하청업체를 통해 이윤을 남긴다.
수도권에 공급하는 전력의 비중이 높은 영흥, 당진의 화력 발전소와 함께 태안화력은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9, 10호기에만 2만 톤에 가까운 석탄을 매일 컨베이어 벨트로 이송한다. 하루 상탄량은 정해져 있고, 저장 탱크의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개의 상탄 라인을 가동한다.
그러나 설비의 돌발 상황과 정비 시간을 고려하면 두 개 라인의 상시가동은 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태안화력의 설비 조건이다. 한 달 전쯤 모든 타워와 벨트의 점검창에 ‘벨트 기동 중 점검창 개방금지’라는 큼지막한 스티커가 부착되었다. 부착되기 전에는 어떠했을까? 아니 부착된 후에는 달라졌을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든 작업의 지시와 작업 상황을 카톡방에서 공유받는다. 원청의 지시사항은 사무실의 발전사 퇴직 간부들에게 전달되고, 각 교대근무의 파트장에게 지시된다. 벨트의 마찰열에 의한 자연발화를 해소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정지하고 낙탄을 처리해야 하지만, 그 요청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안전하지 않은 작업과 위험이 판단되면 바로 작업 중지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실제 그럴 수 있을까? 이것이 태안화력의 현장 상황이다.
부상과 죽음이 이어지는 태안화력 상황과 조건이 발주사의 자의적인 안전의식 개선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현장에 가끔 손님처럼 나타나서 지시사항을 남기고 사라지는 원청의 모습에서 개선된 안전의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장의 조건과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안전사고와 죽음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2년 전 김용균이 있던 그 자리에는 또 다른 김용균이 서 있다. 그 자리가 절망과 죽음의 자리가 되지 않도록 남아 있는 우리가 싸워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을 바꾸기 위해 꾸준히! 제대로! 투쟁해야 한다.
김경진 | 김용균재단 운영위원, 한국발전기술지부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