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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정선군 동면·임계면 ▒ 각희산 / 1,083m ▒ 화암8경 빚은 정선 소금강의 산 |
강원도 정선군 동면과 임계면 사이에 솟은 각희산(角戱山·1,083.2m)은 남쪽에 동대천을 끼고 그림 같은 절경을 펼친다. 화암약수, 거북바위, 용마소, 화암동굴, 화표주, 설암, 몰운대, 광대곡 화암8경이 그것이다. 이 화암8경을 보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나 각희산은 등산로가 알려지지 않아 아직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각희산은 예로부터 신성시되어 나라에서 벌채를 금지했다. 또 우리 민족 말살정책 일환으로 일본인들이 정상 부근에 박은 쇠말뚝 2개(큰 것은 길이 64cm, 둘레7cm)를 동면 번영회에서 중장비를 이용해 뽑았다. 쇠말뚝은 동면사무소에 보관하고 있다. 날씨도 쾌청한 9월 6일 오전9시 동면 화암리 삼거리에 보고싶은 얼굴들이 모였다. 하장의 청타산악회 남청희씨(44세), 삼척 풍곡 모르쇠산악회 엄기학(39세), 최봉순씨(38세), 태백 바위솔산악회 정이호(59세), 김기현씨(31세), 태백 주부들의 모임 산사랑회장 전혜자(44세), 김경애씨(44세), 정선 고한 노두산악회 주춘옥(41세), 전재옥(31세), 원미화씨(28세) 그리고 정선군청산악회 나병기씨(48세)가 이번 산행에 참가했다.
삼거리 양벽 위에 돌기둥이 우뚝하다. 신선이 기둥에 신틀을 걸고 짚신을 삼았다는 화암 8경 중 5경인 화표주다. 기념사진을 찍고 한창 도로공사 중인 화표동으로 5분쯤 걸어가니 밤 대추, 복숭아, 살구나무에 종종히 싸여있는 민박을 하는 농가 6채, 아주까리 울타리 마당에는 잘 익은 가을고추가 햇볕을 듬뿍 받아 눈이 어리다. 20분쯤 지나 비석과 묘3기가 나란히 있는 절골 입구다. 절골도 화표동소나무를 위하여 공사중이다. 여기서 421번 지방도를 버리고 왼쪽 절골로 발을 옮기니 멀리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시야에 든다. 10분쯤 왼쪽 등선이 절골에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있는 최동열씨(65세) 흙집이 메밀꽃을 뒤집어쓰고 있다. 수통에 물을 채우고 경운기 길을 따라 그대로 잠시 직진하니 갈림길이다. 이곳에 배낭을 벗어 놓고 화표동소나무를 보러간다. 왼쪽 계곡의 좁은 길로 올라서 구불거리는 메밀밭사이로 폐가 마당을 지나니 뒤늦게 기념물로 지정된 수령이 약1300년으로 추정되는 화표동소나무(94년 도기념물 66호 지정)다. 최근에 외과수술 토지개량 보호철책 등을 한 덕에 생육상태가 좋다. 알싸한 더덕향은 바람에 날리고 전해오는 얘기로는 이곳은 인근의 화표사라는 암자의 승려를 장사지낸 자리라고 하는데 주민들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승려의 혼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어 당산목으로 보존 관리하고 있다. 옆에는 생김새도 비슷한 고손자 정도 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노송을 뒤로하고 배낭을 벗어 놓은 삼거리에서 다시 수레 길을 따라 오른다. 길가에는 각시취, 참취, 쑥부쟁이 등 가을꽃이 한창이고 연보라색의 벌래미취 꽃이 돋보인다. 물봉선도 뒤질세라 흐드러지게 피어 정취를 더한다. 20분쯤에 오른쪽을 줄곧 따르던 계곡의 물줄기가 끊어질 무렵 넓은 고추밭 앞에 합수점이 나타난다. 이제는 수레 길을 버리고 본격적인 산행이다. 합수점 오른쪽 계류를 건너 능선 숲 속으로 곧장 올라붙는다. 능선까지 길이라고는 없다. 처음부터 배낭을 잡아당기는 숲 터널과 손등을 할퀴는 가시덩굴을 잠시 빠져나가면 흙으로 된 급경사다. 등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등산화에 밟히는 도토리 열매는 더욱 발을 미끄럽게 한다. 알싸한 더덕향이 바람에 날리는 된비알을 30분 걸려 능선에 닿았다. 잠시 휴식을 하는 겨드랑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다. ‘후드득’ 바람에 놀란 상수리 열매가 취재팀의 머리에 꿀밤을 놓는다. 이후부터는 북으로 이어진 날등을 따른다. 지금까지 오르던 것과는 달리 석회석 암릉길로 이어지며 그 틈에 뿌리를 박은 소사나무가 분재로 가꾼 모양새로 빼곡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사나무는 칼등 바윗길을 따라 정상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끔씩 굴피나무도 섞여있는 길을 30분쯤 오르락내리락 거리니 절골 큰덕골과 궁터골 안부다. 버실이재 쪽에서는 확장공사의 소음이 들려온다. 안부를 뒤로하고 바위턱을 넘으니 점점 경사가 급해진다. 나무뿌리를 잡고 낑낑거리는 와중에도 어린 더덕줄기가 눈에 자주 들고 남자색으로 꽃을 피운 주먹만한 절굿대가 큰키를 휘청거린다.
바위에 키를 낮춘 솔체꽃도 힘든 걸음을 멈추게 한다. 땀이 비오듯하는 된비알로 30분쯤에 4∼5평 넓이의 각희산 정상이다. 북쪽 잡목사이로 고양산, 문래산이 건너편에 솟았고 시계바늘 방향으로 고적대, 청옥산, 덕항산, 매봉산, 금대봉,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하늘과 맞닿아 일렁이고 있다. 가까운 남쪽으로 노목산, 지억산 뒤로 두위봉이 험상궂고 발아래에는 동대천의 협곡이 어디인가 분간을 못하겠다. 솔체꽃이 등산화에 밟힐세라 조심스럽고 붉은 입을 벌리고 있는 나도송이풀이 벼랑끝에 위태롭다. 하산은 서쪽의 무치로 잡고 정상에서 500미터쯤 내려선 무낼골 상단 가마훔 능선에서 중식을 펼쳤다. 진짜 가마처럼 우묵한 가마훔에는 참나물, 박쥐나물, 더덕, 곰취, 참취, 은난초, 둥굴레, 애기나리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곳을 소계천의 발원지라 하여 수출동(水出洞)이라 부르기도 한다. 능선에서 우연히 만난 고슴도치 가족 중식을 끝내고 자기소개와 노래를 곁 들이는 순간 나병기씨가 숲속에서 큰소리로 “고슴도치다!” 외친다. 하얀 가시에 검정색이 점점이 박힌 고슴도치 새끼 다섯 마리가 둥글게 뭉쳐있다 크기는 어른주먹만 하다. 기념사진을 찍어 주는데 주위에 서성거리는 어미가 있어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출연료로 옥수수 서너 통을 놓아주고는 기분 좋게 무치로 하산한다.
참나무가 넉넉한 작은덕의 안부를 지나 20분에 무명봉을 지난다. 잠시 내려섰다 다시 10분에 봉 위로 올라선다. 하산길은 정상을 오르던 길과 비슷하다. 암릉에는 계속 소사나무가 빼곡하고 바위턱을 만나면 직진하기도 하고 돌아 나가기도 하는 칼등능선을 10분쯤 가면 바위아래 소사나무 그늘에서 쉬어 가기에 좋다. 이후에도 몇 개의 절벽을 만나 돌아 내리며 능선을 놓치지 않고 10분쯤 따르니 처음으로 소나무도 구경할 수 있고 참나무도 보이는 흙 길로 나선다. 콘크리트 전주가 쓰러져 있는 작은 안부를 지나 묘잔등 같은 봉을 넘어서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를 빠져 나오니 오산마을과 북동리를 잇는 비포장길 무치(문치)다. 잠시 휴식을 한 뒤 남남서쪽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음을 빨리한다. 엉겅퀴와 비슷한 산비장이가 빨간 털모자를 쓰고 가을꽃들의 축제에 섞여 있다. 광산을 지나니 뽀얀 돌가루와 자갈이 뒤섞인 길이다. 서쪽으로 좌사리 마을과 행산(808.8m)의 그림자가 역광을 받아 아름답다. 무치를 떠나 50분에 동대천에 고기를 잡는 아이들의 어깨 위로 여울물이 반짝이고 뭉게구름 쪽빛 산릉에 걸터 저녁 노을을 기다리는 오산교다. <글 사진·김부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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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동면 화암리에 424번 지방도와 421번 지방도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도 좋고 임계방향 421번 지방도 절골입구부터 산행을 시작해도 된다. 한 채뿐인 절골 농가에서 식수를 준비하고 화표동소나무를 필히 들러본다. 계곡의 수레 길을 따라 오르며 유심히 살피면 고추밭이 있는 합수점이다. 이곳부터는 오지산행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수레 길을 버리고 계곡을 건너 숲 속으로 들어 산비탈을 타고 30분이면 능선에 닿는다. 이후부터는 길이 뚜렷하다. 소사나무 빼곡한 암릉으로 1시간에 정상이다. 하산은 서쪽 주릉을 타고 20분에 무명봉. 무명봉 왼쪽으로 하산길이 있으나 그대로 직진하여 내려서면 다시 무명봉이다. 이후부터 무치 방향을 가늠하고 능선을 놓치지 말고 암릉을 그대로 지나기도 하고 돌아 내리면 무치다. 정상에서 1시간 소요된다. 이 길은 자일이 필요 없으나 길을 잘못 들었을 경우를 생각하여 보조자일을 챙기는 것이 좋겠다. 산행 후 화암8경을 돌아보는 여유도 생각해 봄직하다. 화암삼거리∼절골∼정상∼무치∼오산교에 이르는 총 산행시간은 4시간20분에서 5시간쯤 소요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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