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필문예창작론
해양수필의 개념과 바다 공간
권대근
문학박사,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교수
I. 열며
산업사회의 현대는 독자를 감동시키는 강렬한 흡인력과 공감대를 지닌 수필을 요청한다. 수필의 미래상을 예언한 에드워드 A. 뉴턴은 『아메리칸 에세이』의 서문에서 "지구라고 하는 유성에서 삶을 고민하는 한 세상만사에는 깊이 생각해야 할 바가 많다. 이 온갖 이야기를 에세이만 담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뉴턴이 말한 수필의 보편성이야말로 소재의 다양성에 의미를 둔다고 하겠다. 문학적 보편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수필은 편중적인 소재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틸 다이가 상상을 '소재를 변형시켜 새 현실을 창조하는 힘'이라고 한 것은 소재의 확장이 수필 영역의 확대와 직결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서 한국수필은 그 동안 멀리 해온 '바다' 소재의 접근성을 요구받는다고 하겠다. 위의 측면에서 이 시대의 많은 문인들은 하나뿐인 지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해양문학' 등의 장르를 내세우면서 '바다'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II. 펼치며
II-1. 해양수필의 개념
해양문학의 개념 정의와 관련하여 구모룡은 엄밀한 의미에서 바다 수필의 구성요건을 '바다', '배', '항해' 세 가지로 든 바 있다. 소설의 경우 이런 세 가지요건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바다소설은 이미 동서양에 공히 많이 공존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허만 멜빌의 『모비 딕』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김원일의 『앓는 바다』, 강인수의 『밀물』등의 소설 등이 그것이다. 이들 소설은 대체적으로 무대가 바다 위이고, 배가 나오고, 항해 중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수필의 경우는 이런 작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아동문학가 오정임이 『부산여류문학』에 발표한 수필 '바다, 그대와의 화해를 위한'은 '바다', '배', '항해'의 삼 요소를 갖추고 있는, 협의의 관점에서 본 진정한 의미의 해양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바다 위의 배에서 전개되는 승선 체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르트만은 공간을 삼분하고 있는데, 실제공간, 직관공간, 이념공간이다. 수필의 제재로서 '바다'의 존재는 실제 공간이다. 여기서 실제공간은 우주적 자연 공간으로서 경험적 가시 공간으로 풀이될 수 있다. 문제는 해양문학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관점이다. 좀더 엄밀하게 해양수필의 구성요소를 정하여 해양수필의 개념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으나, 필자는 해양문학 내지 해양수필의 개념을 광의적으로 봐서, 일단 '바다'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 ‘바다수필’ 또는 ‘해양수필’로 본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나라의 ‘바다’ 관련 수필들도 가치 개념으로 보아서 ‘해양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해양문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해양수필의 지향점은 항해 체험이 녹아 있는 그런 바다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에 살면서도 수필가들이 바다에 관한 소재로 수필을 잘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제 필자는 본고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해양수필의 개념을 정리하고, 바다 소재가 우리의 해양수필에서 어떻게 접맥되고 있는지 그리고 해양와 관련된 공간적 제재를 어떻게 해야 수필이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수필에서 제재를 설정한다는 것은 수필의 전모를 구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II-2. 해양수필과 바다 공간
수필작품의 공간은 수필가가 관찰하고 회상하고 상상하는 대상과 그 대상이 있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은 작품 속에서 분리되지 않고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 상상력은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변형 해방 창조라고 주장한 바슐라르의 견해를 주시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것은 이 지상엔 주물주가 창조한 우주적 자연 공간과 작가의 상상력이 창조한 인위적 공간이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시간적인 구조와 공간적인 구조를 갖는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는 상관성을 지니며, 이 실체가 없는 시간과 공간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칸트와 베그로송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 중요한 철학적인 명제의 하나가 되었다. 문제는 바다가 나온다고 해서 해양수필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다와 인간이 만나 나누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 편으로 바다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바다 쪽으로 향하여 가서 어느덧 사물과 작가가 경계를 잊고 하나가 되는 동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보편적으로 각 민족의 천지 창조 신화를 보면 육지와 바다는 원초적 분할의 두 번째 단계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가령 그리스 신화를 예로 들면 태초의 카오스 상태가 코스모스의 세계로 진입할 때 첫 번째로 분할되었던 것이 하늘 즉 시간과 땅의 공간이며, 두 번째로 분할된 것이 각각 하늘은 빛과 어둠, 그리고 땅은 육지와 바다이다. 동양에서도 음양의 이치에 따른 팔괘의 조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빛과 어둠은 시간의 개념이고 바다와 육지는 공간의 개념이므로 공간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보면 바다는 이 우주를 구성하는 두 요소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바다의 물은 열심히 바다와 대기권을 넘나들며 비나 눈이 되어 끊임없이 지표면을 쓰다듬으며 땅 위의 비옥한 성분을 바다로 쓸어내려 바다를 풍요롭게 해왔다. 지구상의 첫 생명도 이런 바다의 정성으로 빚어졌다고 한다. 인류 출현 이후 바다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뱃길로, 상소 공급자로, 때로는 기후 변동의 완충자로 인류를 도우며 포용하였다.
인간에게 있어 바다는 환경인 동시에 문화다. 바다를 함께 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치열한 삶의 일부분이고 도전과 응전 속에서도 경외와 적응 속에서 삶의 순리를 따르기도 하였다. 미래로 가고 있는 수필 속에서 바다는 중대한 화두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 물의 총합으로 표징되는 바다, 생명의 원천으로 화합과 끌어안음의 그 바다를 배경으로 하거나 주요 대상물로 하는 해양문학은 사람도 등장하지만, 주역을 담당한 바다라는 무대에 내포된다. 인간이 주거하는 공간이 아닌 바다를 그 자체로 자연이라고 부르는 데 별다른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육지의 경우는 다르다. 인간이 생활하는 공간과 자연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 더불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자는 도시, 후자는 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막이나 극지의 설원 혹은 툰드라 같은 특별한 지역도 인간의 삶을 벗어난 공간이 아님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특히 한국과 같은 지형에 있어서는-인위적인 삶과 대비되는 공간은 산이다. 인간의 생활 공간이라 할 도시와 마을은 산 밖에 있는 것이다. 비록 인간의 삶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산 속에서 산과 더불어 영위될 경우 우리가 간단히 그것을 자연 속의 삶이라고 말해 버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자연을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산과 바다를 들 수밖에 없다.
자연이라는 관점에서 바다는 공간을 구성하는 두 요소 중 하나다. 그만큼 바다는 자연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다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모성 혹은 생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신화원형적인 관점에서 그럴 뿐 실제의 문학작품에서 등장하는 바다가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바다를 소재로 하거나 또는 바다에서 직접 취재한 문학 작품은 예로부터 다른 문학 장르에는 많이 있었다. 구약성서의 '요나서'나 그리스 신화가 그렇고, '보물섬', '백경', '노인과 바다'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반도의 삼면이 바다를 끼고 있는 까닭에 자연스럽게 바다를 읊은 노래가 많다. 우리 시가의 최초 작품이라고 말해지는 '구지가'나 '공무도하가'가 바다 또는 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부터 그렇다. 그러나 고대시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에 투영된 바다의 모습이 한결같지 않으리라는 것은 물론이다.
논리적 사고 원리에 따르면, 모든 존재의 조건에는 시간과 공간의 관련성이 필연화하게 되는데, 이를 논리학에서는 '존재이유충족률'이라 한다. 여기에는 우주나 자연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적 질서나 우주적 항구성도 시간 및 공간적 질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수필 작품의 공간은 필자가 관찰하고 회상하고 상상하는 대상과 그 대상이 있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은 작품 속에서 분리되지 않고 결합되어 있으나, 작품의 분석과 해석을 위하여 따로 고찰할 수 있다. 여기서 상상력은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변형, 해방, 창조라고 주장한 바슐라르의 견해를 주시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것은 이 지상엔 조물주가 창조한 우주적 자연 공간과 작가의 상상력이 창조한 인위적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다는 우주의 자연 공간으로서 사물 공간이다. 바다는 우주적 자연의 원형사물로서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존재들이다. 존재의 조건은 공간을 요구하고 존재의 조건으로서의 공간이 우주, 자연이라는 데서 원형사물들은 우주적 자연을 대표하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우주를 조물주가 창조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면 수필가가 창조한 공간은 체험의 바탕 위에 상상력이 창조한 인위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우주적 자연 공간에 대응되는 인위적 창조공간은 크게 두 유형으로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그 하나는 초월의 공간으로서 피안공간이라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모든 존재를 언어로 형상화하거나 언어권으로 편입시키는 언어공간이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언어예술의 한 장르다. 허구적 양식인 시와 소설과는 달리 수필문학은 체험의 영역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수필문학이 확보하고 있는 언어공간은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수필에 있어서 공간은 외적 공간 즉 현실공간, 내적 공간 즉 회상적 공간, 다음으로 관념적 공간 즉 상상적 공간으로 구별될 수 있다. 현실공간은 지은이가 최근에 관찰하였거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관찰하여 온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현실공간은 바람직한 상황을 암시할 수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암시할 수도 있다. 회상적 공간은 지은이가 과거에 그곳에 있었거나 관찰한 공간이다. 회상적 공간은 현재에도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나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일 수도 있고, 이제는 과거와 달라졌거나 사라진 곳일 수도 있다. 지은이의 의식이 현실 공간을 벗어나서 회상적 공간으로 이동하는 수필은 현재의 현실이 바람직하지 않고 미래에 희망이 없는 지은이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경향이 있다. 상상적 공간은 지은이가 작품 속의 인물이 현실공간으로부터 벗어나서 가고 싶은 공간이다. 상상적 공간은 지은이의 새롭고 즐겁고 행복한 생활에 대한 희망을 암시할 수 있다. 지은이는 몸이 현실 공간에 있으면서 마음은 상상적 공간에 있을 수 있다.
III. 닫으며
인간의 삶은 시간적인 구조와 함께 공간적인 구조를 갖는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는 상관성을 지니며, 이 실체가 없는 시간과 공간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칸트와 베르그송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 중요한 철학적인 명제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인간은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삶의 지표를 둔다. 즉 자연을 떠나서는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 인간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는 개념으로 보면 자연과 인간의 상관은 절대성을 갖게 된다. 문제는 바다가 나오고 파도가 나온다고 해서 해양수필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다와 인간이 만나 나누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편으로 바다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다 쪽으로 향하여 가서 어느덧 사물과 작가가 경계를 잊고 하나가 되는 동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