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유배작품, 왕욱(王郁)의 '증내시고현환(贈內侍高玄還)'> 해암 고영화
우리나라 유배문학의 효시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정서의 ‘정과정곡’보다 시기적으로 170년이나 앞선 작품이 있다. 고려 왕족인 왕욱(王郁)이 유배지 사천시(泗水縣)에 도착하자 호송책임자 내시알자(內侍謁者) 고현(高玄)에게 써 준 시(詩), “돌아가는 내시 고현에게 주다(贈內侍玄還)”가 새로이 최초의 작품으로 밝혀지고 있다.
고려 현종의 아버지 왕욱(王郁 ?∼996)은 고려 전기의 왕족으로 이름은 욱(郁)이다. 고려태조(太祖)의 여덟째 아들로 어머니는 신라경순왕(敬順王)의 큰아버지 김억렴(金億廉)의 딸인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 김씨(金氏)이다. 집이 개성송악산(松嶽山)의 왕륜사(王輪寺) 남쪽에 위치하였는데, 부근에는 경종(景宗)의 비(妃) 헌정왕후(獻貞王后) 황보씨(皇甫氏)의 사저가 있었다. 마침 경종이 죽고 헌정왕후가 사제에 나가 있던 중, 안종(安宗 왕욱)이 그녀와 친하게 지냈다가 서로 정을 통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사수현(泗水縣 경남 사천)에 유배되고, 헌정왕후는 현종(顯宗)을 낳은 뒤 곧 죽었다. 경종의 왕비 헌정왕후와의 비극적 사랑으로 인해 경남 사천에 유배된 왕욱(王郁)이 자신을 유배지로 데려온 내시 고현(高玄)을 돌려보내며 비통한 마음을 담아 지은 7언율시를 소개코져 한다.
이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황성의 개경을 떠나 한탄하는 마음과 유배지에 도착하여 체념하는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성종은 왕욱에게 "숙부가 대의를 범해 유배를 보내는 것이니 초조해 마시라"고 위로했다. 내시부 알자 고현이 압송하라는 명을 받았다. 내시 고현이 돌아가기에 왕욱이 다음 시(詩)를 써주며 말하길,成宗流郁 泗水縣 謂曰 “叔犯大義 故流之 愼勿焦心” 命內侍謁者高玄押送 玄還 郁贈詩曰]
● “돌아가는 내시 고현에게 주다(贈內侍高玄還)”/ 왕욱(王郁) 사천시에서.
與君同日出皇畿 그대와 함께 같은 날 황성을 나왔건만
君已先歸我未歸 그대는 이미 갔는데 나는 아직 못 갔구나.
旅檻自嗟猿似鏁 나그네 외로운 몸 사슬에 묶인 잔나비 같아
離亭還羨馬如飛 말 타고 날아가듯 돌아가는 그대가 부러워라.
帝城春色魂交夢 황성의 봄빛을 꿈속에서나 보려나
海國風光泪滿衣 바다 풍경 바라보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聖主一言應不改 임금의 한 말씀 응당 고칠 길 없으니
可能終使老漁磯 바닷가에 나가 고기나 잡으며 늙으리라.
왕욱(王郁)의 아들, 어린 현종은 성종(成宗)에 의하여 길러지다 두 살 때 유배지에 있는 왕욱(王郁)에게 보내져 성장하게 되었다. 왕욱은 문장에 능통하고 또 풍수지리에도 밝아, 죽으면 묻힐 묘지까지 정해놓았다고 한다. 1009년 왕위에 오른 현종은 1017년 그의 묘를 건릉(乾陵)에 이장하고 후에 무릉(武陵)이라 칭하였으며, 추존하여 효목대왕(孝穆大王)이라 하였다가 1021년 효의대왕(孝懿大王)이라 고치고, 묘호(廟號)를 안종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