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2] 이명희(李名熙) - 부활의 체험을 맛보며 2. 잘못된 신학 입학 - 1 1 1953년 대학 진학 때의 일이다. 학교의 담임은 내가 크리스천이므로 연세대학교를 권유하셨다. 그때 연세대학교는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중 석차 5번 이내의 학생을 학교장이 추천하면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는 특전이 있었다.
2 그래서 다행히 몇백 명 되는 졸업 예정자 중 그런 특전을 받을 수 있는 혜택권 내에 끼어 담임도 더욱 연세대학교로 나를 권유하셨던 것 같다. 나도 그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상의를 드렸더니(그때는 이미 할머니 아버지께서 타계하셨을 때였다) 어머니께서는 한참 생각하시다가 할머니 유언이 회상된다는 것이었다.
3 할머니께서는 4남매의 둘째인 나를 가장 귀여워해 주셨다. 할머니는 문 씨 가문에서 태어나셔서 옛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시던 조부 및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자라나면서 비록 여자이지만 문필과 문장이 어느 남자 어른들보다 능하셨다.
4 그래서 옛날 고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옥루몽 등의 책들을 붓글씨로 옮겨 쓰셔서 기름을 먹여 가득히 장에 쌓아둔 것을 본 적이 있으며, 동지선달의 긴긴 겨울밤이면 동네 할머니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시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성경을 읽어 드리지 않으시면 소설책을 읽어 주시곤 하였다. 그런데 그 읽으시는 음성이 하나의 아름다운 멜로디로서 듣는 이들이 반할 정도였다고 한다.
5 나에게도 늘 책 읽기를 권하셨으며, 국민학교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방학 동안에는 신•구약 66권의 성서 읽기를 권하셨다. 성서를 통독한 것이 그때 처음이었다.
6 어렸던 때로, 별 깊은 뜻은 몰랐다 하더라도 주일학교에서 늘 구약의 역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터이고, 신약의 예수님의 행적과 바울 선생의 말씀을 들어왔던 터라 그런대로 그때 성서에 대한 일관성 있는 내용을 터득할 수가 있었다.
7 그렇게 신앙 생활에 영향을 주신 할머니께서는 늘 입버릇처럼 손자가 귀여워서도 그러했겠고, 우리 집안에서 목사가 배출되는 것이 소원이었기에 나를 목사 시키시려고 하셨던 것 같다.
8 당시 나의 눈에도 목사라면 굉장히 우러러 보이고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인격적으로 본받을 만한 정말로 하나님의 대신자와 같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된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9 그런데 대학 진학을 결정해야 할 순간에 어머니께서는 내가 존경하고 따랐던 할머니의 유언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신학교 이야기를 하셨으니 어머니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셨던 것 같다.
10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그때 우리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 의논하셔서 목사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공작도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목사님도 나에게 신학교 입학에 대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 중의 한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