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웰니스 인플루언서들이 바나나가 베리의 건강 효능을 떨어뜨리므로 '베리 스무디에 바나나를 넣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Food & Function》에 실린 2023년 논문, '과일 스무디에서 폴리페놀 산화효소가 플라반-3-올의 생체이용률에 미치는 영향'을 인용한다. 폴리페놀은 식물성 항산화 물질의 가장 큰 상위 개념이며, 그 아래에 다양한 하위 그룹인 플라보노이드가 속해 있다. 플라바놀(플라반-3-올)은 플라보노이드의 하위 분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연구는 '베리 스무디에 바나나를 넣었을 때'의 효과를 평가하지 않았다. 실험 내용은 이렇다. (1) 일정량의 플라반-3-올을 바나나 스무디에 넣고, 섭취 후 혈액에 얼마나 흡수되는지 측정했다. (2) 또 같은 양의 플라반-3-올을 150g의 혼합 베리 스무디에 넣고 역시 혈액 속 흡수량을 측정했다. (1)의 경우 (2)보다 플라반-3-올 혈중 농도가 낮게 나타났다. 그러나 베리 스무디에 바나나 조각을 넣거나 넣지 않은 경우를 비교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바나나가 베리의 영양소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된 배경 지식을 조금 살펴보자.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졌지만, 식물성 식품의 화학 성분이 워낙 복잡해서 '왜 좋은지'를 정확히 밝혀내기는 매우 어렵다. 예컨대, 블루베리에는 수백 가지 화합물이 들어 있는데, 그 중 플라보노이드가 특히 관심의 대상이다.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한 식품∙보충제가 혈류 매개 혈관 확장Flow-Mediated Dilation, FMD을 개선한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FMD란 혈류에 반응해 동맥이 얼마나 잘 넓어지는지를 측정하는 지표이다. FMD가 개선되면 동맥이 더 건강하고 반응성이 좋다는 뜻이며, 심혈관질환 위험이 낮아질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혈중 플라보노이드 수치가 높은 사람들이 실제로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덜 겪는지 여부인데, 그런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연구진은 왜 이 실험을 했을까?
바나나에는 폴리페놀 산화효소PPO가 많이 들어 있는데, PPO는 바나나가 으깨져 세포막이 손상될 때 방출되고, 방출된 PPO는 폴리페놀의 생물학적 활성을 파괴한다. 폴리페놀을 퀴논으로 바꾸고, 퀴논이 아미노산과 반응해 갈색의 비활성 중합체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과가 갈색으로 변하는 것도 같은 반응이다.
으깬 바나나의 PPO는 베리에 들어 있는 플라반-3-올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베리에 풍부한 폴리페놀은 플라반-3-올이 아니라 안토시아닌이며, 안토시아닌은 PPO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다. 물론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도 파괴되지 않는다.
전체 맥락에서 보면, 바나나를 베리 스무디에 넣으면 일부 폴리페놀(플라바놀)이 손실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미미하다. 그렇지만 바나나는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를 더해 준다. 바나나 때문에 폴리페놀이 손실되는 것이 싫다면, 스무디를 만들지 말고 그릇에 베리와 바나나를 담아 그냥 먹으면 된다. 스무디의 부드러운 식감이 필요하지만 바나나를 넣고 싶지 않다면 아보카도를 넣으면 된다. 영양소도 풍부하고 폴리페놀 산화효소도 없다.
스무디에 바나나를 넣을지 말지 걱정하기보다는, 하루에 과일과 채소를 최소 5인분 이상 꾸준히 섭취하는 데 집중하자. 사족을 달자면, 이 논문의 제1저자는 초콜릿 제조사이자 코코아 유래 플라바놀 보충제를 판매하는 마스Mars 소속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플라바놀의 이점에 주목하게 만드는 연구라면 실제 실용적 의미 유무에 관계없이 지원할 동기가 충분할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