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산책길에서
글 德田이응철(강원수필문학회)
소양강물이 불어나 휘몰아친다.
비 온 뒤라 우두 소슬뫼 뒤엔 젖은 흙내음도 구수하다. 샤워가 끝난 모든 초목이 더욱 싱그럽고 청순하다. 호수 산책로가 우두 소머리에 바짝 붙으니 코뚜레 고삐를 잡고 걷는 농부의 형국이다. 갑자기 힘이 솟는다. 오후 세 시, 예전에 인천서 소금 배가 거슬러 오르던 종착지 샘밭에 오일장이 오늘따라 한산하다.
치매란 놈이 장안에 화제라 시도 때도 없이 뇌리에 껴든다. 요즘 친구들이 저마다 나름대로 온통 치매로 여념이 없다. 어떤 여자 친구는 멀쩡한데 며칠 후 치매 점검을 예약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전한다. 놀랍다. 물론 가장 무서운 병이 치매란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대뇌 신경세포의 손상인 치매-.치매癡呆는癡어리석을 치,呆어리석을 매로 매우 어리석은 병임을 강조한다. 고향 형수가 치매에 걸려 그옇고 세상을 떠나 치매의 변질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치매는 후천적이다. 평소 말이 없고 비교적 배움이 적은 이들에게 나이가 들면서 틈새를 넘보는 병이라고들 한다. 침묵은 금이라는 표현이 이런 경우 금도를 깨는 것 같기도 하다. 시대와 다르다. 멀쩡한 죽마고우가 치매 진단받고 운전면허도 반려했다. 고향가서 친구한테 귀를 기울인다. 특정한 것에 생각을 오래 하지 못한다고 한다. 저런-. 어떤 화제로 이야기하다가도 이내 흰 커튼을 치듯 가로막아 더 이상 생각을 못하게 한다고 술회한다. 특히 운전의 경우 얼마나 위험한가! 아무리 무서운 악성종양이라도 수술도 감행하여 방법을 찾지만, 예방도 없이 일단 치매로 판명되면 좋아지지 않아 가정에서 병 구완이 어렵다고 한다.
칠순을 넘으면서 두뇌에 이상이 파도칠까 두렵다. 글쟁이들은 치매가 틈타지 못한다고들 떠들지만 아니다. 늙음에 독버섯처럼 기생한다. 이럴 땐 언젠가 들은 강의 내용을 하나씩 펼쳐 잘근잘근 되집어 보곤한다. 우선 첫 번째 예방은 매일 친구를 만나고 집안청소를 하란다. 하루를 누구와 만나 무엇을 하며 대화의 꽃을 피우느냐가 최근 너나 할것 없이 모두의 관심사이다. 동감이다. 따라서 삼삼오오로 만나 돌아가면서 이름난 맛집에서 식사하고, 2차는 커피집에 가서 한 시간 노닥대다가 헤어지는 것이 이젠 필수코스가 되어버렸다.
나의 경우 문학 선후배들 모임이 네 덧 그룹이나 된다. 16명이 매달 만나 회포를 푼다. 모임 이름도 없다. 거창하지 않다. 회장도 없다. 회비도 없다. 네 명이 만나 식사하면 자연스럽게 다음, 그 사람 다음 순번이 정해져 밥을 사게 된다. 물처럼 자연스럽다.서로 편한 날을 잡아 산천 경개 좋은 곳에서 모여진다. 그날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산책길에 습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안개와도 같은 우리네 삶. 아름다운 강산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치매가 가로 막아선다면 생각만해도 절벽이다. 두 번째로 치매 예방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것, 두뇌를 자극해 집착할 수 있는 변화를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멀어지는 컴맹 세대들, 매사가 귀찮아 젊은 딸이 내겐 해결사 노릇을 하지만 그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다. 편치 않다.
인터넷 강의를 듣고,악기를 배우고, 인터넷 신문을 읽는 일들을 펼치는 것이 치매를 막는 첩경이라고 한다. 진정 노구를 이끌어 다소 힘들어도 참여하는 태도가 중하다.
지금처럼 주 3회 이상 걷기 또한 중요하다. 1회에 30분 이상 걷는데 3, 4킬로를 걸어야 한다. 만 보 이상-. 우거寓居인 11층에서 내려다보면 눈만 뜨면 일찍 노인들이 기상한다. 손수레를 밀고 가방을 메고 여기저기 오가는 발길 모두가 치매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행렬이다. 스님은 치매 환자가 없다고 한다. 108배 효능이 분명하다. 박장대소하고 요절복통하라. 점잖보다 낙천적인 대인관계가 절대 필요하다. 손뼉을 치고 황경막이 자유롭도록 머리에 손을 얹어 자극을 주기도 하란다. 무엇보다 나이와 상관없이 뜨겁게 사랑함 또한 치매를 도망치게 하지만 노년의 사랑 어떻게 엮어 아름답게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역시 명약이다.
엄청난 비가 양동이로 쏟아붓 듯 내린 조금 전 우두 뒷길을 걸었다.
예전 우두 뱃터로 향한다. 여기서 배를 타고 솔숲 워나리까지 가서 나무를 해 싣고 배삯을 내고 돌아오던 소양강-. 생전에 상리에서 유년을 보낸 대형께서 들려주셨다. 소나무 숲에서도 송진에서 오존이 방출되어 소나무 숲은 매우 공기가 깨끗하다. 흠뻑 깊숙히 마신다. 변덕이 심한 날씨로 공기 중에 아직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비 온 뒤의 산책길이 또 다른 맛을 준다.
산책길-,물소리 바람 소리-. 농로에서 목적이 사라지면서 이탈해 강으로 낙차하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다. 아내는 비 온 뒤 습도로 오존농도가 짙어 안 좋다고 입버릇처럼 일렀지. 퍼붓고 난 하늘도 마음이 후련했는지 시원한 바람을 능청스럽게 몰고 온다.
깎아지를 듯한 소머리(우두산) 뒤편엔 전세로 살다 떠난 벌통들이 여기저기 뒹군다. 치장을 하고 월세로 불러도 벌들은 이미 떠나고 없다.
산책하며 온통 치매란 놈이 나를 지배했지만, 금강산에서 내려주는 맑은 물에 수족을 씻고 홀가분하게 걷는다. 신선과도 같다. 모처럼 비 온 뒤 혼자만의 정취는 소인국 군주가 된 기분이다. 뿌듯하다. 맑은 공기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신록의 내음들. 감입곡류 하는 소양강물이 굽어 도는 우두 소슬뫼의 암벽을 제대로 꼼꼼이 표현 못하는 무뎌진 붓끝을 글쟁이는 원망하며, 이 또한 치매가 아닌가 한 번쯤 돌아본 날이었다.(끝)
첫댓글 공감가고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술술술 거미줄 나오듯 하십니다. 대가이십니다.
비온 뒤 산책은 해 본 사람만이 느끼는 오롯한 분위기가 있습니다..ㅎㅎ아내는 오존때문에 질색팔색을 하지만 많은 문학의 메시지를 안고 돌아왔지요.감사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