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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내리는 하얀 함박눈은 풍진에 묻힌 속세인들에게 비우라 비우라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품어주는 듯 하다. 사진은 화암사 대웅전과 8각 9층탑 전경.
| 신라 혜공왕 5년(769) 진표율사가 창건 범상치 않은 기운 뿜어내는 수바위 일품 가을이면 단풍 형형색색으로 절집 포위
“마음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중략)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중략)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엄사 앞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암사 내사랑, 찾아가는 길은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안도현의 시 ‘내 사랑, 화암사’중 일부다. 물론 이 시의 주인공은 전북 완주 화암사(花巖寺)다. 그런데 만일 안도현 시인이 강원 고성에 있는 화암사(禾岩寺)를 눈내리는 겨울에 찾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읊조리지 않았을까?
“경내 풍경소리 천년을 울려 날 짐승 들 짐승과 소통한다/ 무심한 수바위 앞에 합장한 손 가슴 가까이 닿을수록 그 정성 깊어지고/ 그칠 줄 모르는 속절없는 함박눈 속에 번뇌는 잠시 파묻힌다.”
화암사는 지도상에서 보면 설악산국립공원에 속한 상봉(1,242m)의 정동쪽에 있다. 그런데 일주문 현판에는 ‘金剛山 禾岩寺(금강산 화암사)’라고 적혀 있다. 아마도 옛날엔 이 절이 위치한 곳까지 금강산 자락이었던 것 같다. 일주문서 경내까지 들어가는 2킬로 남짓 달하는 길은 사시사철 가히 일품이다. 봄 에는 꽃길, 여름에는 녹음길, 가을에는 단풍길, 겨울에는 눈길 등 사시사철 옷을 갈아 입는다. 지금은 겨울인지라 눈이 소복히 쌓여 있다. 특히 화암사는 지형적 영향으로 심지어는 4월에도 눈구경을 할 수 있을 만큼 눈이 많이 오는 사찰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언제 가더라도 대부분 눈을 볼 수 있다.
1월 7일 눈발이 간간히 날리는 화암사는 평일인데도 지난해 사찰 주변 등산로를 개설해서인지 경내엔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이 제법 눈에 띠었다. 이 중 풍광을 감상하던 한 관람객은 “와 이렇게 좋은 절을 여태껏 우째 몰랐노”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행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에 동조한다. 그렇다. 화암사는 잘 생긴 사찰이다. 그래서 이 곳에 와서 첫 눈에 반하는 이들이 많다. 더더군다나 계절이 변하면 절이 발산하는 풍광의 매력도 다양하니, 속칭 동물로 얘기하면 카멜레온이다. 외모만 번지르한게 아니다. 뼈대 있는 가문처럼 사력 또한 여느절 못지 않은 천년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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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의 1천년 역사를 말해주는 고승 부도전.
| 화암사는 신라 혜공왕 5년(769) 진표율사가 비구니 도량으로 창건했다. 진표율사는 법상종 개조(開祖)로서 법상종은 참회불교의 자리매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간성지 화암사조에 의하면, 미시령 밑에 화암(禾岩)이란 바위가 바른편에 있기 때문에 절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고 한다. 화암사는 창건 이래 고종 원년까지 1096년간 화재가 5번이나 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11년 건봉사 말사가 되었고, 1915년 소실, 6.25 전쟁으로 폐허, 1986년 중창되는 등 화재와 중건을 거듭하다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때 불교국가 1천 여 명이 대웅전에서 대규모 수계를 받아 유명해졌다. 동쪽으로는 발연사가 있고, 서쪽에는 장안사, 남쪽에는 화암사가 있어 금강산에 불국토를 이루려는 진표율사의 뜻이 담겨 있는 사찰이다. 화암사는 마주보는 능선에 ‘수바위’란 이름의 웅장한 암봉이 절집과 어우러져 범상찮은 기운을 뿜어낸다. 화암사를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 족두리 같기도 하고 편썰기해서 그러모은 마늘 덩어리 같기도 한 바위가 빠지지 않는다. 바로 수바위다. 볏가리 모양 같다고 해서 처음엔 화암(禾岩)이라고 불렸다. 절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그런데 이 ‘화’자가 거듭된 화재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뒤에 물 수(水)자로 바꿨다. 빼어날 수(秀)자라는 사람도 있다. 여하튼 그 모습이 무척 늠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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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풍광과 기를 발산하는 거대한 ‘수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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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를 다시 찾고자 한다면 가을에 올 것을 권한다. 백미는 단연 단풍이다. 절집 뒤편 미타암과 조실전인 영은암 앞 계곡의 화암폭포 주변부터 불붙기 시작한 단풍이 형형색색으로 물들면서 절집을 포위하면 가히 장관이다. 화암사 단풍은 가을이면 일시에 폭죽처럼 터진다. 빛깔만큼은 설악의 것보다 훨씬 더 곱다. 이처럼 화암사의 빼어난 풍모는 아는 이들만 안다. 설악산이 온통 몰려든 단풍 행락객들로 북적거릴 때도 이곳 화암사는 덜 붐빈다.
화암사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전통 찻집 ‘란야원’과 선물 가게를 겸한 찻집인 ‘수암전’이다. 직접 신선한 재료와 약초로 끓여 내는 뜨거운 차 맛은 화암사의 매서운 칼바람에 지친 나그네의 추위를 녹여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바위를 벗삼아 향긋한 차 한 잔을 앞에 두는 정취만으로도 그곳을 찾은 보람은 충분하다.
“미륵대불 건립 연내 완공 예정” 화암사 주지 웅산 스님
“올해 화암사는 높이 10m 대형 미륵대불과 해맞이 공원조성 불사를 연말까지 마칠 예정입니다. 완공 되면 이곳서 해맞이 기도를 봉행할 것입니다. 대개는 사찰서 1월 1일 새해 첫날 해맞이를 하는데 우리 화암사에서는 1년중 해가 가장 긴 하지에 해맞이 발원 기도 법회를 할 것입니다.”
제 2의 중창불사를 이끌고 있는 웅산 스님은 올 한해 화암사가 크게 변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엄사는 고성군과 지난해 8월 주민들에게 쾌적한 산림 휴양시설을 제공하기 위해 사업비 9400만원을 들여 화암사 주변 경관이 빼어난 산림 내 수바위(일명 쌀바위), 성인대, 옥문바위 등 기암괴석을 최대한 활용해 숲길을 정비했다.
또한 화암사 일대가 2019년까지 400억원이 투입돼 ‘산사의 숲’으로 만들어진다. 이는 화암사를 중심으로 436만2946㎡규모로 금강 탐방로(숲길)과 치유의 공간으로 나눠 조성된다.
화암사 본다라 템플라이프
지난해 여름 ‘본다라’ 템플스테이를 새로 마련했다. 본다라라는 의미는 태어남(born)과 죽음(die)의 영단어에 접미사 라(la)를 결합한 것인데 주지 웅산 스님이 지었다. ‘생과 사의 참의미를 체득한다’는 심오한 뜻이 담겼다. 생사 문제는 모든 인간의 가장 근원적 물음이다. 화암사 ‘본다라’ 템플스테이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으며 또한 자유롭다. 본다라 템플라이프는 △정기템플스테이 △단체, 가족 템플스테이 △휴식형 템플스테이 △템플라이프 등으로 구분된다.
시간이 넉넉지 않다면 2~4시간의 템플라이프가, 좀 더 알찬 체험을 원한다면 매주 토~일 정기 템플스테이가 적합하다. 정기 템플스테이의 경우 참선수행과 108배, 발우공양과 성인대 등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불교문화 체험의 바로미터로 인기가 높다. 스님과의 차담과 숲길 걷기 등 문화적 요소를 강화한 프로그램 ‘산사의 숲’도 마련돼 있다. 특히 주지 스님이 9가지 약초를 달여 만든 '화란차'는 화암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사전예약을 통해 연수, 세미나, 워크숍 등 단체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다. (033)633-1525 www.화암사.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