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구인(新舊人)의 실상
진화론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10만년전에 아프리카(짐바부웨)와 중동지방(이라크)에 나타난 구인(舊人) 네안델탈인(Neander Valley, Germany 3-20만년전)과 교체가 되었는데, 이들은 해부학적으로 현대인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구인들은 다시 3만5천년 전부터 유럽지역으로 진출했으며, 크로마뇽인과 같은 신인(新人)으로 대체되었는데, 이 신인이 현대인류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구인의 멸절이유는 당시에 공존했다는 다른 호모 사피엔스와 혼혈이 되어 현생인류로 진화했다는 주장과 신인에 의해 멸절되었다는 설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신구인들은 현대인과 허리가 약간 굽은 것 이외에는 거의 유사하므로, 원시인으로 판단하고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라 부르게 되었다. 현생인류는 이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ce sapience)라는 긴 이름을 부여하게 되었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신구인을 통합하여 호미니드라 부르고 있다.
① 네안델탈인 (The Neanderthal Man, Homo sapience neanderthalensis)
네안델탈인은 라인강변의 네안델동굴(Neander Valley, Dusserdorf, Germany)의 채석장에서 발굴한(1856) 두개골 상부와 다른 유골을 토대로 한 것이다(그림 17). 이것은 인근 학교의 교사인 훌롯(Fuhlrott)의 손을 거쳐 본 대학의 해부학 교수인 샤프하우젠(Schaffhaugen)에게 전달되었다. 아일랜드의 해부학자인 킹(King 1864)은 이 유골의 주인공을 호모 네안델탈렌시스라 명명하였다.
작은 키(152cm)에 뇌의 용적(1600cc)은 현대인(1450-1500cc)보다 오히려 약간 컸다(Robert Charroux et al 1974). 전반적으로 현대인과 유사하면서도 두개골은 좁았으며, 넓은 뺨과 뒷머리에 토끼뼈와 같은 융기를 가지고 있으며(Carl Hodge 1988), 완만한 안면경사각과 원숭이처럼 굽은 척추뼈 때문에 구인(舊人)으로 명명이 되었다. 평균수명은 29.4세로 추정하였다. [한국일보타임-라이프, p180, 1978]. 그 후, 이태리의 한 동굴속의 습지에서 네안델탈인의 발자국화석을 발견하였다(사진 20). 이들은 작은 키에 짧은 다리, 큰 머리와 큰 코를 가졌으며 구석기인 무스티에 석기(Mousterian Stones)를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례와 종교의식 및 식인습관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어서, 네안델탈인의 유골은 1908년에도 프랑스의 라샤페르(La Chapelle-aux-Saints)에서 발굴되어는 데, 파리 인류학연구소장인 부울(Marcellin Boule)은 유인원으로 판단하고 반인반원의 상상도를 그렸다. 부울은 네안델탈인이 원숭이도 사람도 아닌 진화의 별도의 가지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여 등이 꾸부정한 <동굴사람>(Cave man)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진화고생물학자인 윌포프 교수 등은 여러 고고학적 자료들을 종합하여 판단한 결과 네안델탈인이 유럽인의 조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지적수준은 현대인과 동일하며, 두 종족이 이스라엘 인근의 중동지역에서 5만년간 공존했었다고 주장하였다. 크링스(Krings et al 1997) 등은 네안델탈인의 유전자를 채취하여 유전자증폭실험(PCR)을 한 결과, 이들이 현생인류와 다른 인종임을 확인하고 호모 네안델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로 분류하였다. [Cell, 90, pp 19-30, 1997]
그러나, 다른 일단의 학자들은 네안델탈인을 현대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왜냐하면 크링스의 실험은 샘플의 채취과정에서 오는 오염가능성과 유전자증폭장치(PCR)의 측정에러 외에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mtDNA) 간의 차이가 현대인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mtDNA에 대한 실측결과 현대인과 네안델탈인간의 오차(22-36 base pairs)가 현대인간의 오차(1-24 base pairs)의 크기와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다.
독일 본대학의 마이어 교수(F. Mayer)는 이들이 1814년에 나폴레옹 군대를 추격했던 러시아의 코사크족 군인의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비타민 D결핍에 의한 골연화증으로 동굴에서 쉬다가 죽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저명한 세포학자이면서 병리학인 베르린의 버효(Rudorf Verchow of Berlin 1821-1902)는 병리학적 관점에서 수많은 네안델탈인의 유골들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들에게 공통적인 사항은 관절염을 앓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유는 비타민의 섭취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허리가 굽은 것은 이 때문이며, 이들의 신장은 170cm 이상이었고 뇌의 평균크기(1,600cc)도 현대인들(1,500cc)보다 더 큰 인종이었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네안델탈인의 두개골들은 현대인의 두개골보다 평균 13%가 크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진화론자인 도브쟌스키(T. Dobzhansky)는 “현생인류라 할 수 있는 네안델탈인의 두개골 용적은 현대인과 같거나 더 크며...두개골 용적으로만 본다면 현대인보다 더 진화된 존재”라 하였다. [T. Dobzansky; Changing Man, Science, No. 155, 1965]
이러한 발견후 50여년이 경과한 후 죤스홉킨스 대학의 병리학자인 스트라우스(Straus 1957)는 이 유골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부울이 주장한 긴 발톱이 물건을 잡기에 적합하다고 한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들이 구루병으로 척추와 턱뼈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 내었다. 이렇게 하여 버효가 주장한 이론이 부울보다 옳았음이 판명되었다.
미국 미시간 대학의 인류학자인 브레이스(C. Loring Brace 1979)는 이 유골이 서북 유럽인과는 다른 독립된 두개골의 형태로 분리할 수 있다고 하였다. [Loring C. Brace; The stage of human evolution, 2ed., Englewood Cliffs, N.J., Prentice Hall, 1979] 그리고, 홋지(Hodge)는 덴막인, 노르웨이인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하였다.
최근, 렌스버거와 메턴스(Boyee Rensberger & Jay Matterns 1981) 및 아이반호(F. Ivanhoe 1970)도 이 유골의 주인공이 비타민 D부족으로 곱추병을 앓은 환자라고 하였다. 아이반호는 “네안델탈인이 굽어 있는 것은 큰 유인원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꼽추병때문이었다. 3만5천년동안 동굴에 살면서 섭취한 음식물에는 분명히 비타민D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Nature, August 8, 1970]. 이러한 이유로 네안델탈인들이 살았던 시대는 항상 빙하기였을 것이라는 추리가 나오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들이 최후의 빙하기가 시작된 11만년전 지중해연안과 유럽에 출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그림 18).
이상의 자료들로부터 네안델탈인은 불을 사용하고 사냥을 하며 장식품을 시체와 함께 부장하는 완전한 현대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노아홍수 직후에 아라랏산으로부터 유럽쪽으로 이동한 인류의 후예들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으나, 확인할 방법은 아직 없다. 네안델탈인의 어금니의 마모도를 측정한 결과 이들이 평균적으로 150-220세를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는 보고가 이러한 설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들은 오늘날 인도의 한 부족인 문다족(Munda, India, 사진 21)과 유사한 인종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Taylor; ibid. p 215]
최근에 새로 개발된 연대측정법인 전자스핀공명법(Electron-spin Resornance Method)으로 갈릴리지역(Galili, Israel)에서 발굴한 유골들을 측정한 바에 의하면 타분지역(Tabun)지역에서 나온 네안델탈인이나 스쿨(Skhul) 및 콰체(Qafzeh)에서 나온 현대인의 유골들이 꼭 같이 12만년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지금까지 발굴된 네안델탈인의 유골은 83개 지역에서 345개가 발굴되었는데, 이중 53%에 해당하는 183개는 매장된 것이었다. 이러한 조사결과에 의한다면 네안델탈인과 현대인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종족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타임지는 <인류의 조상>이라는 특집기사에서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부울이 진화론의 압력으로(p 40) 네안델탈인을 인류와 원숭이의 중간고리로 만든 것 같다고 하였다. 그는 네안델탈인이 원숭이처럼 발을 곧바로 펴지 못 했고, 척추도 곧게 펴지 못 했으며, 두뇌가 작았다고 했으나, 미국과 영국의 조사단(1957)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연구가 진행될수록 이들은 인류와 다른 종임이 입증되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p 41).
이 기사는 결론적으로 “현재로서는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은 사실 데이터에 입각한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에 불과하다”고 하였다(p 41). [Michael D. Lemonick; How Man Began?, Time, March 14, pp 35-41, 1994]
② 크로마뇽인(The CroMagnon Man)
크로마뇽인은 프랑스의 인부들이 프랑스 서남부의 베제르 계곡을 통과하는 철로변에 있는 레제이지(Les Eyzies)마을의 크로마뇽 동굴(CroMagnon, Dordogne, South France)에서 발굴한(1868) 커다란 두개골과 작은 다섯개 유골의 주인공을 일컫는다(그림 19). 그들은 크로마뇽 동굴의 벽화를 그렸다 하여 크로마뇽인이라 명명되었으며, 두개골의 모습이 현대인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였다 하여 신인(新人)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크로마뇽이란 그 곳 방언으로 ‘큰 구멍’(big hole)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학명도 현대인처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ce sapience)로 명명되었다.
이들의 유물은 유럽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는데, 유인원에서 현대인으로 연결되는 고리라고 부르지 않고 항상 동굴인(cave man)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180cm의 큰 키(여자는 165cm)에 유럽인처럼 긴 다리와 높은 이마, 그리고 돌출한 턱을 가진 이들은 홍적세의 빙하 후기인 3만5천년전에 나타나 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유럽, 더 나아가 미주대륙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진화학자들은 이들이 구인과는 다른 구석기를 제작했으며, 구인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의 유골이 완전한 형태로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출현한 것일까?
그들은 주로 프랑스와 스페인을 포함한 남부유럽의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많은 동굴벽화들을 남겼는데, 특히 사우투올로(Marcelino de Sautuolo 1879)가 발견한 알타미라 동굴(Altamira Cave, Santander, Spain)의 들소 그림은 역동성과 섬세함으로 유명하다(그림 20). 사우투올로는 이 유골의 주인공이 현생인류라고 했으나, 발견 당시에는 이 유골의 주인공이 현생인류의 조상이라고 생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진화론자들의 조소를 받으며 1888년에 서거하였다 한다(Schiller 1971).
그로부터 61년이 지난 1940년 9월 12일, 하버드 대학의 할람 L. 모비우스를 포함한 네 명의 청년들이 개(犬)의 도움으로 프랑스의 라스꼬 동굴(Lascaux, France)을 발견하였다(사진 22). 그 곳에는 600점의 채색화와 1,500점의 선각화(線刻畵)가 그려져 있어, 거대한 고대박물관을 연상케 했다고 한다. 이 동굴은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나, 조류에 의한 침식으로 1963년부터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이 동굴의 연대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동굴에 살았던 주인공들이 맘모스와 같은 선사시대의 동물들과 공존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인정을 받기까지는 수십년이 소요되었다. 오늘날, 예술사(藝術史)를 포함한 여러 교재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진과 그림들은 벽과 천장의 굴곡을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그려진 지능적으로 배부분을 둥글게, 그리고 눈부분은 깍아내린 정교한 모습을 재현하지 못한다. [Taylor; ibid, pp 219-220]
크로마뇽인의 유골은 처음으로 완전한 모습으로 발견된 완벽한 현대인이라 할 수 있다. 마쉑(Marshack 1972)은 크로마뇽인들이 뛰어난 화가였을 뿐 아니라, 천체의 운동과 달의 위치를 매일 기록한 많은 증거들을 발견하였다. 영국의 스톤헨지(Stone Henge)나 프랑스의 카르낙Carnac)을 건설한 것도 이들이 아닐까 신중히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Thom 1971). 여기에서 확실히 하여 둘만한 일은 크로마뇽인들이 동굴속에서만 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동물가죽만을 옷감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직조한 옷감도 사용하였으며, 머리스타일도 멋을 부려 했다는 것이다. 타임-라이프 잡지에 소개된 미네테다 모녀도(母女圖, Mineteda, Spain)를 보면(그림 21) 이들이 직조된 옷과 땋은 머리를 하고 있다(Prideaux 1973).
이 벽화들을 방사선 탄소원소로 측정한 결과 최소 8천년이상 경과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세월을 동굴속에서 고기를 불에 구어 먹었다면 연기때문에 그림의 모습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깨끗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그림의 역사가 의외로 짧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과 맘모스가 같이 그려져 있는 벽화가 발견됨으로써 이들은 맘모스와 같이 살았으며, 맘모스는 최근까지도 지상에 생존했던 거대한 포유동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림 22).
진화론자들이 봉착한 또 한가지 문제는 네안델탈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크로마뇽인의 두뇌가 1,550-1,750cc로 현생인류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진화론적으로는 뇌용적이 커지는 쪽으로 진화하여왔다고 주장해 왔는데, 현생인류부터는 뇌가 다시 작아지는 방향으로 역진화했다고 주장해야 하는 것인지 캠벨은 반문한다. [B.G. Campbell; CroMagnon Man, Encyclopedia Britanica, P 792, 1965]. 그래서, 진화론자이면서 고생물학자인 오스본(Henry Fairfield Osborn,1857-1935)은 말하기를 “진화적 과정에서 볼 때 크로마뇽인은 우리와 꼭 같은 존재이며, 머리와 두개골은 도덕적 및 정신적 수준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뛰어난 용사이자 사냥꾼이었고 화가였으며 조각가였다”고 피력하였다. [Henry F. Oborn; Revised Guide Leaflet, No. 52, American Museum of National History, 1923]
③ 두개골에 총탄구멍이 있는 로데시아인(The Rhodesian Man)
일명, <브로큰 힐 맨>(Brocken Hill Man)으로 불리우는 이 유골의 주인공은 항상 인종학계의 수수께기와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지금은 교과서나 일반서적에 거의 실리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이 유골 역시 다른 경우에서 보듯이 선입관에 의한 상상의 작품이었다. [Taylor; ibid. pp 229-230]
옛날의 영국식민지였던 로데지아(지금의 잠비아)에 있는 부로큰 힐의 아연탄광에서 완전한 형태의 인골이 우연히 발견되었다(1921). 묵직한 눈두덩이와 움푹 패인 이마때문에 고대인으로 추정하게 되었다(그림 23). 이 시기는 중간형의 호미니드가 발견되지 않아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발굴된 것이었다. 광부들은 그 후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길옆에서 3-4인의 뼈들도 발견했으나 발굴과 관련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 두개골은 1,280-1,325cc로 현대인의 평균치보다 약간 작았다. 진화론자들은 현재 이 유골을 네안델탈인의 변종으로 보기도 한다.
영국의 인류학자인 그로스(Wilfrid Le Gros 1928. 12)가 밝힌 바에 의하면, 이 유골들도 부로큰힐 개발(The Brochen Hill Development Co.)에 의해 영국의 런던박물관(British Musium of National History)으로 바로 보내어 졌으며(1921), 필트다운인 사기사건에 연루된 우드워드(Arthur Smith Woodward)가 이끄는 팀에 의해 재조립이 되었다. 그는 물고기화석(논문 600편 발표)과 인류화석(논문 30편 발표)에 가장 권위있는 학자였다. 다윈학설을 신봉한 우두워드는 이 유골의 주인공이 원숭이처럼 허리가 굽은 모습으로 걸었으리라 상상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재조립작업을 하도록 동물학관리자(assistant keeper of Department od Zoology)인 파이크라프트(W.J. Pycraft)에게 주문하였다. 우드워즈나 파이크라프 모두가 해부학자들은 아니었다. 우두워드는 왜 많은 인류학자들을 외면하고 동물학자에게 이러한 작업을 하도록 부탁했는지 쿠퍼(Bill Cooper)는 의문을 제기한다. [Bill Cooper; Rhodesian Man, Ex Nihilo Technical Journal, Vol 3, p 149, 1988]. 그들은 같은 곳에서 발굴한 허리골반 줄기뼈들을 부착하여 사이판트로푸스(Cyphanthropus, Stooping Man)라는 학명을 부여하였다. 이처럼, 재조립된 유골은 진화론자들에 의해 인류의 조상이라 하여 호모 로데시안시스(Homo rhodesiansis)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British Museum of National History; Rhodesian Man and associated remains, British Museum(National History) Publication, pp 1-17, London, 1928]. 이러한 명명은 우두워드가 7편의 관련논문들을 발표하기까지 그의 눈치를 보느라 7년을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1928).
우드워드는 로데지아인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얼굴의 섬세한 구조로 보건데 인간진화의 마지막 단계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네안델탈인이 호모 사피피엔스의 진정한 조상이었음을 뒷받침해 주는 새로운 증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로데지아인의 얼굴은 뇌와 해골의 모습이 네안델탈인의 것과 거의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네안델탈이 다음 단계로의 진화된 모습이다” [Arthur S. Woodward; A new cave-man from Rhodesia, South Africa, Nature, 108, pp 371-372, 1921] 즉, 로데지아인이 네안델탈인보다 더 진화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 유골은 두 가지 특색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두개골이 광물화된 것을 보면 오래된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리그씨병(Rigg's disease)과 치석(齒石)을 앓았던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치아배열이 현대인과 다르게 바뀐 것이지 오래된 치아가 아니라고 로링은 확신한다. [Lohring C. Brace; The stages of human evolution, 2nd, Englewood Cliffs, Prentice Hall, 1979]. 둘째는, 두개골 양편에 서로 다른 크기의 구멍이 나 있는데(사진의 검은 점), 이는 전형적인 총탄이 지나간 흔적이라고 마이어 교수(Mair of Berlin)은 진단한다. [Herbert Went; From ape to Adam, Bobbs-Merrill, New York, 1972]. 이에 반해, 프린스(Prince & Molleson 1974) 등은 충치에 의해 종양(cholesteatoma)을 앓다가 구멍이 뚫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J.L. Price, T.I.Molleson; A radiographic examination of the left temporal bone of Kabwe Man, Brocken Hill Mine, Zambia, Journal of Archeological Science, 1, p 285, 1974].
오늘 날, 진화론자들이 발행하는 대부분의 화보들은 오른 쪽의 구멍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행히 필빔의 화보(Pilbeam 1970)에도 선명하게 나타나 있는 조작된 흔적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필트다운 사건에서 유골조작을 주도했던 샤르뎅은 이 그림들을 담은 화보집을 <인류의 출현>이라는 제목으로 발간했는데, 그는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로데시아인에 대해 해설하고 있으며, 두장의 화보를 반페지에 실어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두개골의 구멍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그 구멍을 아예 삭제하고 게재하였다. [Teilhard De Chardin; The appearance of man 1956, Translated by J.M. Cohen 1965] 그는 필트다운인의 유골조작에 이어 로데시아인의 그림도 조작한 것이다.
이 유골의 또 다른 조작부위는 엉덩이뼈의 조립이다. 이 뼈들은 면밀한 조사결과 다른 동물의 것을 부수어 조립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인류학자인 클라크(Clark 1928)는 말한다.“엉덩이뼈가 다른 데서 온 것이라는 사실은 희한한 일일 뿐 아니라, 포유류 해부학자들의 눈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Le Gros Clark; Rhodesian Man, Man, 28, pp 206-207, 1928]
그들이 죽은 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로데지아인의 사기극에 관여한 사람은 파이크라프트외에 필트다운인 사기극에 연루되었던 스미스(Grafton Elliot Smith), 보고서를 감독한 홉우드(A.T. Hoopwood), 각 사람들에게 조작업무를 부여한 박물관의 지질학 책임자였던 베더(F.A. Bather), 그리고 얼굴을 나타내지 않은 박물관의 고위 책임자들이었다고 한다. [Cooper; ibid, p150].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쿠퍼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로데지아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쿠퍼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Bill Cooper; Rhodesian Man, EN Technology, vol. 3, pp 137-151, 1988].
④ 구아델로우프에서 온 숙녀(Lady from Guadeloupe)
이 숙녀의 유골은 지난 50년간 많은 교과서들에 게제되어 왔을 뿐 아니라, 대영박물관에도 전시되었던 것이므로 소개하고자 한다(Konig 1814). 이 해골은 1812년, 프랑스의 구아델로우프(Guadeloupe)라는 섬에서 발견한 것으로, 다리와 머리만 제외하고는 완벽한 형태로 발굴되었다(사진 23). 유골의 주인공은 5.2피트의 신장을 가진 여인으로 추정되었다. 이 유골의 특징은 뼈들이 뒤틀리고 관절들이 제위치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뼈들이 적절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과서나 박물관에서는 모두 퇴거되고 말았다.
이 유골은 2,800만년전의 것으로 측정된 석회암에서 발굴된 것이었다. 아직 유인원에서 호미니드들이 나오기도 전에 거의 완전한 형태의 현대인과 유사한 인골이 발견되자, 진화론자들에게는 큰 혼란이 오게 되었다. 다윈은 인간이 아프리카의 옛 원숭이(Old Monkey)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으며, 이들이 미주대륙으로 이주한 시기는 수천년전이었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다 훨씬 오래전에 현대인과 유사한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⑤ 기타
이 밖에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두 가지의 발견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타 바바라에서의 네안델탈인과 유사한 인골의 발견이다(1923). 이 유골의 연대는 네안델탈인의 이주시기와 전혀 맞지 않는다. 이 유골들은 현대인디언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도 판명되었다.
이와 유사한 다른 발견이 필레오세 지층(200만년전)에서 미국캘리포니아주의 지질학조사위원회 위원장인 휘트니(J.D. Whitney 1866)가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California)에서 이루어졌다. 현대인의 모습을 한 ‘칼라버라스 두개골’(Calaveras Skull)이 그 주인공이다(사진 24). 200만년전의 유골로 연대측정치가 나왔는데, 유골의 모습은 현대인과 닮았다.
이러한 현상을 진화론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유골이 지금까지도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진화론자들의 고민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만 하지만, 자신들의 주장에 맞으면 공개하고 맞지 않으면 비공개하는 자세는 객관성을 잃은 행위라 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이 세계의 주요한 박물관의 직책들을 독차지한 결과가 가져다 주는 기이한 현상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