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뜰 때는 어떤 소리가 나지?” “눈이 땅에 닿을 때는 어떤 소릴를 내니?”
당신이라면 뭐라고 하겠는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버지 마틴의 물음에 딸 라라는 대답한다. 수화로. “사박사박. 아니, 눈은 소리를 삼켜요. 눈이 내리면 세상이 모두 조용해져요.”
꼬마 라라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소리를 듣지 못하는 부모들의 통역사 노릇을 해왔다. 영화 <비욘드 사일런스>(1996)는 이 훌륭한 통역사가 음악의 길을 찾아 들어서는 모습을 쫓는 일종의 성장영화다. 독일의 여성감독 카롤리네 링크의 장편극영화 데뷔작.
마틴과 카이 부부는 청각장애인지만 그들의 집은 아늑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균형은 라라가 고모 클라리사에게 클라리넷을 선물 받은 크리스마스 이후 조금씩 흔들린다. 마틴의 마음속에는 음악 애호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누이에 대한 어린 시절의 질투가 되살아난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 음악의 세계에 딸 라라를 빼앗기고 있다는 두려움도 함께 싹튼다. 라라 역시 침묵에 갇힌 아버지의 몰이해에 반감을 느낀다. 그리고 베를린 음악학교 입시준비를 위해 집을 떠난다.
<비욘드 사일런스>에서 특별한 것은 이러한 가족과 세대, 침묵의 양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나 화해 같은 소재의 특수성이 아니다. 그 사람들을 지켜보는 침착하면서도 명랑한, 이해심 많은 젊은 감독의 시선이다. 그는 이른바 휴머니즘과 가족주의를 위해 주인공들을 급히 다그치는 법도 없다. 이런 소재의 멜로드라마가 흔히 빠지기 쉬운 값싼 감상주의와 타협하기에 감독은 너무 건강하다. 영화의 감동도 그만큼 싱싱하다.
아버지 마틴 역의 허위 시고와 이해심 많고 아름다운 어머니 카이 역의 에마뉘엘 라보리는 실제로 청각장애인이다. 각각 미국과 프랑스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라라 역의 실비 테스튀드는 파리의 국립드라마예술학교를 나온 여배우.
<비욘드 사일런스>의 또다른 주인공은 음악이다. 라라와 함께 성장하는 클라리넷 음악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각별하고, 클래식과 팝 그리고 수화(!)의 크로스오버도 인상적이다. 라라가 농아학교 교사인 남자친구 톰과 글로리아 게이너의 인기곡 <아이 윌 서바이브>를 수화로 따라부르는 장면은 <비욘드 사일런스>만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