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답복철(不踏覆轍)하는 똘똘한 태극전사〉 평가전의 참뜻은 결과에 있지 않다. 결과가 좋고 나쁨을 떠나 우리의 단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빨리 고치는 것이 평가전을 하는 진정한 의미다. 즉 한번 저지른 실수를 빨리 발견한 뒤 적정한 대응과 훈련을 통해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평가전에서 자꾸 져도 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참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타이틀이 걸리지 않은 평가전인 만큼 좋지 않은 경기내용으로 이기는 것보다 차라리 좋은 플레이로 패할 때가 배울 게 많다는 뜻이다. 우리 대표팀은 최근 크로아티아전까지 4경기를 치렀다. 성적은 2승1무1패. 아랍에 미리트연합전에서 0-1로 패할 때는 실망스러움 자체였다. 그리고 그리스전에서 1-1로 비길 때만해도 상대 크로스에 마구 흔들리는 포백을 보며 불안감에 떨었다. 그리고 우리는 핀란드전과 크로아티아전에서 2연승을 거뒀다. 핀란드는 전체적인 전력이 다소 약한 팀이라지만 크로아티아는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춘 팀이었기에 우리대표팀의 선전이 돋보였다. 4차례 평가전을 보면서 팬들은 우리대표팀에 점점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도 0-1 패→1-1 무→1-0 승→2-0 승 등 점점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팬들(필자도 물론 포함)을 진정으로 기쁘게 만든 것은 비단 결과만이 아니었으리라.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좋아지는 대표팀 전체적인 플레이와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돌아가면서 실수하는 태극전사〉 우리 선수들은 이상하리만큼 최근 4경기에서 서로 돌아가면서 실수를 했다. 우선 포백의 측면 수비수 장학영·김동진·조원희는 불안한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장학영은 첫 경기인 아랍에미리트연합전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김동진 조원희는 특히 그리스전에서 자기 뒤쪽을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그리스 공격수들을 놓쳐 실점위기를 자초하기까지 했다. 조원희는 핀란드전에서 부정확한 크로스 때문에 허슬 플레이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중앙 수비수 최진철은 아랍에미리트연합전에서 후반 막판 프리킥 찬스에서 상대 선수의 얼굴을 손으로 밀친 뒤 욕설을 퍼부은 탓에 정말 쓸데없는 경고를 받았다. 유경렬·김상식 등 중앙 수비수 2명은 핀란드전 후반 9분 정확한 스루패스에 무너지면서 상대 공격수가 이운재와 1대1로 맞서는 위기를 구경만했다. 또 크로아티아전 물론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상대 크로스나 프리킥 때 헤딩에 실패하면서 자칫 노마크 찬스를 내줄 뻔한 장면에서 우리 수비진은 잠시 버벅거렸다. 미드필더 백지훈도 초반 흔들리는 마찬가지였다. 전훈 초반 어이없는 패스미스를 많이 저질러 우리 공격의 흐름을 끊는 한편 상대에게 번번히 역습을 허용하기 일쑤였다. 아드보카트호의 황태자 이호도 그리스를 상대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으나 선취골을 내주는 순간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하프타임 때 교체아웃됐다. 원톱 공격수 이동국은 모든 경기에 출전했으나 골을 넣지 못하면서 무늬만 공격수라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정경호는 공격에만 급급한 나머지 수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4경기를 모두 풀타임 뛴 골키퍼 이운재도 실수를 했다. 핀란드전 후반 9분 상대 공격수와의 1대1 상황에서 슈팅을 막을 때만해도 역시 이운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전에서 이운재는 2차례 큰 실수를 했다. 전반 37분과 후반 13분 두차례 모두 크로아티아가 코너킥을 차는 순간 이운재는 골문을 비웠다. 펀칭을 하려는 뜻이었다. 하지만 두번 모두 펀칭에 실패했다. 크로아티아가 머리나 발에 제대로 맞혔다면 실점으로 이어질 위험한 순간이었다.
〈같은 실수를 절대 하지 않는 똘똘한 태극전사들〉 그런데 너무 다행스러우면서도 희망적인 부분은 우리 선수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포백 수비수들이 점차 안정을 찾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불안한 포백 수비는 시간이 지나면서 결점을 줄이고 있다. 김동진·조원희·장학영는 마치 자신의 머리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자기 뒤쪽에 있는 상대 공격수들을 더 이상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수비수의 공격가담을 중시하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뜻에 부응하는 듯 크로스의 정확도도 점차 끌어올리고 있다. 감독이 원하는 공격형 수비수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미드필더에서는 이호와 백지훈이 괄목상대했다. 특히 백지훈은 핀란드전이 끝난 뒤 감독으로부터 가장 좋은 플레이를 했다면서 공개적으로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전에서 보여준 그의 플레이에는 예전과 다른 여유로움이 넘쳤다. 상대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패스와 슈팅을 날렸고 볼 키핑하기에 급급한 예전 모습은 거의 없었다. 특히 경기 막판 상대에게 볼을 빼앗기는 순간 고의적인 파울로 역습을 차단하는 장면에서는 성숙함까지 묻어났다. 경고를 받았지만 값어치가 넉넉한 경고였다. 이호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리스전에서 부진한 이호는 핀란드전 후반, 크로아티아전 풀타임을 뛰면서 무실점 승리의 기둥이 됐다.(여기서 팬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이호가 TV화면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가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수비형 미드필더가는 위치가 워낙 티가 나지 않는 포지션인 데다 4-3-3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는 궂은 일만 할 뿐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호가 화면에 오랫 동안 나오면서 튀는 플레이를 하면 오히려 안 된다. 이호가 많이 보이지 않으면서 대표팀이 실점위기를 맞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이호는 자기 임무를 100% 수행한 것이다. 부디 이호, 김남일 등이 화면에 자주 나오지 않았다고 한 것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격수 중에는 이동국이 돋보였다. 물론 원톱 공격수로서 골을 넣어야 하겠지만 이동국은 크로아티아전 후반 이천수에게 정확한 어시스트 패스를 해줬다. 지금까지 이동국은 슈팅만 좋을 뿐, 수비가 안되고 움직임이 적으며 어시스트 패스가 안되는 공격수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이동국은 달라졌다. 수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한 그는 경기 내내 미드필더처럼 뛰었다. 핀란드 감독이 이동국이 돋보였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크로아티아전에서는 이운재의 킥을 정확히 트래핑한 뒤 오프사이드 트랩을 피해 문전으로 들어가는 이천수에게 정확한 패스를 해줬고 이천수는 이를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골을 추가했다. 이동국이 자신의 단점으로 여겨진 부분들을 이번 전지훈련 기간 중 모두 해소한 셈이다.
<보고 싶다. 이운재와 수비수의 진정한 무결점 수비를> 우리대표팀은 1일 오후 9시15분 덴마크와 전훈기간 5번째 평가전을 치른다. 물론 이기면 좋겠지만 필자는 덴마크전을 통해 지켜보고 싶은 부분이 따로 있다. 바로 크로아티아전에서 실수를 했던 선수들의 활약상이다. 크로아티아전에서 우리 수비수들은 상대 크로스와 프리킥 때 헤딩을 미스했고 이운재는 앞서 말한 것처럼 2차례 펀칭미스로 실점을 내줄 뻔 했다. 물론 필자도 팬의 한 사람인 만큼 우리대표팀이 이겼으면 좋겠다. 스코어로 말한다면 3-1 승리보다는 1-0 승리가 더 좋을 듯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3-1로 이길 수 있는 팀이라면 절대 1골을 내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로아티아전에서 실수한 이운재와 수비수들이 무결점 플레이로 무실점 방어를 하기 원하니까 더더욱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