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월드컵 4위 세대의 마지막 메이저대회였던 유로 2004에서 내리막의 네덜란드를 준결승까지 진출시킨 디크 아드보카트의 후임으로 부임한 감독 마르코 반바스텐은 현역 시절 '위트레흐트의 백조', '성 마르코'라는 별명을 가진 중앙 공격수이자 80년대 후반 오렌지 3총사(반바스텐-뤼트 휠리트-프랑크 레이카르트)의 일원으로 유명하다. 클럽 레벨에서 AFC 아약스(네덜란드, 1981-87)와 AC 밀란(1987-95, 이탈리아)을 거치며 276골을 넣어 소속팀의 리그 6회 우승(네덜란드 3, 이탈리아 3)과 네덜란드 FA컵 2회 우승, 아약스의 유럽 컵위너스컵 우승과 AC 밀란의 유럽클럽선수권 및 유럽 슈퍼컵, 유럽/남미컵 2회 우승에 기여했으며 네덜란드 대표로 A매치 58경기에서 24골을 득점하며 1988년 유럽선수권 우승에 힘을 보탰다. 개인적으로는 리그 득점왕 6회(네덜란드 4, 이탈리아 2)와 유럽 골든슈 1회, FIFA(국제축구연맹) 선정 올해의 선수 1회 및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선수 2회, <프랑스 풋볼> 선정 유럽 올해의 선수 3회, 유럽선수권 득점왕 및 MVP(최우수선수)와 UEFA(유럽축구연맹) 선정 20세기의 선수 10위라는 영예를 얻었다. 3톱의 중앙 공격수와 투톱의 일원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제공권과 결정력, 기술과 힘, 탁월한 발리슛 능력을 겸비한 공격수의 표본으로 1990년대 중후반부터 활약한 공격수 중 상당수가 그를 모범으로 삼았음을 실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토록 화려한 현역 생활을 보낸 반바스텐도 1995년 은퇴 후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지도자 자격증 획득과 아약스 2군 조감독 외에는 뚜렷한 경력을 쌓지 못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상당기간 감독에 대한 흥미 자체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철저하게 클럽에서의 활약에 바탕을 둔 끊임없는 세대교체시도와 예선의 호성적으로 지도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지만 앞으로 돌발상황에도 이를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선수 시절의 숱한 큰 무대 경험이 그의 밑천이지만 막상 월드컵에서는 1990년 16강 진출이 전부다. 1988년 유럽선수권 제패로 우승후보 0순위였던 당시 네덜란드는 조별리그 3무의 졸전 끝에 16강에 진출했으나 전대회 우승팀 서독에 덜미를 잡혔다.
골키퍼로는 1998년 월드컵 당시 주전인 반더사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가 여전히 출전한다. 197cm의 장신을 바탕으로 한 페널티 박스 안의 지배력으로 인간 기중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9년간의 아약스 생활 당시 크뢰위프가 "팀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 재능을 가졌다."라고 칭찬할 정도로 수비 성공후 날카로운 공격 전환 능력을 보유했다. 클럽의 주전 골키퍼가 곧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전이라는 전통이 있는 유벤투스의 사상 첫 비 이탈리아인 주전으로 1999/00시즌부터 2년간 뛴 것도 유명하다. 유벤투스에서 마지막 시즌 부진했으나 이후 풀럼 FC(2001-05, 잉글랜드)에서 네 시즌을 뛰며 기량을 되찾았고 이번 시즌 맨유 이적 후에도 안정적인 활약 중이다. 순발력의 감퇴를 신체조건의 활용으로 무난히 만회한 사례로 꼽힌다.
중앙 수비로는 지난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낸 할리트 버울라러우즈(함부르크
SV, 독일)와 요리스 마테이센(AZ 알크마르)이 호흡을 맞춘다. 버울라러우즈는'식인종'이란 별명이 말해주듯 상대에 대한 철저한 대인방어를 시행하며 마테이센은 중앙과 왼쪽 수비를 겸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장점이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유럽선수권이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같은 큰 무대 경험 없는 것이 흠으로 챔피언스리그 다음 가는 유럽클럽대항전인 UEFA컵에서 남은 시즌 얼마나 경험을 쌓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빅리그에서 2년째 뛰고 있는 버울라러우즈는 상황이 낫지만 자국 리그에서 뛰고 있는 마테이센은 시즌 초반 부상으로 작년 10월 말에야 복귀한 것까지 더해 여러모로 아쉽다. 두 선수의 중앙 수비는 무난하지만 유로 2004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난 야프 스탐(AC 밀란, 이탈리아)처럼 유럽 정상급의 높이와 힘을 갖춘 선수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측면 풀백으로는 얀 크롬캄프(리버풀 FC, 잉글랜드)와 히오바니 반브롱크호르스트(FC 바르셀로나, 에스파냐)가 출전한다. 오른쪽 풀백 크롬캄프는 좋은 신체조건과 안정적인 공수를 갖췄으며 이번 1월 이적 시장에서 비야레알 CF(에스파냐)에서 리버풀로 팀을 옮겼다. 이번 시즌 비야레알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적 자체는 긍정적이나 시즌 도중 이적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없게 된 것은 아쉽다. 에스파냐 리그와 성격이 전혀 다른 잉글랜드에서 빠른 적응에 실패하여 경기 감각을 잃는다면 오른쪽 풀백과 미드필더를 겸할 수 있는 니헬 데용(AFC 아약스)이 대신 출전할 것이다. 작은 체구에도 공수를 겸하여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다. 왼쪽 풀백 반브롱크호르스트은 본래 공격적인 중앙 미드필더였으나 공수를 겸한 중앙 미드필더를 거쳐 현재는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수비수로 뛰고 있다. 다득점하진 않지만 중요한 순간 시도하는 위력적인 왼발슛과 간간이 넣어주는 정확한 패스 등 공격 지원 부분에서 장점을지녔지만 수비수 본연의 임무에는 아직도 취약하다. 주전은 아녔지만 1998년 월드컵에 참가한 것을 비롯하여 경험은 충분하나 공격 지원을 위한 그의 전진이 상대가 노릴 허점이란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4백 앞의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필리프 코쿠(PSV 에인트호벤)가 뛴다. 1998년 대회 당시 주전 중 이번 대회 선발이 유력한 선수는 반더사르와 코쿠 뿐이다. 원조멀티 플레이어로 유명한 코쿠는 전성기의 운동능력은 상당부분 잃었으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한 수비와 안정적인 공수 연결, 강력한 왼발슛은 여전하다. 확실한 수비수가 없는 대표팀의 사정을 감안하면 유사시 헤드비에스 마두로(AFC 아약스)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기고 마테이센 대신 중앙 수비수로 뛸 가능성도 있다. 실제 네덜란드의 수비 요원 중 가장 확실한 제공권을 보유한 선수가 바로 182cm의 코쿠이다. 코쿠의 대체선수로 유력한 마두로는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수 있다. 어린 선수임에도 기술과 총명함을 갖춰 최근 보기 드문 수비진 지휘 능력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경기 운영에 참가하는 앵커맨역할에 재능을 보여 유망주로 각광받고 있다.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로는 데니 란자트(AZ 알크마르)와 라파엘 반더바르트(함부르크 SV, 독일)가 출전한다. 네덜란드 역사상 최고의 클럽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뢰위스 반할이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 그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란자트는 이번 시즌 알크마르의 감독으로 부임한 반할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체격은 작지만 중앙과 오른쪽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하며 세 차례 시즌 10골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수준급의 직접 공격력도 갖췄다. 상황에 따라 공수를 병행할 수 있는 유능한 선수지만 지난 시즌부터2년 연속 UEFA컵에 출전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큰 무대 경험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일찍부터 네덜란드의 미래로 각광받은 반더바르트는 직간접 공격에 모두 능하다. 2002/03시즌 아약스의 챔피언스리그 준준결승 진출 당시 일익을 담당했으며 이번 시즌 빅리그 진출로 한 단계 올라설 기회를 얻었다. 대표팀에서는 직접 공격보다 지원에 좀 더 비중을 둬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간혹 드러나는 감정 조절 미숙이 변수다.
공격형 미드필더 겸 측면 공격수로는 디르크 쿠이트(페예노르트)와 아롄 로벤(첼시 FC, 잉글랜드)이 뛴다. 전통적으로 네덜란드의 강점인 포지션답게 두 선수의 역량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쾨위트는 리그 득점왕을 할 수 있는 직접 공격력과 공격 지원 및 수비 가담에 충실한 조력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선수지만 유럽선수권과 챔피언스리그 경험이 없는 것이 뼈아프다.
대표팀에서는 중앙 공격수가 아닌 중앙/오른쪽 미드필더/공격수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왼쪽 미드필더/공격수 로벤은 지난 시즌 빅리그 진출 후 탁월한 돌파력으로 부상만이 그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유로 2004 본선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 클럽에서 공식 경기 출전에 실패했지만 아드보카트는 본선 명단에 그를 포함했고 두 차례 평가전으로 감각을 조율한 후 본선에서 맹활약하며 준결승 진출에 큰 힘이 됐다. 현재 유럽 최고의 팀에서 뛰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의 잦은 부상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중앙 공격수로는 네덜란드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뤼트 반니스텔루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가 출전한다. 2001/02시즌 맨유 입단 후 3년 연속 리그 20골 이상과 독보적인 챔피언스리그 득점력을 보인 그는 지난 시즌 부진했지만이번 시즌 현재 리그 20경기 15골로 기량을 상당부분 되찾았다. 전성기에 비해 득점 창출 능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이 있지만 대표팀에서는 반더바르트의 성장으로 예전처럼 중앙 공격의 시작과 끝을 겸할 필요가 없어 골에만 집중하면 되기에뚫는 모습은 기대하기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동료가 제 기량을 펼치지못할 때 그가 직접 활로를 어려울 것 같다.
베스트11 중 월드컵 본선 경험자가 세 명에 불과한 것은 현재 네덜란드의 문제를 대표한다. 지난해 내로라하는 강팀과의 세 차례 평가전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것도 이런 면을 반영하고 있다. 확실한 수비수가 없다는 것도 그동안 네덜란드의 발목을 잡은 토너먼트 징크스를 부채질할 것이다. 유로 96을 시작으로 유로 2004를 끝으로 퇴장한 세대의 뒤를 잇기 위한 끊임없는 세대교체 시도는 예선 호성적의 원동력이었지만 본선을 위한 한 단계 높은 조직력 배양에는 단점이될 수 있다. 예선에서 단 한 번의 역전도 허용하지 않으며 순항했기 때문에 위기대처 능력을 기르고 검증받을 기회가 없었다는 것도 불안요소다. 그러나 주전의 기량 차가 크지 않고 윗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비주전도 주전과큰 차이 없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부상이나 징계 등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상대적으로 용이한 것은 장점이다. 만약 월드컵이 16강부터 토너먼트가 아닌 리그로만 치러진다면 네덜란드는 브라질과도 좋은 순위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전력을 보유했다. 하지만, 자타 공인의 죽음의 조에 속해 예선부터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코트디부아르, 아르헨티나 같은 강팀과 경기를 하는 네덜란드는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다 해도 큰 성공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물론 젊은 선수들의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기에 본선까지 남은 시간 동안 팀 전력이 향상될 여지는 충분하다. 분명한 것은 이번 월드컵을 시작으로 하는 세대에게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70년대의 영광을 재현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지난 세대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성실함과 조직에 대한 개념에선 앞서 있는 이번 세대가 향후 지난 세대의 메이저대회 준결승 진출 기록을 넘어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