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씨어터
애니씨어터 5회 : 광란의 질주
멈출 수 없는 본능
네이버는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와 함께 주목할 만한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을 소개하는 [애니씨어터]라는 온라인 상영관을 마련했습니다. 매달 달라지는 테마별로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선정하여 온라인으로 감상하고, 작품에 대한 제작 정보와 해설도 같이 전해드립니다. 숨겨져 있던 보석같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감독 인터뷰 및 기획의도 설명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의 출발을 계기 삼아 애니메이션/영화의 기원을 돌아봅니다. 이미지-그것이 사진이든 그림이든-가 움직인다는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라는 기계 장치를 처음 고안하고 실험한 이들은 움직이기만 한다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기록하고 재생하고자 하였습니다.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기차이든, 퇴근 시간에 공장문을 열고 쏟아져 나오는 노동자들이든, 혹은 그저 찰나에 불과한 재채기하는 모습이든 간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모션 픽쳐는 말 그대로 그 이전까지는 순간의 포착물이었던 사진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기원의 시기에 영화를 애니메이티드 픽쳐스(animated Pictures)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어떠한 인과관계나 전후맥락과 같은 이야기성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달릴 뿐이고, 관객은 동영상이 지닌 역동성을 새롭게, 그리고 경이롭게 바라보았습니다. 애니씨어터 1월의 테마를 <광란의 질주>로 잡은 까닭도 기원의 시대에 놓여있던 활력 자체를 느껴보기 위해서입니다.
“비밀을 알아냈다”라는 환호와 광기어린 질주로 시작하는 [나까무라의 비밀]은 도대체 비밀이 무엇이며 언제 밝혀지는지를 기대케 합니다. 궁금증이 커질수록, 비밀을 알아낸 자들의 죽음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그러다 보면 혹여 우리는 비밀이 지닌 저주의 힘, 그것의 강도와 속도 자체를 즐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비밀만 있고 진실은 없는, 혹은 진실의 실체보다는 비밀이라는 설정이 세인의 관심을 붙드는 현재를 되비추어 보기에 더할 나위없는 거울일 것입니다.
[버닝 스테이지]는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격조높은 발레의 한 장면을 펼쳐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을 빌어 어떻게 새롭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움직임을 다시 이야기로 끌고 들어오면서 펼쳐지는 반전은 유쾌한 덤일 것입니다.
[알레그로]의 주인공인 택배 배달원은 자동차와 네비게이션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임무를 완수합니다. 일상의 실제 풍경을 가감없이 재현한 3차원 공간 속을 자신의 신체 하나만으로 쾌속 이동하는 주인공은 어쩌면 실재 세계에서 인간을 대신하는 카메라의 의인화된 모습이거나, 신화 속에서 전령의 역할을 담당한 헤르메스의 후예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알레그로]는 속도와 결합한 운동이 그 자체로 얼만큼 우리를 들썩이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수퍼 히어로 머슬맨과 로봇의 대결을 다루는 [머슬맨]은 애초에 영화라는 동영상 기계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핵심 중 하나인 육체/근육의 움직임을 다시금 선사합니다. 이때 두 육체 (하나는 강제로 증식된 근육, 또 하나는 기계)는 도시 곳곳에서 설치된 거대한 전광판에 의지하는 대신, 그 이상의 스케일로 구경꾼에게 직접 다가갑니다. 따라서 관람객 또한 격투의 후끈한 열기를 온몸으로 겪게 됩니다. 영상을 통한 판타지가 테크놀로지의 매개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그곳에 우리를 초대한다는 설정은,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여전히 (그리고 더욱 더) 우리의 감각을 마사지한다는 맥루한의 전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각각의 사연이야 어떻든, 네 작품은 저마다 움직임과 동세를 한껏 담아내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 정지된 시간 속에서 성찰을 곱씹었다면, 이번 달에는 역동성과 활력을 끌어와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고정된 이미지가 갑자기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초기 영화의 생기를 곱씹는 가운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viewed by 나호원 애니메이션 연구자
상영작1 : 버닝 스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