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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머피의 법칙' 2부... 불효자(3편)...아버지의 부음(訃音) |
글: 박종희 작가, 삽화: 이기원 작가
(지난호에 이어~)
북반구는 겨울이지만, 남반구는 여름이다. 겨울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빈민들에게는 더 가혹한 계절이다. 집도 절도 없는 노숙자들에겐 추위는 공포의 대상이다.
모 주방은 또 호텔 카지노에 틀어박혔다. 돈이 손에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도박장을 찾는 습관 때문이다. 아프리카 끝 더반에서까지 카드를 쥐어야 하는 건, 아마 운명이라고 여겨졌다.
유럽에 널린 카지노들은 순회 하다시피 해서 낯설지 않지만, 여긴 좀 생경한 모습이다.
VIP룸은 아예 텅 비었고, 자잘한 판에만 관광객들이 들끓었다.
일주일을 서성거려도 큰판이 서지 않자, 짜증이 몹시 났다. 영국신사가 뜻하지 않게 건넨 돈이 아니었다면, 그는 다이아몬드광산에서 착암기나 만지려고 생각했는데, 그냥 카지노의 게임 방 이 곳, 저 곳을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다 객실에 처박히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서울에 전화를 넣어보니,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며, 막내가 전했다.
파리 행 국제선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영국신사와 동행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파리를 거쳐 서울로 들어온 모 주방은 남산 밑 동네 집에 들렀다.
도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른다. 둘째 동생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셋째 동생은 취직해 회사를 다니는 터라,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옷만 갈아입고, 아버지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으로 갔다.
부친은 매우 반가워했는데, 어디 크게 아파서 입원한 게 아니고, 이제 너무 늙어서 노환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병간호를 해줄 사람도 없지만, 간호를 받을 만치 중병도 아니니까, 네 일이나 하라며, 떠밀어냈다. 그가 보기에도 좀 쉬면 기력을 회복할 것 같아, 병실을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
글: 박종희 작가, 삽화: 이기원 작가
그리곤 병원 현관 앞에서 택시를 집어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서울에 들어온 지, 대여섯 시간 만에 다시 국제선 비행기에 올랐다.
모 주방이 날아간 곳은 마카오 카지노다.
영국계 홍콩인들과 화교들, 그리고 동남아 권력층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국인들도 더러 눈에 띠지만, 흔치는 않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VIP룸은 제법 큰 판을 벌인다. 최하 10만 달러까지 혜택을 준다.
그는 10만 달러를 은행계좌로 빼내, 칩 보관소에서 환전하고, 자리를 하나 얻었다. 스페인을 떠난 유람선 타고부터 남아공에서 허송한 것까지 계산하면, 거의 두 달은 카드를 구경해보지 못한 셈이다.
모 주방은 카지노에 앉아야 사는 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위인이다. 도박만이 지닌 짜릿한 승부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쾌감을 모를 거라 반박한다.
바카라는 세계 공통의 룰을 적용한다.
담배를 연거푸 피워대며, 패를 받았다. 첫 판은 3이다.
개시를 잘해야 며칠 버틴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섰다.
손님은 모두 다섯이었는데, 자신 있게 플레이어에 베팅들을 했다. 보너스 카드가 딜러 손을 떠났다.
그에게 쥐어진 숫자는 안타깝게 하트 3이었다. 섯 다 판 같으면 땡인데, 바카라는 족보 없이 숫자만 갖고 따진다. 그래서 합은 6이다. 가망이 없는 조합이다. 차라리 4, 아니면 5 정도가 와야 승산이 있건만 6은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패다. 짐작은 적중해 벵커 패 8을 받은 쪽이 당겨갔다.
모 주방은 시간이 흐를수록 제 컨디션을 찾고 있었다.
다섯 판에 한 번은 이겼다. 테이블 위에 칩이 수북이 쌓였다. 승률이 20%인 셈이다.
그러나 언제 내리막을 탈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커피를 20잔 째 들이키고, 담배를 한 보루나 태웠다.
글: 박종희 작가, 삽화: 이기원 작가
정신이 말짱할 때는 실수를 안 한다. 과욕도 부리지 않고, 배짱을 부리지도 않는다. 바카라게임의 흐름을 잘 타고, 무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판단이 흐려진다. 그럴 때는 한 타임 쉬는 것이 좋다.
객실로 올라가 허기도 채우고, 카운터에 부탁해 여자를 불러 섹스를 나눈 뒤 잠을 청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푸는 데엔 여자와 한 바탕 진하게 놀아나는 것이 최고다.
그러나 패가 꼬이기 시작하면 정신없다. 바카라 판에서 플레이어 합이 8을 잡았는데, 벵커가 9를 쥐면 끝이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패스를 했는데, 벵커가 9와1을 잡은 뒤, 거푸 9를 받는 경우다. 그야 말로 한 끗발로 밀리는 거다.
그 때부터 흥분하고, 무모한 베팅을 하게 되면, 패 가 망 신 쪽으로 가는 거다. 게다가 잃은 걸, 복구하기 위해 자꾸 베팅을 올린다. 보너스카드를 원하면서 말이다.
다시 자리를 뜨고, 게임의 흐름을 끊었다가, 끼어들어 타이밍을 맞추면 다행이지만, 본전치기로 굴리다 큰판에 잃고, 또 그럭저럭 버티다 큰판에 물리기를 반복하면, 밑천은 언제 빠져나 간지 모르게, 개털이 되는 것이다. 차라리 대박 판에 물려 왕창 깨지면 ‘에이 오늘은 운이 아닌가보다.’며 일어서지만, 찔끔찔끔 뜯기면, 짜증나고, 신경이 곤두서서 판세 흐름을 읽어내지 못 하게 된다.
모 주방은 1주일 째, 바카라 판에 매달리다 지쳐 일어섰다.
그동안 땄던 칩을 다 털리고, 본전만 겨우 건져 배를 이용해 마카오를 빠져 나와, 홍콩으로 건너갔다.
그리곤 국제공항 청사에 입점한 미국계 은행에서 12만 달러를 본토 계좌에 송금했다. 용산 미8군 캠프에 지점이 있기 때문이고, 어느 나라에서 건, 원하는 때, 찾을 수 있어서다.
그는 김포 행 비행기에 올랐다. 자꾸 편찬은 아버지가 생각나서다. 그리고 여권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스탬프를 찍을 자리가 없다.
김포공항에 내린 모 주방은 택시를 집어 타고,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는 곧잘 버티고 계셨다. 어떤 중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이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노환인 것이다.
의사 말로는 ‘그게 더 문제라고.’ 했다. 기가 노쇠해 시름시름 앓는 것 말이다. 무슨 약을 써야 할 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퇴원하라기엔 좀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병실엔 막내 동생이 퇴근시간에 짬짬이 들러 간단다. 동네 친구들도 더러 얼굴을 디밀고. 아버지는 큰아들 얼굴만 봐도 마음이 놓이시는 모양이다. 가끔은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은근히 나무란다.
글: 박종희 작가, 삽화: 이기원 작가
“뭐가 그리 바쁜지는 모르지만, 모친상까지 외면하는 녀석이 어디 있어.”
“죄송합니다. 아버님.”
모 주방은 그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막내 동생과 친구들이 병실을 지키는 터라, 그는 슬쩍 병원을 빠져 나왔다.
아무 말 없이, 어디 간다는 것도 밝히지 않은 채, 택시를 집어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이번엔 제주도로 향한 것이다.
국제 호텔에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그런대로 판이 크다. 주로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모 주방은 스페인시민권으로 드나들고는 했다.
Q호텔 카지노환전소에는 미국은행 계좌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잔액이 뜨기 때문에 무사통과다.
밑천 1억이면 VIP룸에 들어갈 수 있다.
바카라 판 멤버는 다섯 명이었고, 영국계 홍콩인이 둘, 일본인 둘, 그리고 모 주방이었다. 룰은 조금 작아서 한 패당 미니 엄 5천 원, 맥스 엄 10만 원이다.
그는 버릇처럼 줄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연달아 마셨다.
늘 그렇듯 초반엔 주도권을 잘 쥔다. 딜러 얼굴빛만 봐도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어서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의 견제가 심해졌다.
3판에 한 판은 끌어당기니 말이다. 승률이 35%나 된다.
일본인들은 자기들끼리 저 친구 겜블러 같다고 속삭인다. 영국계 홍콩인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방 넷이서 한 판을 나눠 갖기도 벅차다.
그렇다고 딜러가 손을 쓰는 건 아닌데, 영국계 홍콩인이 딜러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해 다른 여자딜러가 왔다.
그게 적중했는지, 승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5판에서 한 판으로 줄어들었고, 상대 넷이 돌아가면서 판을 나눠갔다.
화장실을 핑계로 잠시 자리를 떴고, 3일 만에 서울 병원으로 전화를 넣었다. 혹시, 부친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주도에 있으니까 연락하라고 말이다.
다시 판에 끼자 신경전은 계속됐다. 밀고, 당기는 접전이 3시간 가까이 됐는데, 좀처럼 흐름을 회복하지 못했다. 너무 지루한 게임이 지속됐다.
영국계 홍콩인 하나가 먼저 자리를 떴다. 객실에서 잠깐 쉬었다 내려온다고, 딜러에게 말한 뒤 일어선 것이다.
헌데, 그 뒤부터 오히려 패가 잘 돌기 시작했다. 우연이겠지만, 딜러 손에서 돌려지는 카드가 한사람이 빠지면서 제대로 떨어지는 것이다. 초반의 끗발을 회복한 느낌이었고, 그 끗발은 날이 밝도록 계속됐다.
모 주방은 체질적으로 잠이 적다. 1주일을 잠 한숨 안자고, 버티는 특이 체질이었다. 자기 자신도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른다.
게임 한 번 붙으면, 커피를 2백여 잔씩 마시고, 담배를 2-3보루를 피워 대, 그런지 모르지만, 아무튼 밑천이 바닥나야, 손을 터는 성격이 문제다. 또 끝장을 보지 않으면, 이제 그만두자며, 스스로 물러서지 못하는 것도, 자신은 왜 그러는지 잘 모른다. 그게 아마, 병적이지 않나 싶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손에서 도박을 놓지 못해왔다.
카지노는 물론, 하우스 방에 출입할 밑천도 없고, 다른 일거리 만들어 돈벌이를 하지 않은 채, 방에 처박혀 있으면 5백 원짜리 복권을 잔뜩 사다가 동전으로 하루 종일 긁어댄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일제 게임기를 3-4일 밤새도록 들볶는 성격이다.
게다가 폐쇄공포증이 있어, 방안에 오래 갇혀 있는 걸 못 견딘 다.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주사위 네다 바이라도 해야 마음이 안정 된다.
밥공기 세 개 중, 어디에 주사위가 들어있는지 맞추면 열배를 준다는 말을 믿어서도 아니며, 그냥 습관적으로 그 속임수를 즐기는 거다.
그렇다고 자신이 정신적으로 큰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왜.
그게 어릴 적부터 일상이었으며, 생활이었는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여길 수 없는 것이다. 분명, 도박중독증세가 있는데도 자신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집안 식구나 친구들에게 자기가 지금 도박을 하고 있다는 말을 내놓은 적도 결코 없다.
모 주방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 모두는 그가 카지노에서 사는 걸, 아무도 절대 모른다. 역마살이 끼어서 여행을 좋아하며, 이 것 저 것 따지지 않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탓에 집안 식구들과 친구들은 그의 적극적인 행동에 도리어 감탄한다. 매사를 열심히 살고,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느냐는 달변에 깜빡 속고들 있는 것이다.
제주도 Q호텔 카지노에 발을 들여 놓은 지, 벌써 열흘이 되어간다.
운이 다됐을까, 끗발도 죽어서 밑천을 거의 다 까먹고 있었다.
51:49란 간발의 차이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 하고, 자꾸 대드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이 자신을 그토록 외면하는데도 줄기차게 달라붙는 거다. 아래 위 주머니, 양복 안주머니, 바지 양쪽 뒷주머니를 다 뒤져, 동전 한 푼 남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모 주방은 돈을 따 카지노를 나선 역사가 없다.
칩을 왕창 쓸어 담은 박스를 들고, 객실에 올라가 혼자 쾌재를 부를 지언 정, 절대 환전소에서 돈으로 바꿔, 제 발로 걸어 나오지 못한다.
글: 박종희 작가, 삽화: 이기원 작가
그래서 누군가 옆에 있기를 바라지만, 카지노엔 창녀만이 어슬렁댈 뿐이다. 객실 금고에 넣어둔 칩이 탐나고, 어떻게 해서든 앵벌이를 하기 위해 몸을 파는 족속들이다.
어쩌다 모나코에서 만난 그리스여자처럼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자기 자신의 의지로 결코, 카지노를 못 떠난다.
그렇기에 Q호텔 여직원이 서너 번이나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는 메모를 건넸는데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직감적으로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지만, 서울로 확인 전화를 못한 것이다.
밑천이 늘어나면, 좀 여유를 갖기 위해 자리를 뜨겠으나, 자꾸 잃고 있는데, 어떻게 판을 비우겠는가 말이다. 한 판이라도 더 받아 복구해야겠다는 절박함에 못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도박은 늘 엇박자로 간다. 초초하면 할수록 승기를 놓치기 때문이다. 냉정함을 잃고, 이 판엔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이기심이 작용하는 거다. 그 다음 판에도 이제, 내가 먹을 차례라 혼자 판단하고, 또 다음 판엔 정말 이길 거라며, 지레 짐작으로 버틴다.
그게 반복되면서 칩은 말라가고, 입 안에서도 단내가 풀풀 난다. 담배는 소태 같고, 커피는 목구멍을 쓰디쓰게 만들 따름이다.
결국, 정말 마지막 한 판으로 역전을 해보자고, 무리하게 올 인을 선언하면, 곧 막은 내린다. 초반 승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끝물에 걸려 1-2억 원을 서서히 밀어 넣은 뒤, 알거지가 되는 것이다.
카지노에 들어설 때는 VIP 이었지만, 나설 때는 앵벌이 신세로 전락해, 비행기 값이라도 하게 도와 달라며, 지금까지 함께 판을 놀아준 상대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다.
모 주방은 그 비참을 다시 한 번 되씹으며, 게임 룸을 벗어나 서울로 전화를 넣었다. 막내 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돌아가셨어!”
“그래...”
그는 짐작 못 한 바 아니지만, 막내 동생의 높은 언성에 풀이 죽었다.
“언제...”
“3일 전에!”
“미안하다.”
“장례도 이미 다 치렀어! 큰형 친구들이 도와줘서!”
“...”
“큰 형은 도대체 제주도에서 무얼 하고 있었기에 연락이 안 된 거야!”
“...”
모 주방은 막내 동생이 다그치는데도 아무 말 못했다. 입을 열어봐야 변명 밖에 안 될 테니 말이다. 녀석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지난번에 어머니 상도 그러더니!”
“지금 올라갈게.”
“마음대로 해!”
모 주방은 뚝 끊긴 전화를 한동안 들고 있었다. 뚜! 뚜! 뚜! 하는 잡음만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잔뜩 맥이 빠지고, 축 처져 기운 없는 발걸음을 떼었다.
프론트 데스크를 물러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자, 그 동안 지새운 밤잠이 한꺼번에 쏟아져 코를 골게 만들었다. 긴장이 풀려서 라기 보다, 너무 지쳐 골 아 떨어진 것이다. 옆 좌석 승객이 스튜어디스를 불러 깨울 정도였다.
김포에 내려서 택시를 탄 뒤에도 밀려드는 잠을 이겨내지 못했고, 남산 밑 동네에 닿자 운전기사가 흔들어 깨웠다.
부친 소유 2층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막내 동생이 회사에 출근하면,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안방 구석구석을 다 뒤지고 다녔다. 재산이라고는 이 집뿐이지만, 시가로 4억 원은 된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언장을 만들어 재산을 물려 줄 정도는 아니기에 그냥 혼자 작심한 것이다. 어차피 제일 맡 형인 자신이 갖게 될 것이고, 상속을 받기 전에 팔아버리려 생각한 것이다. 부친 인감과 집문서를 찾아들고, 곧장 복덕방으로 갔다.
동네 아저씨지만, 별로 안면이 없어 말 꺼내기가 훨씬 수월했다.
급매물로 2억5천을 받아주면 그냥 넘길 테니, 가능한 빨리 알아봐 달라고 조르자, 그러마했다.
막내 동생이야 대기업에 잘 다니고 있으니까, 제 앞가림은 잘 할 것이고, 둘째 놈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겠다고 했으니, 일찍 귀국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막내 동생은 건설현장을 오가는 터라, 가끔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사이 빨리 임자가 나타나 떠넘기고, 돈 챙겨서 미국으로 날아갈 심산이었다.
나흘 후, 집 살 임자와 복덕방 아저씨가 찾아와 계약서를 작성하자기에 모 주방은 잘 됐다 싶어, 얼른 인감도장을 찍고, 집문서를 넘겼다.
그리곤 현찰 2억5천만 원을 가방에 쓸어 담아 나섰다. 엎어지면 코 닿을 용산 미8군 캠프를 택시타고 들어갔다. 미국본토 은행에 돈을 입금하기 위해서다. 절차는 간단하다. 달러로 환산해 송금하면 그만이다.
그런 뒤 곧장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에 올랐다.
글: 박종희 작가, 삽화: 이기원 작가
그는 해외여행을 할 때 마다 예매보다는 빈 좌석을 많이 이용하고, 꼭 맨 뒤 끝자리에 앉는다. 비행기 삯이 매우 저럼하고, 늘 비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하도 자주하니까, 항공사에서도 VIP고객 명단에 올려놨고, 국제선 스튜어디스들도 그를 알아볼 정도다. 그리곤 늘 같은 물음을 던진다.
“왜 늘 맨 뒷좌석에 앉으세요?”
“담배를 자유롭게 필 수 있어서.”
모 주방이 내놓는 대답도 매번 같다.
일반인들은 맨 끝 좌석을 아주 꺼려한다. 비행기 엔진 소음이 크고, 비행 중에 자주 흔들리기 때문이다. 더 큰 고역은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 몸이 완전히 젖혀진다는 것이다.
LA에 도착한 모 주방은 택시를 대절해 600Km나 떨어진 라스베가스로 내달렸다. 8시간이나 걸리는데 말이다.
돈이 생겼다는 여유보다는 어서 빨리 도박판에 끼어들고 싶은 조급증이 앞서기 때문이었다.
그게 어떻게 해서 손에 쥐어진 돈이든 상관없고, 누구 돈이든 상관없다. 게임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본능적인 안도감만이 중요하다.
이번엔 며칠을 버틸까, 이번엔 돈 좀 불릴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당장 카드를 만질 수 있다는 현실만이 뇌리에 가득하다.
라스베가스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인공도시다. 처음엔 갱단들이 FBI의 추격을 피해 도망 친 곳인데, 갱들이 달리 할 일이 없어, 재미 삼아 도박장을 만들면서 점차 카지노로 변했고, 여러 갱단들이 너도나도 몰려들면서 도시를 형성했으며, 나중엔 그 규모가 미국 내에서 가장 큰 도박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네바다 주 남부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도시가 된 것이다.
그는 가끔 왔었던 K카지노에 여장을 풀었다. 짐이라고는 여권과 은행통장, 스페인시민권, 옷가지 몇 점이 전부다. 객실은 16층인데, 창문 밖 야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끼니고, 뭐고 간에 가장 화급을 다투는 건, 게임 룸이다.
카지노 전체 게임 룸엔 관광객들이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다. 그 중엔 일본인들도 상당수다. 한국인들만큼이나 도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서다.
칩 환전소에서 미국본토 은행계좌를 확인하고 25만 달러를 전부 바꿨다. 환전소 여직원이 의아할 정도로 큰돈이었고, 그 많은 돈을 다 게임에 몰아넣을 거냐고, 되묻는 얼굴이다. 네가 웬 참견이냐는 듯, 칩 박스를 들고 VIP룸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에 쫓기듯 몸을 재게 놀렸다. ..........<다음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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