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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회 (1779년): 경기도 천진암과 주어사에서 권철신, 이벽, 정약용 등이 모여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등을 공부하며 신앙심을 키웠습니다.
이승훈의 세례 (1784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동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실질적인 신앙 공동체가 시작되었습니다. [07:18]
2. 가성직 제도와 평등 사상 [09:30]
신부가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신부 역할을 맡아 미사를 집전했던 '가성직 제도'는 한국 천주교만의 특징입니다. 또한 "하느님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교리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3. 100년의 박해와 순교의 역사 [11:19]
조선 정부는 제사 거부와 신분제 부정 등을 이유로 천주교를 강력히 탄압했습니다.
신해박해 (1791년): 윤지충이 조상의 신주를 불태운 '진산 사건'으로 시작된 첫 박해입니다.
신유박해 (1801년): 정조 사후 집권한 벽파가 남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켰으며, 이승훈, 주문모 신부 등이 순교했습니다. [15:34]
기해박해 (1839년): 프랑스 선교사 앵베르 주교 등과 정하상 등이 순교했습니다. [21:16]
병인박해 (1866년): 대원군 집권기에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박해로, 약 8,000~10,000명의 신자가 희생되었습니다. 이는 병인양요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습니다. [28:13]
4. 주요 인물: 김대건과 최양업 [19:34]
김대건 안드레아: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피의 순교자'로 불립니다. [24:49]
최양업 토마스: 김대건과 함께 유학했으나 뒤늦게 귀국하여 12년간 전국 교우촌을 발로 뛰며 사목 활동을 펼쳤습니다. '땀의 순교자'로 불립니다. [25:43]
5. 현대의 천주교와 민주화 운동 [35:20]
박해를 견뎌낸 천주교는 현대에 들어 교육, 의료, 구호 활동에 앞장섰습니다. 특히 1970~80년대 독재 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명동성당 등) 역할을 하며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35:50]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하여 103위 성인을 시성하면서 한국 천주교는 세계 교회사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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