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닫힌 문
김미옥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허공을 향한 괴성이 얼굴을 벌겋게 달구며 숨이 끊어질 듯 속앓이를 토해냈다. 아무런 답도 없이 휑하게 돌아선 딸의 뒷모습에 던진 말은 무게를 더해 다시 내게로 되돌아와 심장을 쳤다.
생각의 길이 어긋날 때면 달리기 선상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던 초조함이 떠오른다. 깃발이 올라가고 몇 발자국 내딛기도 전에 헛발질하며 흙바닥에 철퍼덕 넘어지는 기이한 상황이 종종 머릿속을 스친다. 마음은 길을 따라 달리는데 몸은 어긋난 꼴이다. 어쩌다 일상은 자신을 믿고 의기양양하게 달리지만 내 맘 같지 않은 상황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문이 닫혔다. 딸은 달리기 시작을 알리는 깃발처럼 세차게 바람을 가르며 나를 스쳐 지났다. 그렇게 외면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속을 참지 못하고 출발의 총성보다 더 날카로운 소리를 아이에게 쏘았다. 어이없게도 매번 전달되지도 못하는 언어는 문 앞에서 꼬꾸라졌고 그때마다 딸은 내가 뱉은 말보다 더 세차게 ‘쿵’ 문을 닫으며 사라졌다.
그야말로 매일 달리기를 하는 심정이다. 언제부터인지 딸의 사춘기는 고비마다 굴곡을 보였다. 하나의 장애물을 넘으면 또 다른 걸림돌이 딸의 마음을 흔들었다. 친구이기도 하다가 성적이기도 하다가 대상과 상황을 바꿔가며 이어달리기를 펼쳤다. 어느 순간 내가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침묵하는가 싶다가 이내 나를 외면하기 일쑤다. 학교를 다녀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도 없으며 무언가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다. 그저 침묵하며 알쏭달쏭한 표정과 행동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이어간다. 하루 중 식탁에서 만나는 일이 유일하지만 잠시 말을 붙이려면 수저를 놓고 일어선다.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온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는 아이의 곤란한 상황과 마주할 때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어느 날 아이는 운동장에서 발목을 접질리면서 통증에 시달렸다. 재빠르게 조치를 취한다고 했어도 아이가 느끼는 통증이 허리와 어깨, 목 언저리까지 번지면서 점점 말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즈음 나는 바쁜 업무로 아이와 눈을 마주칠 시간이 적었다. 그저 평소처럼 자기의 일을 척척 알아서 잘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상황은 내 생각과 다르게 흘렀다. 딸은 몸으로 느끼는 아픔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소리쳤다. 그렇게 속내를 하소연하다가도 때론 엄마 처지를 이해한다고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고비를 넘어가는가 싶었다.
달리는 길에서는 뒷걸음치지 않는다. 장애물이 있으면 비켜 가고 설령 웅덩이에 빠졌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달린다. 비바람을 맞기도 하고 흙먼지에 찌들고 무더위에 땀범벅이 되어도 견디며 나간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의 과정을 통과하며 지나간다. 지금 딸은 가던 길에서 멈춰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가족이 함께하지만, 각자의 길을 달리며 곁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 홀로 외로운 순간을 참고 견디다가 터져버린 상황에서 기어코 아이의 마음이 닫혔다. 달리기는 끝나지 않았는데 멈춰 웅크린 자세로 심호흡만 내뱉고 있는 모양이다. 그 모습은 마치 끝나지 않은 마라톤에 지친 형상과 흡사하다.
엄마는 시집와서 할머니와 통하는 창을 만드는 법을 몰랐다. 아들 사랑이 지극했던 할머니에게 며느리는 그저 모든 게 부족한 존재였다. 엄마는 모자란 살림을 알뜰하게 일구어 집을 넓히고 손자 손녀를 늘리면서도 할머니의 문을 쉬이 두드리지 못했다. 그저 둘은 서로 닫힌 문 사이에서 각자 혼잣말을 뱉었다. 어쩌다 말이 뒤섞일 때면 매번 요란하게 부딪치며 발아래로 떨어졌다. 그저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시간도 세월을 따라 지나갔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서로의 문을 열고 여생을 함께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내 마음을 모른다며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문을 닫고 감정을 쏟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조용히 기다렸다. 문지방 너머 내 울림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사춘기 마음 읽는 법을 살핀다. 책을 뒤지고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을 찾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이가 화를 내거나 부모를 밀쳐내는 경우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른다는 수많은 사연을 만난다. 교사가 사춘기 학생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갖가지 사례를 읽으며 나를 바라본다. 어이없는 건 나 역시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이론은 도대체 어디에 적용해야 아이의 방문이 열리는 건지 엄마의 마음을 떠올리며 나 또한 기다림을 이어간다. 성급하게 다가가거나 어른의 심정으로 결론 짓지 않으려고 매일 문고리를 잡고 오열한다.
지나온 시간이 그냥 흐른 게 아니지 않은가. 나이 든 몸을 잊고 마음만 앞서 달리는 심정은 공중에 헛발질하며 움직이는 아슬아슬한 곡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넘어지려 하다가도 호흡을 조절하며 속도를 늦추고서야 겨우 제자리 땅을 밟고 달리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든 출발 앞에 선 마음은 아이와 같으리라. 자기 삶의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갖은 노력과 방법을 찾아 헤매며 넘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겨우 말문을 연다. 침묵을 가로막고 서 있는 문이 멀뚱멀뚱 나를 바라본다. 무언가 답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나에게 등 돌린 문이 야속하기만 하다. 지나온 시간 속에 흔들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엄마가 그랬고 내가 그랬고 또 딸이 이 시간에 흔들리며 지나가고 있다. 무수히 많은 출발선을 밟고 여러 문을 지나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문득 지금까지 달려온 아이의 마음에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함께 했었는지 되돌아본다. 지금이라도 딸에게 맞는 창을 열어 세상과 호흡할 수 있도록 곁에 함께하고 싶다. 나는 다시 문을 두드린다.
(《수필문예》 제21집, 2022.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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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영남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대구수필문예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2015년 제6회 달서책사랑전국주부수필공모전 은상 수상,
2016년 제7회 경북문화체험전국수필대전 장려상 수상,
2017년 제8회 경북문화체험전국수필대전 대상 수상
대구수필문예대학 25기 수료
gipu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