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말씀을 보면,
처음 두 번은 사랑이라는 말에 ‘아가페’를 사용하셨고,
세 번째는 ‘필리아’를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 번 다 ‘필리아’로 대답했습니다.
‘아가페’는 성경에서만 사용된 단어이고, 주로 이타적인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을 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필리아’는 당시 사람들이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용하던
단어이고, 사랑을 말할 때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아가페’와 ‘필리아’가 그렇게 엄격하게 구분되어서
사용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의 질문이 ‘아가페’에서
‘필리아’로 바뀐 것과 베드로 사도가 ‘필리아’로만 대답한 것
자체에는, 특별히 중요한 의미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말씀하실 때
‘필리아’를 사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0절,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라는
말씀의 ‘사랑’에 ‘필리아’를 사용하셨고,
또 요한복음 16장 27절,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라는 말씀에도 ‘필리아’를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어떤 단어를 사용했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중간에 단어를 바꾸셨지만 뜻이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어를 바꾸신 것 자체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사랑 실천’을 보속으로 주셨고,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비록 겁에 질려서 잠깐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자신의 믿음과 사랑에는 변함이 없음을 고백하면서,
예수님께서 주신 보속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대답과 고백에 대한
매일미사 책의 설명은 잘못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에 베드로 사도가 슬퍼한 것은, 자신이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일에 대한 죄책감 때문입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