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계와 가야계, 크게 두 줄기로 대별되는 한국 김씨의 뿌리가 기마민족인 '선비족 모용씨'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담은 책.
'수수께끼의 세기'로 불리는 4세기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를 근본부터 새로 쓰겠다는 시도로 한.중.일의 고대 문헌고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토대로 내물왕부터 시작하는 신리 김씨 왕족과 김유신 장군의 직계조상인 가야 김씨 왕실이 342년 고구려를 침공한 모용씨 군대 가운데 낙오한 무리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에 덧붙여 '김'이라는 성씨가 출현하게 된 사정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다. 6세기 초인 법흥왕 시대에 들어 신라 지배층이 자신의 정체성을 농경문화민족으로 자리매김해 나가는 과정에서 '모(용)씨'라는 기마족의 성과 이름을 버리고 김씨 성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김씨란 성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기마족의 습성을 철저히 버리고, 대신 농경문화민족의 나라를 건설하려 했던 군주의 결단이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법흥왕이 창씨개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521년 남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등 북방 기마민족의 거친 유목풍 대신 남중국의 교양스런 문화를 적극 도입해 나가려 했던 상황에서 남중국 한족들이 싫어하는 유목민족의 성씨 모(용)씨가 당시의 국제관계에서 결코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을 상정해볼 수 있다.
법흥왕이 모(용)씨 성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적당한 계기가 생겼으니 바로 금관국(김해의 금관가야) 병합이다. 김해 금관국이 신라와 비슷한 시기에 김씨 성을 쓰는 것도 법흥왕이 창씨개명을 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신라 왕실과 가야 왕실이 5만 자나 되는 한자 가운데 같은 글자 금(金)을 성씨로 삼고 있으니 분명 어떤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되었을 것이다."--본문 196쪽
1. 신라 - 가야 김씨 왕은 선비족 모용씨
1. 말을 탄 사람들의 문화
신라 고분의 수수께끼/ 중앙아시아의 적석목곽분
2. 서라벌로 간 선비족 모용씨
거대 장벽 고구려 관통하기/ 선비족은 누구인가/ 모용씨의 유래/ 모용황의 고구려 침공/ 북로로 간 기병군단 1만5천 명의 행방/ 모용씨의 신라 진출과 왕위 찬탈
3. 법흥왕의 본명 모진의 비밀 : 신라 김씨 왕=모용씨 단서
`모`씨 성에 이름이 `진`인 왕/ 모진에서 김원종으로/ 박제상의 본명은 `모말`/ 모씨와 모용씨 관계/ 모용씨 시조신화와 신라 시조신화의 유사성/ 모용씨 보요관과 신라 - 가야의 금관/ 북연 재상 풍소불의 모자장식
4. 가야와 왜로 간 신라 모용씨
모용씨의 분열과 전쟁/ 신라 외교의 수수께끼/ 권력투쟁에 패한 모용씨의 가야 - 왜 진출/ 신라 땅 소시모리
5. 가야 - 왜에 나타난 모용씨 문화
가야로 간 모용 선비/ 모용씨의 일본열도 정복/ 모용 선비의 백제 진출 가능성
2. 모(용)씨에서 김씨로 - 창씨개명에 담긴 법흥왕의 개혁정치
1. 모용신라 170년
호화사치의 마립간 시대/ 잇단 전란과 백성들의 기아
2. 개혁의 시작 - 지증왕 시대
3. 법흥왕 모진의 7대 개혁
병부를 설치하다/ 율령을 반포하다/ 세계화를 추진하다/ 독자 연호를 사용하다/ 불교를 공인하다/ 호화사치를 척결하다/ 창씨개명을 단행하다
4. 법흥왕의 나라 키우기
5. 법흥왕 개혁의 성공적인 계승
`부인`들의 소년왕 섭정기/ 법흥왕을 능가한 후계자
첫댓글 날씨가 어제 오후부터 한파로 바뀌었나이다
활동 나가실때 옷단단히 입으시고 나시십시요
아무튼 오늘하루 하시는 일마다 대박 나시기를
진심으로 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