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교 관점으로 성경 내러티브를 열다, IVP, 2010
1.
독자로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공감, 반감, 호감, 비호감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넉넉하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책도 있고, 깊이 있는 통찰과 깨달음을 안겨주는 책도 있다. “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든 첫 번째 나의 반응이다. 선교의 성경적 근거라며 구약 본문, 에피소드 몇 개를 본문 맥락이 아닌 다분히 의도된 해석 전제를 담고 활용하는 것에 대한 나의 오래된 거부감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책, [하나님의 선교](Mission og God)라는 책 제목이 없었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 관점으로 성경 내러티브를 열다”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이 책은 구약성경신학을 다룬 한 권의 책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구약 전체의 내러티브, 특히 구약 성경을 연구했던 이들이라면 접해봤을 출애굽, 바벨론 포로 같은 주요한 사건과 희년과 언약 같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 구약 성경 본문의 의미를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다수의 한국 기독교인에게 익숙한 성경적 선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선교적 성경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구약의 내러티브를 풀이하면서, 본문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사회적·경제적·정치적·영적·전도적·통합적 해석을 펼치고 있다. 성경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메시지 속 시대 안으로 들어가고자 애를 쓰는 듯하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성경 독자가 성경을 마주하는 지난 여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별히 “성경”과 “선교”에 연결된 주제에 있어서 그러했다. “선교의 성경적 근거”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선교의 성경적 기초” 같은 성경 소비 방식에서 선교적 성경 읽기, “성경의 선교적 기초”에 주목하는 것으로 자신이 변해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 때문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라이트 자신의 삶이 녹아있는 간증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구약 성경을 선교학적으로 해석하는 자신의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이렇게 그는 말하고 있다.
“선교의 성경적 기초”에서 “성경의 선교적 기초”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나는 학생들이 그저 성경에 우연하게 선교 활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많은 본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뿐 아니라, 전체 성경 자체가 하나의 ‘선교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기 원했다. 현재 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글들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궁극적 선교의 산물이며 증거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관여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다.“
2. 간략하게 다시 훑어보기
1부 “성경과 선교”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이 책에서 나의 목적은 기독교 선교가 성경에 확고하게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확고한 신학이 성경 전체를 읽는 효과적인 해석학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을 보여 주고자 한다. 2부에서 “성경적 유일신론이 지닌 선교학적 함의”를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포함) 공동체 안에서는 물론이고 이방 땅에 종되고, 포로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선포되는 메시지가 있다. 이방 신들이 지배한다는 그 땅과 역사 한 복판에서 그들은 인간이 만든 우상이라고, 야웨가 그 모든 것을 만들고 지배하는 자라는 사실을 구약 성경을 끊임 없이 선포한다. 이것을 두고 라이트는 “인간이 만들어 낸 신들 및 우상들과의 충돌 속에서 살펴”보고 있다.
라이트는 3부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선교의 일차적 대리인’의 관점에서 풀이한다. “아브라함 안에서 선택받았고, 애굽으로부터 구속받았으며, 시내 산에서 언약 관계를 맺었고, 열방과는 윤리적으로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언약 신학의 관점을 떠올리게 한다. 라이트는 이것을 풀이하면서,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한 백성을 창조”해 내셨다고 주장한다. 이 하나님의 백성은 “열방을 위해, 열방 앞에서 살아야 하는“ 새로운 삶, 윤리적 요구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바로 이러한 백성에 속해 있다”라고 라이트는 말한다.
그는 4부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로 시선을 모은다. 세상(땅), 인류, 문화, 열방 등의 주제를 다룬다. 전형적인 기독교 세계관에서 마주하였던 주제를 같은 듯 다른 시선으로 마주하게 돕는다. “열방은 창조되고 구속받은 인류의 일부다”, “모든 열방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어떤 나라든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가 될 수 있다”, “어떤 나라든 하나님의 긍훌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열방의 역사는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문화명령’이라는 개념으로 대하던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과 기독교 선교를 연결짓는다. 구령의 열정을 주로 강조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는 거리감이 있는 주제일지 모르겠다. 야웨께서 “그분의 형상으로 만드신 인간들에게, 모든 문화와 나라들에 관여하시는 것”을 바라보도록 돕는다. “언젠가 모든 족속, 백성, 나라, 방언의 사람들이 새 창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궁극적 종말론적 목표”로 시선을 모아준다. “열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며, “열방은 이스라엘과 같은 정체성을 갖게될 것”이라는 것이다.
3. 기대난망, 아쉬움?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강조점을 다시 떠올려 본다. 라이트는 크게 두 가지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의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의 선교가 성경 이해에 타당한 해석학적 틀, 혹은 믿을 만한 지도를 제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전반적인 틀 안에서 성경 전체를 읽을 수 있고 또 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을 한다.
“이야기의 창시자,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분, 이야기의 주인공, 이야기 줄거리를 계획하고 인도하시는 분, 이야기의 의미, 이야기의 궁극적 완성이시다. 하나님은 처음이며, 끝이며, 중심이시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교,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이 하나님의 선교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할 이들의 다수는 하나님의 선교의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할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선교의 목격자로서의 증인의 역할보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활동에 더 큰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보수적인 입장의 교회와 기독교인, 선교사들에게 호감과 비호감으로 다가갈 것 같다. 선교의 성경적 근거”라며 제시하는 성경 본문이 제한적이었던 이들에게 구약 성경 전체가 선교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근거 본문을 애써서 찾는 수고를 덜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비호감일 수 있는 이유는, 현재까지 관행적으로 전통적으로 이어오는, 보내든지 가든지 하는 선교의 틀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 자체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확립하는 것은 정당하고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선교 활동이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훨씬 더 미심쩍은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들을 성경적으로 정당화하려 하기보다, 모든 선교전략들과 계획과 작전을 성경에 근거해서 비판받고 평가받아야 한다.” - 43
4.
여전히 한국 교회의 선교, 선교관, 성경읽기는 전통적이다. 여전히 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선교를 말하고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게 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교’(mission)라는 말이 ‘선교 사역’(missions) 및 타문화 선교사들의 훌륭하고도 칭찬할 만한 노력들을 말“할 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하나님의 선교를 모든 존재의 중심으로 놓는 이 세계관“은 그의 말마따나 많이 ”체제 전복적이며, 거대한 틀 안에서 우리 지신의 위치를 불편하게 상대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라이트의 의견에 주목하는 이도 적을 것이고, 이 책을 읽고서 기존의 관행에 맞서는 위험을 감수할 이들도 별반 없을 것 같다. 지식 수집가들은 그저 한권의 책을 더 읽은 티를 낼 것이고, 선교적 삶에 관심없는 어떤 선교 평론가들은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어떤 어휘를 소비할 뿐이다.
나의 제한된 선교 경험에서, 선교단체나 선교사 다수가 ”하나님의 선교”보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받은 보냄받은 자의 선교“에 집착하는 것을 보아 왔고, 그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고민이 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교회는 성경적 선교를 강조하면서도 성경도 선교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이 실제 현장(한국 교회의 선교 교육 현장과 타문화권 선교 현장)에서는 크게 활용될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저자가 아닌 한국 교회에 대해 갖는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