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이 손 잡고 계단을 오르는 풍경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두 분도 상상을 한 적이 없을 것이다. 노란 황매화를 보면 손잡고 고란사 계단을 오르던 엄마,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여행이 준 선물이다.
백마강 유람선에서 내릴 때 다리가 불편한 엄마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엄마가 내 손을 잡지 않았다. '넌 속도가 안 맞아 불편해' 아버지가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엄마가 손을 포갰다. 노란 황매화 사이로 엄마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래 바라봤다.
엄마,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 본 적 있어?
- 아니...한 번도 못 보고 시집왔지.
아버지는? 그래도 남자들은 몰래 각시 될 사람 보러가고 그러잖아.
- 나는 니네 엄마 장가들고 나서 삼일 만에 얼굴 제대로 봤다. 혼례 치르는데 고개 숙인 각시 얼굴 보고 싶다고 고개 들게 할수도 없잖냐.
근데 노처녀, 노총각 누가 중매했어?
- 석산이 노할머니. 그 양반이 니네 엄마 동네에서 시집 왔거든...
우리들은 석산이 노할머니는 모른다.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다 다리가 한쪽 다리가 잘려 매일 소주를 마시던 석산이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석산이네와 우리는 담장을 사이에 둔 위,아랫집이었다. 낮은 흙담 아래 고욤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 김장독을 묻었었다.
석산이 엄마 아버지는 매일 싸웠다. 담장 너머로 매일 물건들이 날라 왔다. 화장품, 옷가지가 날라왓다. 가끔은 그릇들은 우리집 김장독과 부딪히며 큰 소리를 냈다. 우리들은 담에 붙어 있는 굴뚝 위에 올라가서 싸움을 구경하곤 했다. 석산이 아버지가 농약을 마시고, 엄마가 집을 나가고 우리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다
고향집. 상투적이긴 한데 생각보다 울림이 깊고 많은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은 기억의 되새김질이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 입을 통해 세상에 나왔을 때 비로소 생기를 갖고 살아나는 말들, 우리만이 아는 이름. 석산이, 봉옥이...
계백장군이 황산벌에서 오천 결사대로 나당 연합군을 막는 사이 의자왕은 용이 되어 백마강에서 스러져 가는 나라를 지켰다고 한다. 소정방은 용이 제일 좋아하는 백마를 미끼로 나라를 지키던 용을 낚았다. 그리고 백제는 망했다. 소정방이 의자왕을 낚은 조룡대가 고란사 선착장 끝에 보인다.
막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결사 항전한 계백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려 했던 의자왕도, 용을 낚았을 소정방도 이곳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란 이름 속에 녹아 흐른다. 백마강은 금강이 하류 장항에 거의 다다를 즈음 부여를 지날때만 불리는 이름이다.
고란사에서 아버지는 내내 낮은 목소리로 꿈꾸는 백마강의 노랫가락을 읖조렸다. 어쩌면 아버지는 스러진 백제의 무상함을 가장해 사흘째 되는 날 각시 얼굴을 본 자신의 청춘을 회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오지 않을 시절, 그 꽃 같았던 젊은 화양연화의 시절을....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한참을 고란사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내내 꿈꾸는 백마강을 부르다가, 가사를 한소절씩 내게 알려줬다. 난 노래대신 삼천궁녀가 치마를 뒤집어쓰고 백마강으로 한떨기 꽃잎처럼 떨어지는 고란사 뒷면의 벽화를 바라봤다. 노인 몇 분이 바위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
위태로운 절벽 위에 고란초 몇 촉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고사 위기의 고란초는 유리 상자 안에서 백제의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백마강 아침 안개가 매일 스며들었을 단청이 애잔하다. 고란사 기와 너머에 까치집이 매달려 있다. 범종루 너머 백마강에 유람선이 쉼없이 오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고란사 뒷편의 약수 맛을 보지 않고 고란사를 떠났다. 고란사를 벗어나기 전 천년을 음미하려고 남겨 두었는데...구드래 나루로 돌아왔다. 백마강 건너 수북정으로 갔다. 수북정에서 서서 강 건너 퇴락한 부여를 오래 바라봤다.-2006.04.26
봄빛 강물이 연두빛으로 흐르는 날 다시 고란사에 다녀왔다. 노란 황매화가 출렁거린다. 백제, 사비, 백마강, 낙화암, 시인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아버지와 같이 탔던 꿈꾸는 백마강 유람선과 우여회... 불쑥불쑥 기억들이 튀어나온다.
35년만에 도반스님의 열반 소식을 들은 서종사 신도 일행을 따라와 처음으로 불교식 49재에 참석했다. 성지순례를 빙자한 꽃놀이인줄 알고 따라왔는데 벚꽃 흩날리는 봄날, 표표히 흐르는 백마강을 바라보며 삶의 뒷쪽 죽음을 바라봤다. 설날 아침 마흔몇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선배의 고향이 부여여서 함께 고란사에 온 적이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 온 곳이 어디며/ 죽어 갈 곳은 어디인가/ 태어남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흩어짐이라/ 나고 죽는 인생사 또한 그와 같도다/ 그러나 한 물건 홀로이 남아 있어/ 나고 죽음에 걸림 없어라/ 散花落 散花落 散花落 산화락 산화락 산화락 _꽃잎 휘날리는 꽃길 가소서_()()()_
고란사에서 나오는 길, 아까 법당에 있던 하얀 옷 입은 부처님은 누구세요? 하얀 부처님 첨 봤어요, 라고 물었더니 모두들 깜짝 놀란다. 절에서 만난 사람들이니 내가 자신들 수준인줄 알았나보다. 밑천이 드러났다.
항상 흰옷을 입고 흰연꽃을 들고있는 백의관음보살이란다. 백의관음보살을 검색해봤더니 내가 감탄해마지 않았던 강진 무위사 아미타불 뒷면 벽화에 그려진, 흰옷 휘날리던 멋진 분이 백의관음보살이었다. 불단 뒷면이라 생략하여 선 몇개로 관음상을 표현한줄 알았는데 저렇게 떡하니 불단에 앉아 계신분이었구나...
실체가 없어 꿈인가 싶은 백제 그리고 사비, 민들레 홀씨가 백마강에 어른거린다. 한 생이 시작되고, 끝나고, 다시 시작되고... 다음에 부여에 오면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정림사지에 꼭 가봐야겠다. -2017.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