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양선례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코로나라는 처음 맞이하는 사태로 아이들 개학도 한없이 연기되고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앙꼬없는 찐빵이다. 학교는 나오지만 뭔가 이상하다. 어렵게 개학 좀 해 보나 했더니 이태원발 불운한 소식으로 인해 또다시 개학은 연기되었다.
올해 학교를 옮긴 나는 아이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5월이 되고 말았다. 비오는 날 들리는 피아노 건반소리, 아니 때로는 와글와글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시끄러운 아이들 소리가 그립다. 하루에도 열두 번 꼭지를 돌게 만들던 그 소란스러움이 사실은 사람 사는 세상, 내가 30년 이상 들어오던 익숙한 소리였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코로나19라는 작은 바이러스 탓으로 인류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을 겪는 중이고, 학교 역시 아이들 없는 온라인 개학으로 부산하고 혼란스럽다. 이래저래 2020학년도 학교는 역사 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다. IT강국 한국은 진화하는 온라인 학습과 실시간 쌍방향 수업으로의 전환으로 21세기의 새로운 학교 모델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효율적이고 모범적인 방역으로 국격도 한 단계 올라가는 중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부러워하던 선진국이 사실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었다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화장기없는 민낯은 영 볼품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은 스승의 날! 혼란 속에서도 봄은 왔고, 가정의 달 한가운데 있는 ‘스승의 날’이 돌아왔다. 코로나19상황에서는 '스승의 날'이라고 하여 별 다를 것이 없다. 지난 연휴에 두 명의 선생님이 자녀들 있는 서울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이태원 근처에도 안 갔지만 재택근무중이다. 김영란 법 이후로 카네이션 꽃 한송이 받는 것도 금지된 오늘, 우리끼리 자축이라도 해 보려고 했더니 사람 모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서 그조차 눈치가 보인다.
창 밖에는 여름 장대비처럼 비가 내리고, 안개가 산 아래까지 내려와서 노는 한낮, 세상은 온통 흐리고 몽환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빗속을 뚫고 선물이 배달되었다. 10년도 더 전에 모시던 교장선생님이 당시 교무였던 내게 스승의 날 축하선물을 보내신 거다. 세월이 흘렀어도 빛이 바래지 않는 것이 진짜라고 하던 지인의 말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부족한 나를 아껴주시는 분이시다. 세련되지도 않았고, 달변가도 아니셨으나 사는 것 자체가 진솔하고 맑은 분이셨다. 앞과 뒤의 모습이 한결같았으며, 보여주기 위한 교육보다 아이 중심의 교육을 실천하셨다. 권위적이지 않은 그 소탈함이 참 좋아서 근무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학교를 옮긴 이후에도 그때 근무한 사람들과 간간이 모임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모임조차 3년이 넘은데다 현직에 계신 것도 아닌데 스승의 날이라고 잊지 않고 이렇게 챙겨주셔서 고맙기만 하다.
다른 기관과는 달리 아무리 좋은 인연이래도 4년 이상은 근무할 수 없는 학교의 특성상 학교 안에서 동료교사나 학생들과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가기란 웬만한 의지를 가지고는 어렵다. 미운 사람이 생기면 아무 때고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반면, 더 오래 근무하고 싶은 선생님들과도 4년이 지나면 가차없이 헤어져야만 한다. 새로운 곳에서 낯선 동료, 처음 보는 아이들과 정붙이고 살다가, 이제 내 집처럼 익숙하고 편해질 만하면 다시 보따리를 싸서 낯선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 교사들의 숙명이다.
교장선생님과는 순천의 작은 학교에서 만났다. 근무하는 선생님도 몇 명 안 되었고, 학생수도 30명도 안 되는 미니학교였다. 구성원들의 수가 적다고 모두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 아니다. 문제는 구성원이 누구냐는 거다. 몇 명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 이런 저런 문제가 불거지고 목소리 큰 한 사람이 있으면 큰 학교에서 문제 있는 것보다 그 파급력이 훨씬 크다. 교장선생님의 넉넉한 인품으로 그 작은 학교는 진짜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어느 해 겨울 방학, 수가 몇 되지 않기에 단독 상품으로 여행을 가기는 힘들어서 각 가정에서 자녀들을 한 명씩 데리고 일본 오사카 여행을 가게 되었다. 8명의 선생님이 자녀와 동행했는데 딱 한 사람 이미 자녀가 다 자라버린 교장선생님만 사모님을 모시고 왔었다. 처음의 불편하고 어색했던 순간은 잠깐이고, 교장선생님만큼이나 소탈하고 따뜻한 사모님과 함께 여행을 잘 마치고 왔었다. 무엇보다 부산에서 19시간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항에서 내려 오사카를 여행하고, 다시 19시간을 배에서 자고 부산에서 내려 자갈치 시장을 들렀던 기억이 먼 옛날 이야기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이왕이면 따뜻한 사람, 사람 냄새 나는 사람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 나 역시 누군가의 제자였으면서도 꽃 한송이 보내지도, 편지 한 장, 문자 한 통 쓰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스승이었던 것으로 오래 전 제자가 소식주기를 희망하는 이 이중성을 어이할꼬?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전화를 해 주던 웅이도 올해는 소식이 없다. 중학교 때 학업을 중단하여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인 내가 '제 인생의 유일한 선생님'이라는 기분좋은 멘트도 날려줄 줄 아는 웅이. 이제 곧 마흔이 다 되겠다. 오늘 소식은 없지만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교단에 선 지 30년이 넘었으니 긴 세월이었다. 그냥 오늘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했으나 그 안에서 모진 말로 상처주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무수히 많은 폭력과 얼룩이 있었을 것이다. 나와의 인연으로 한 교실에서 생활하며 스쳐간 많은 제자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선행아, 현정아, 선미야, 의혁아, 태형아, 선화야, 웅아, 금종아, 종석아, 재영아, 지훈아, 경호야, 찬종아, 남인아, 의진아! 모두모두 주어진 자리에서 행복해라, 건강해라!
첫댓글 교장 선생님의 선물, 그 분과 얽힌 추억 재밌게 들었어요.
그런데 비유를 쓰면서 주의해야 할 곳이 보입니다. "앙꼬 없는 찐빵처럼 심심하고 재미없다." 대신에 "앙꼬 없는 찐빵이다."라거나 그냥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써야 좋습니다. 원관념이 직접 드러나면 읽는 맛이 안 나거든요.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부실하다."도 마찬가집니다. 이래서 직유나 은유보다는 원관념을 독자가 찾아야 하는 상징을 쓰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다룬 글을 카톡에 올릴게요.
아, 이 글에서도 '-로 인해'가 보이네요. 이 문제는 따로 글 한 편을 써야겠어요. 이 말 때문에(여러분은 '이 말로 '인해''라고 쓸지 모르겠네요) 내가 몹시 고통스럽거든요.
교수님!
알고 있었으나 관행처럼 쓰는 부분을 잘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부분 고쳤습니다.
그리고 '-로 인해'도 적절한 말로 고쳐보렵니다.
복사도 풀었습니다.
꼼꼼하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