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곡 기도의 효과, 유능한 군주를 기다리며
단테는 수많은 영혼들로부터 이승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일가친척을 만나게 되거든 그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걸어갔습니다.
나 역시 그렇게 부탁하는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으니,
이리저리 얼굴을 돌리며 약속해 주면서
나갈 길을 터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기도해 주기만을 기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은총을 입을까 서두르던
그 영혼들에게서 빠져나오자 곧
단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네이스(아이네이스 6권 376행에 ‘하늘이 정한 일을 기도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일랑 버려야지’라는 유명한 말)에서 분명 기도가 하늘의 율법을 꺾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쉼 없이 제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것은 저들의 쓸데없는 ‘망상’이 아닌지요.”
내가 그렇게 한말은 맞다. 그러나
건전한 정신으로 잘 생각해 보면
저들의 희망도 헛된 것은 아니란다.
여기에 체류하는 자가 채워야 할 것을
사랑의 불이 어느 순간 완성시켜 준다고 해서
심판의 꼭대기가 구부러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들의 희망(기도의 효과)도 헛된 것은 아니란다” 왜냐하면 “사랑의 불이 어느 순간 완성시켜 준다고 해서 심판의 꼭대기가 구부러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이 시의 앞뒤의 구절의 의미가 맞지 않습니다.
‘심판의 꼭대기가 구부러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하느님께 간구하는 사랑의 열기가 죽은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하느님의 심판에 어느 순간 영향을 준다 해도 하느님의 지고한 정의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엄정하게 행사된다는 뜻입니다.
복잡한 종교적 문제들이 숨어 있는 논쟁을 일으키는 구절들이랍니다.
이 구절들을 며칠을 두고 생각했는데 부족한 머리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느낌으로는 오는데 문맥상 맞지 않습니다. 기도의 효험은 하느님의 정의를 훼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있다’, 그러니 '희망이란 헛된 것은 아니란다!'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 듯.
시구, 문장으로 이해가 아니라 느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좋지 않은 내 이해력으로 그냥 넘어가지 사나흘간 고생하며 꼭 이해해야만 넘어가는 내 성격이 문제입니다.
다행히 베르길리우스는 여기에서 베아트리체가 설명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너무 깊은 의심에 갇히지 않도록 하라.
진실과 지성 사이의 빛이신
그 여인께서 너에게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 말을 이해하느냐? 베아트리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분이 이 산의 정상에서 나타나
축복을 내리며 웃음을 지으실 거야.
단테는 선생님께 더 서둘러 산으로 오르자고 하는데 저 쪽에 도도한 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는 영혼이, 베르길리우스가 가장 좋은 오르막길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도 대답조차 없었습니다.
대신 우리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만토바…….’하면서 대답을 시작하자 벌떡 일어나 나는 당신과 동향인 소르델로(음유시인)라며 저 친절한 영혼은 자기 고향 이름만 듣고도 환영하며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아, 비천한 이탈리아여, 고통스러운 곳이여,
사공도 없이 폭풍우에 휩쓸린 배여,
부패와 싸움으로 젖은 곳이여,
지금 네 안에서 살고 있는 자들은
전쟁만 일삼고, 같은 성벽과 해자에 둘러싸여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기에 바쁘다.
아무런 인연이 없음에도 단지 고향이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며, 단테는 비천한 이탈리아는 제국이 선도하지 않은 작은 소국들로 분열되어 끊임없이 분란에 휩싸여 있는 자신의 고향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현실을 한탄합니다.
단테는 <제정론>에서 “인류는 군주 밑에서 단결하여야 완전히 자유로워진다.”고 말했습니다. “비천한 이탈이아”는 제국이 선도하지 않는 봉건 전제군주와 난립하는 귀족들의 내분으로 생겨났다는 것이 단테의 생각입니다.
안장(다스릴 군주)이 비어 있다면 유스티니아누스가
고삐(로마법전)를 고친다 한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부끄럽지는 않았을 텐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벽의 돌 모자이크, 2012년 라벤나 여행에서
유스티아누스 황제와 수행자들(막시무스 주교)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벽의 돌 모자이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잠자지 않는 황제라 불릴 정도로 동로마제국을 위해 힘썼으며 특히 방대한 양의 로마법을 정리하여 로마대법전을 편찬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이 잘 정비되어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유능하게 다스릴 군주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것을 기억한다면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성스러움을 추구할 뿐
안장은 카이사르가 돌보도록 두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것은 ‘카이사르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 것은 하느님께’를 말합니다. 너희들이 감히 고삐를 쥐고 있기에 이탈리아는 얼마나 거칠게 되어 버렸는지.
아, 독일인 알브레히트여, 넌
안장에 앉아 있어야 했건만
이 거칠고 야만스러운 짐승(이탈리아)을 버려두었구나!
너와 네 아버지(루돌프 1세)가 탐욕으로 인해
저쪽 일에만 마음을 쏟아서
제국의 정원이 황폐해졌으니 하는 말이다.
루돌프 1세는 신성로마 제국 황제였으나 이탈리아를 소홀히 하여 제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들 알브레히트도 역시 황제로 있으면서 이탈리아를 방치하여 단테는 그 부자가 태만의 죄를 저질렀다고 봅니다. 그들은 연옥 7곡 ‘군왕과 후작의 계곡’에 있습니다.
그대의 도시 로마를 보라! 자식을 잃고
홀로 되어 밤낮으로 울면서 “나의 카이사르!
왜 나를 버렸는가?”라고 부르짖지 않는가!
여기서 나의 카이사르는 카이사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를 통일 시킬 권력을 쥔 자, 유능한 군주를 가리킵니다.
단테는 하루 빨리 로마 제국과 같은 군주가 나타나 강력한 이탈리아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