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 황선영
누가 갓난이는 다 똑같이 생겼다고 하는가?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 줄줄이 누워있는 아가 중, 나는 내 사람을 단번에 알아봤다. 역시, 내 새끼는 다르군. 단연 돋보인다. 눈을 감아도 떠도 아기 얼굴이 앞에 떠다닌다. 빨리 데리고 집에 가고 싶다.
집으로 왔다. 다시 병원에 가고 싶다. <출산과 육아> 책을 몇 번이나 보았고, 배 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도 수십 번 들었다. 맞이할 날을 단단히 각오했다. 그런데 상상 이상이다. 내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분간할 수 없다. 부었던 것이 빠지느라 땀이 줄줄나고, 머리카락은 한 움큼씩 떨어진다. 자궁도 제 자릴 찾아가느라 훗배앓이를 한다. 몇 주는 피를 쏟고, 젖몸살로 고통스러워야 하리라. 애기는 먹을 것이 안 나온다고, 나는 아파서 운다. 이 와중에 시어머니는 온갖 음식으로 나를 먹인다. 가물치며 사골에 한약까지. 미역국도 끼니마다 한 대접 먹어야 한다. 젖 잘 나오게. 아, 내 가슴의 용도가 이런 것이구나. 남편은 달라진 것 없이 인간으로 잘 지낸다. 제일 신경질 나는 일이다.
아기를 재우다 나도 잠든다. 그러다 퍼뜩 깨면 옆에 누워 있는 이가 낯설다. 세상에, 내가 사람을 낳다니! 결혼했고 본능대로 사랑했을 뿐인데, 쾌락을 즐겼으니 대가를 치르라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 불안하다. 나부터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닌데, 누가 누구를 키운단 말인가.
걱정과 다르게 아기는 잘 자랐다. 돌아보니 그때는 모든 게 싱그러웠다. 온 가족이 아이를 놓고 둘러앉아 많은 것을 그린다. 혹시 어떤 면에 천재가 아닐지 기대와 걱정 섞인 소리를 하면, 남편은 그런 일 없을 거란다. 비록 우리는 '듣보잡' 대학을 나왔어도 아이는 서울대도 보내고, 판검사도 시켜본다. 대통령도 못 할 것 없지. 모든 것이 열려 있다. 부모님도 한창때였다. 안고, 업고 다니며 온 동네에 보이러 다니셨다. "해성 아빠, 우리 손자가 당신 빼다 박았어!", ''우는 것이 지아비랑 똑같구먼.", "우리 손자는 커서 무엇이 되려나."
잠깐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 있었다. 일곱 살 겨울에 살던 도시 시립교향악단이 하는 음악회에 데리고 갔다. 예매를 못 해서 맨 뒷자리에 앉았다. 대공연장이라 멀리서 감상하니 감흥이 덜 했다. 그렇게 집에 왔는데, 아들이 안방 피아노로 달려간다. 알 수 없는 멜로디를 친다. "엄마, 이거 아까 피아노 독주 앞부분이야!" 뭐야? 모차르트야? 내가 신동을 낳은 것인가? 밤새 흥분이 되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해서 더 그랬다. 어렸을 때 피아노 못 배운 것이, 지금도 서러우니까. 아침 아홉 시가 되자마자 피아노 학원에 전화했다. 우리 애가 이래저래 했다고. 선생님은 나와 다르게 차분하였다. 그럴 수 있다고. 애가 귀가 좋은 것 같다고. 그렇다고 연주를 잘하는 건 아니란다. 뭐 나중에 음악을 한다면 조금 쓰임이 있는 정도? 뭐 그리 대단한 일로 아침부터 전화했느냐는 투다.
보통 남자아이와 다르게 지루해하지 않고 초등학교 내내 피아노를 배웠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놓지 않았다. 급기야, 고입을 몇 달 앞두고, 전공하고 싶다고 발표했다. 책상에 앉아 있을 수는 없는데 피아노는 괜찮단다. 부모라면 비슷할 것 같다. 남자가 악기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주변에서도 희망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다. 돈만 많이 잡아 먹고 결국 별것이 없단다. 그럴만큼 가진 것도 없고, 조성진이 될 만한 재목도 아닌 것 같다. 아이고, 모르겠다. 뭘 해야 특별한 게 있을지 알 수 없다.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고3. 수험생 있는 집은 식구들도 덩달아 고된 1년을 보낸다는데 우리 집은 편하다. 주중에는 기숙사에 있으니 고3 엄마라는 실감이 없다가, 주위에서 "아들 대학 어디 가요?" 물어보면 그제야 '맞다, 내 새끼 대학 가야지!' 깨닫는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야 좋을까. 다들 큰 도시, 더 좋은 학교를 원한다. 그것도 중요하겠다. 나도 아들이 명문대에 간다면 동네에 현수막을 크게 내 걸 것이다. 아기 때라면 그런 큰 꿈을 원 없이 꾸겠지만 이제 현실을 안다. 하하. 바라는 것 없다. 누가 그러데. 살아만 있어도 효도라고. 정말로 존재 자체가 얼마나 귀한가! 다만 바라본다면 무엇을 하든 재밌었으면. 자기 일이 좋고 즐거우면 좀 견디기 쉬울 것 같다.
어려서는 내가 몸으로 다 해 줘야 해서 힘들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서 아프다. 이제 저쪽 관중석으로 빠져 응원만해야 한다. 송해성과 황선영 아들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