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 송덕희
효순 씨는 올해 예순 줄에 들어섰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어릴 적 그 일을 떠올리는 날에는 꿈을 꾼다. 엄마가 재판을 받거나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깬다. 늘 비슷하다. 누가 범인일까?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마지막 한두 조각을 맞추지 못해 쩔쩔맨다. 다 지난 일을 추리 소설 읽듯이 되짚곤 한다.
그녀의 엄마는 반동댁, 고흥 운대리 반산 마을에서 시집와 얻은 택호다. 먼저 온 동네 언니가 반산댁을 차지한 바람에 하필 반공을 부르짖던 시절, 그걸로 불려서 껄끄러워했다. 나이 서른아홉 되던 해에 늑막염을 앓던 남편은 죽었다. 훤칠한 키에 동네 이장으로 일하던 영리한 인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막내를 낳고 열흘이 안 지났으니, 사람들은 정신이 온전한 게 이상하다고들 했다. 혼자 어린 다섯 남매를 어찌 키울까? 섧게 울기도 하고 남편 무덤 앞에서 정신을 놓고 앉아 있기도 했다. 한동네에 남편 일가가 여섯이다. 하지만 다 먹고 살기 힘든 처지라 퍽퍽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성지굴 밑 서너 마지기 밭이 그녀의 끈이었다. 해가 뜨기 전부터 컴컴해질 때까지 너럭바위 아래 자갈밭을 일궜다. 먹고살려고 애쓰지만 늘 배를 곯았다. 그래도 자식들 학교 보내려면 모시를 삼아 돈을 벌어야 했다. 볕이 잘 드는 위쪽은 반동 양반 묘가 있고 도랑 쪽으로 모시풀밭이 열 평 남짓 있다. 여름에 키가 쭉 뻗은 줄기를 베어 와 감나무 그늘에 부린다. 껍질을 벗겨내면 안쪽에 하얀 모시 원료가 나온다. 빨랫줄에 걸어 햇볕에 바짝 말리면 태모시가 된다. 손끝이 찢어져 푸르딩딩 풀물이 들고 오금이 저려도 일은 그칠 줄 모른다. 모시를 째고 삼는 일이 남았다. 엄지손톱으로 가느다랗게 찢고(째고), 치아로 훑어 무릎 위에 놓고 비벼서 잇는다(삼는다). 수천 번 손을 놀려 광주리에 차곡차곡 채워지면 정갈하게 묶어 장에 내다 판다. 시세가 좋을 때는 만 원짜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아낙들과 사랑방에 모여 모시 삼는 일에 불을 켰다. 이가 닳도록 매달렸다.
효순 씨가 초등학교 6학년 가을 무렵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고샅길. “반동떡, 자네가 우리 모시 가져갔으면 솔직히 말하소.” 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반동댁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엄마가 도둑질을 했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쪽진머리에 녹색 비녀를 꽂은 여인이 툇마루에 앉아있다. 아버지의 사촌 누나인 당고모, 재동댁이다. 효순 씨 집에서 한 지붕 너머 봉동 당숙네, 길을 사이에 두고 두 집이 마주한다. 그이는 작은할아버지 제삿날에나 얼굴 한번 볼 정도로 왕래가 없다. 말수가 적어 사람들과 별다르게 어울리지 않았다. 반동댁보다 열 살은 더 들었다. 옷차림도 정갈하고 생김새가 옹골찼다. “봉동떡이 자네가 우리 집으로 들어간 걸 봤다고 하든 마.” 허튼 변명은 말라고 했다. ‘사실일까? 그 말만 믿고 엄마를 의심하다니, 모시 뭉텅이를 가지고 나온 것도 봤을까?’ 혼란스럽기만 했다. “아무리 말해도 아닌 건 아니요!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러는지 몰것소. 나는 모시 안 돌랐소(훔쳤소). 그이가 범인인 갑소.” 마른침을 삼키면서 내뱉는 소리는 몹시 떨렸다. 애먼 사람 잡는 봉동댁이 범인일 거라고 화살을 돌렸다. 그이는 형님뻘이지만 나이는 서너 살 어리다. 둘은 서로 존대를 하며 잘 지냈다. 늘 술에 취해 있는 당숙을 끔찍이 아끼며 음식 솜씨도 좋았다. 김치를 한 보시기 나눠주기도 했다. 귀가 잘 안 들려 반응이 늦었다. 말도 어눌했다. 반동댁은 시새우곤 했다. 남편이 없다는 건 그녀를 메마르고 처량하게 했다. “그 모시가 어떤 건지 안가? 내가 손끝이 문드러지게 껍질 벗겨 말린 거네. 이 동네서는 제일 좋고 비쌀 거여.” 재동댁은 밀어붙였다. 참고 있던 반동댁 입에서 왜 도둑으로 몰아가냐며 악에 받친 소리가 나왔다. 혼자 살아 무시한 거냐며 마룻 바닥을 치고 서러워했다. 동네 아낙 몇이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구경했다. 그 길로 봉동댁 집으로 달려가 싸움은 커졌다.
효순 씨는 엄마가 거짓말을 하는가 싶어 몰래 광에 있는 항아리까지 일일이 열어보았다. 집에는 아무리 찾아도 태모시는 없었다. 사건이 어떻게 끝날지 오만가지 생각이 이어졌다. 일가친척이 서로 의심하고 싸운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재동댁은 사흘 후에 또 왔다. 경찰에 신고하러 가기 전에 한 번 더 기회를 준다고 했다. 훔쳤으면 자백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효순 씨는 올 것이 왔구나 싶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가 잡혀간다면 어린 동생들과 어떻게 살지?’ 지레 겁이 났다. 신고하라고 했다. 봉동댁이 손대고 당신을 의심한다고 못을 박듯이 말했다. 모시 밭이 없어서 욕심을 냈을 거란다. 중재자로 나선 큰어머니가 동서, 반동댁은 뒤가 무른 사람이라 훔쳤으면 진작 실토했을 거라고 했다. 뭔 우센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탈 없이 지내 오던 이들은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에도 서로 고개를 돌리고 꺼렸다. 재동댁은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반동댁은 모시 삼는 일에만 정신을 쏟았다.
효순 씨는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또 다른 누군가가 범인이었을까? 모시가 없어졌다는 말이 거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 수사 반장처럼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헛일이었다. 빨리 잊히기만 바랐다.
그 일을 입 밖에 내면 상처가 덧날까 봐 꾹 눌러뒀다. 어린 나이에 불에 덴 자국처럼 남아 있는 기억을 혼자 안고 지냈다. 좀 더 나이가 든 어느 날, 한번은 이야기를 꺼냈다면 괜찮아졌으려나? 반동댁은 35년 전에 고달프게 살던 그곳을 떴다. 효순 씨 자식들 다 키워주고, 장가 안 간 아들 집으로 올라가 살았다.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만 하다가, 두 해 전부터는 요양원으로 갔다. ‘훔치지 않았다는 말 사실이지요? 나는 엄마를 믿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꼭 잡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딸을 알아보지 못한다.
효순 씨는 내가 만든 가짜 인물, 주워들은 사건에 살을 붙였다.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꿈은 계속 꾸면서.
첫댓글 선생님, 이번 글은 쫀쫀해요. 하하.
재밌게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쫀쫀한 글이라는 평에 맘이 조금 놓입니다요.
인생이 드러나네요. 무게 있는 글이네요.
잘 봐 주신거죠? 쉽게 쓰고 싶어요... 하하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글 제목과 풍성한 글 내용이 찰떡이네요.
아, 그래요? 쥐어짜느라 머리에 쥐났네요. 하하
잘 읽어주신 지현님, 고마워요.
@송덕희 내용이 궁금증을 일으키고 결말을 알 수 없어서 더 흥미진진한 것 같아요.
@심지현 그렇게 읽히긴 했다니 다행이네요. 휴.
내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토론하면서 많이 읽혔던 윌리엄 스타이그의 <진짜 도둑> 책 내용이 생각났어요. 진짜 도둑은 누구였을까요?
그런 책이 있군요. 독서교육을 알차게 하신 경험을 듣고 싶네요.
진짜 도둑을 끝까지 감춘 글솜씨가 노련합니다.
두번째와 세번째 단락이 너무 긴 것이 옥에 티입니다.
그렇군요. 해부 잘 하여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단편소설 한 편을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설 한 편 잘 읽었습니다.
소설이라 하기엔 부족한 글입니다. 고마워요.
와, 진짜 소설을 쓰셨군요. 대단하세요.
소설이라 생각하고 잘 읽어주신 미옥님도 대단하시네요. 하하하.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단편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글의 구성이 좋네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쥐어찌느라 힘들었는데,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