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덕택에 / 고혜숙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 쓴 사람"이라고 박경리 선생님이 말씀하셨단다. 솔직히 이번 주에는 글을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선배 두세 명이 떠오르긴 했다. 하지만 내 글버릇을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게 뻔했다. 나도 촘촘하게, 섬세하게 글을 써보고 싶은데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언제나 대충 겉모습만 스치고 지나가는 글이 되고 만다. 문득 정선례 선생님 생각이 났다. '괜히 글공부하려고 나섰구나' 후회하기 시작하던 무렵 나에게 카톡을 보낸 적이 있다.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니 남다른 관심이 생겼나 보다. 다른 선생님들이 올린 글을 읽다 보니 내 글이 너무 비교되어서 우울하다고 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에 이훈 선생님도 말씀하셨다. 단상에 그친 글이라고.
아침에 정선례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오후에 집에 계시냐고. 얼굴이라도 뵙고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아쉽게도 치료받는 중이라 11월 말에나 집으로 올 거란다. 대신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 분을 소개해 주었다.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는 내 선배도 아니거니와 글 잘 쓰는 이를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7년째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있는 정선례 선생님이 나는 존경스러웠다. 그 끈질긴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녀와 카톡을 주고받다 보니 이번 주 글을 이미 절반은 쓴 기분이었다. "우연도 성의의 편을 들어준다"는 말을 되새겼다.
우리 이야기(17-2)를 열었다. 9월 10일, 정선례 선생님이 처음으로 올린 글은 <여름 한 날의 일상>이었다. 짧았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 분인지 환히 그려졌다. 두 번째 글은 10월 6일에야 올라왔다. 서너 차례 글을 못 쓴 거다. 농사일로 바빴나? 아니면 글이 잘 안 써졌을까? <맏며느리>는 형제 많은 집안의 맏며느리 자리가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했다. 그런 처지라고 해서 모두 그렇게 일가친척 챙기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글쓴이의 성품이 남다르구나 생각했다. 30년 우정을 그린 <단짝 친구>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출산한 친구의 뒷바라지를 해 주려고 서울에서 나주까지 내려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것도 한 달씩이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몇 년 후에 올린 글에서도 연락이 끊어진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보인다. 개명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그만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마저 바꿔버리면 영영 그 친구를 못 찾게 될 것 같아서.
2018년 1학기에는 정선례 선생님 글이 하나도 없었다. 왜 등록을 안 했지? 열심히 갈고닦아서 라디오 방송에도 투고해 보리라 다짐했었는데.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나? 2학기에 올린 글에는 글쓰기를 두고 고민하고 다짐하는 내용이 많았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으면서 감각을 키우려고 애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차 한잔 나누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무척 반가웠다. 왠지 내가 찾던 사람을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유머가 좋아〉는 웃음이 빵 터지게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자기가 하면 다큐가 되어 버린다는 거다.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내가 딱 그런 사람이라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뜻대로 글을 잘 쓰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2학기를 마무리했다.
2019년 2월, 뇌출혈이라는 거센 바람에 쓰러졌다. 나흘 간 의식불명 상태였다고 한다. 기적처럼 깨어난 그녀에게 세상은 당연히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주르륵. 차츰 작고 연약한 것들에게서도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 같다. 종종 운동기구 거꾸리에 매달려서 바라보았다는 하늘 또한 새로운 삶을 꿈꾸게 했으리라. 재활 치료를 병원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걷기, 독서, 그리고 글쓰기는 그녀의 마음 근육을 키워주는 보약이었다. 틈 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이웃도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
6개월 휴직 후, 국립 농산물품질 관리원을 그만두었다. 아쉬운 마음이야 없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퇴사 결정으로, 어깨가 한결 가벼워져 전에 없던 날개를 자신에게 달아준 셈이다. 책 읽는 시간이 많아지고, 글 쓰는 데도 더욱 공을 들였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그녀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나는 차를 만드는 이야기 두 편이 특히 좋았다. 하나는 월출산 천황봉이며 차에 얽힌 이야기로 시작했다. 직접 찻잎을 따서 만드는 과정을 꼼꼼하게 묘사했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맛있는 차가 만들어질 리 없다. < 발효 녹차>는 평소와 달리 '하십시오'체를 사용했다. '문장 종결법에 따라서 이렇게 글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구나.' 그림 같은 풍경을 담고 있다는 그녀의 정원을 바라보면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따뜻한 황차를 마시면서.
나에게 말 걸어 준 그녀가 진심으로 고맙다. "선배님, 언제 우리 차 한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