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인생 혁명을 체험하라
09/17土(토) 고후 5:16-19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인간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면서 지금까지 물어온 질문이고 숙제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입니다. 우리의 교육과 문명이 아무리 발전하고 물질이 풍부해져도 인간은 변할 수 없기에 소망이 없고 삶이 힘든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은 절대 스스로 변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선언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났고, 아담의 후손인 우리 역시 죄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죄인입니다. 천사 같은 아기에게도 죄의 씨가 있습니다. 아기들은 어른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거짓말을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사단의 영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 오는 축복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죄의 씨를 가진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를 영접하면 우리 속에 성령이 역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 1:12-13). 우리 안에 있던 사단의 영이 쫓겨나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일어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신분이 달라지니 운명이 바뀐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의 삶의 목표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 썩어질 것, 즉 세상 정욕, 쾌락, 물질, 명예를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고 썩어질 것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죄짓고 타락하다 결국 죽어서 지옥에 갑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거듭난 우리는 성령이 계시므로 늘 천국을 바라보며 영원한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천국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빌 3:18-20)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살아가는 원동력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힘, 돈, 물질, 권력 등 보이는 것들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듭난 자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 삽니다. “주님 이 세상에서 받을 몫을 다 받고 사는 자들에게서 나를 구해주십시오. 주님께서 몸소 구해주십시오. 그들은 주님께서 쌓아 두신 재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남은 것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그래도 남아서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줍니다. 나는 떳떳하게 주님의 얼굴을 뵙겠습니다. 깨어나서 주님의 모습 뵈올 때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시 17:14-15).
And...
예수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피조물입니다. 이전의 존재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우리가 새롭게 되는 길, 우리 인생을 혁명하는 길은 예수 만나는 것입니다. 만남을 통해 깊은 친밀함 속에서 그분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는 것은 ‘야다’ 체험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에 걸맞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 나 중심으로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 이웃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약한 사람을 짓밟고 높은 위치에 올라가려던 삶에서 벗어나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주의 왕이시지만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죽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통치하는 삶입니다. 그분의 하시는 일에 순종의 자리로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남의 발을 씻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래전의 기억입니다. 아이들 할머니가 치매로 오랜 시간 앓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치매의 특징이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발을 씻겨 드리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여쭈어보니 발은 씻겠다고 하셨습니다. 대야에 발을 넣고 때를 밀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생각했던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니 오히려 80년 넘도록 수고한 그 발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때를 밀어드리고 로션을 바른 후 새로운 양말을 신겨 드렸을 때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섬긴다는 것, 내가 하려면 힘든 일이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마음을 주시면 그 자체가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무엇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내 삶은 하나님께서 필요를 공급해주십니다. 길을 열어주십니다. 주님의 때에 주님이 하시도록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과정에서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품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이 나를 통치하실 때 열매는 저절로 열립니다. 줄기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면 늘 풍성한 열매가 맺어집니다. 우리가 할 일은 줄기이신 주님께 늘 붙어있는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주님을 만난 후 거듭남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걸인 전도대를 결성하여 어려운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호적에서 이름을 지우겠다고 하자 프란시스는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호적에서 지우면 하늘나라 하나님 호적에 더 깊게 기록될 것이고 아버지께서 유산을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지원은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가들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가장 닮은 자, 가장 부요하게 산 자라고 지목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글로써 많은 감동을 준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는 ‘자유’라는 주제의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특히 죽음으로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1980년 3월 혜수종이란 병으로 입원하여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악을 쓰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1980년 4월 16일 죽음의 공포를 안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프랑스 신문에 “그가 평소에 그렇게 자유를 외쳤는데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샤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샤르트르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글이 기고되었습니다.
반면에 독일의 고백교회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2차 대전에 나치당에 항거하다가 수용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그는 처형되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동지들에게 아주 편하고 밝은 얼굴로 “내 본향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집에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단 여러분을 두고 내가 먼저 가는 것이 미만할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의 얼굴이 얼마나 평안한지 간수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본회퍼는 돌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거듭난 자, 새로운 피조물은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의 은혜로 넉넉히 살아갑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 혁명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주 예수 나의 산소망
https://youtu.be/kgK03Q4ftX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