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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청춘이다, 애년艾年의 노래
정용국
인간의 평균연령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 인생에 대하여 규정한 기준이나 재단들은 다시 새롭게 재평가하여 새로운 준거를 만들어야 하는 전환점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 맹자의 논어 위정편에 기술된 연령별 가치관일 것이다. 소위 15살(志學), 30살(而立), 40살(不惑), 50살(知天命), 60살(耳順), 70살(從心)으로 학문과 체득의 상관관계를 조리 있게 표현했던 기준도 크게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현행법으로 규정된 성인, 청년, 노인 등의 기준이 되는 연령도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노령들을 우대하는 무임승차권이나 연금의 지급 시점도 수명의 장기화에 따른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러한 법의 적용이나 조정은 차치하고 당장 우리 사회에는 50대 후반에 퇴직자가 된 청년 백수들이 차고 넘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Baby Boomer)세대들인 1950년대 후반기 출생자들이 2015년 이후 퇴직자 행렬에 합류하면서 사회 전체의 흐름에 커다란 이변과 새로운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20대 실업률이 고점에 있는 상황에서 60대들의 재취업과 상충되면서 사회 문제가 돌출하며 비정규직 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로 대두 된 것이다. 그러나 미리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차분하게 준비하지 않은 까닭에 많은 충돌과 마찰이 사회 각 계층에서 속출하고 있다. 문단의 상황만 보더라도 2000년 이전에는 60대들이 등단하는 시류를 두고 그저 취미생활이나 말년의 색다른 시도라 하였지만 이제는 제2의 청춘기를 맞아 당당하고 기운이 넘치는 60대 등단자들은 이미 작품으로나 활동량으로만 보아도 간단치 않은 문단의 구성원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인간 수명의 장기화에 따른 연령의 재평가를 인식하고 나니 이제 지천명의 나이는 노인의 시작이 절대 아니고 장년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해야 옳다. 봄호에는 그런 연치에 해당하는 시인들의 목소리가 유난하게 크게 들렸다. 길어진 인생의 도정에서 50이라는 연치는 이제 삶의 진솔한 맛과 상처에 대하여 관조하고 음미할 수 있는 여유와 식견이 생기는 아주 바람직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약 20년 정도의 시간들이 급격하게 연장된 우리들의 인생 여정을 재구성하고 준비하는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와 국가가 시급하게 도출해 내어야 하는 임무이자 필수의 미래 비전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경제가 장기 침체의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급한 문제와 대치하게 된 다양한 모습들이 작품에 투영된 장면들을 살펴보며 국가와 개인, 사회와 시류 등을 되새겨 돌아보는 시간들을 갖기로 한다.
중앙시장 대운상회 야채가게 박스더미 황토빛 감자상자에 붉게 쓴 ‘못잊어 감자’ 그 맛을 못 잊는 건지 그 사람 못 잊는 건지
구슬땀 한낮에도 하늘에 별 총총하다 감자꽃 진 자리에 망초꽃이 또 지고 때 없이 지는 별똥별 모아 담은 ‘못잊어 감자’
실패한 청춘도 헛웃는 그 이름도 가슴 강, 차돌멩이로 잊은 듯 가라앉혀 알알이 새겨 견디는 못 잊어 더 잘 견디는 - 김수환 「못잊어 감자」 전문
“못 잊어 더 잘 견디는”이라고 종결한 결구가 오래도록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 맛을 못 잊는 건지 / 그 사람 못 잊는 건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밋밋한 첫 수 종장이지만 이어진 둘 째 수에는 점차 “구슬땀 한낮에도 하늘에 별 총총하다” 로 긴장감이 구체화 되고 있다. 농사는 ‘구슬땀’과의 전쟁이라 할 만큼 몸이 고단하고 힘겨운 일인데 왜 ‘한낮에도 하늘에 별이 총총’할까. 그 별들은 혹시 농사꾼의 ‘걱정거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농군의 걱정거리가 어디 한둘이랴. 고가의 영농 장비와 인건비 그리고 판로에 이르는 고충들은 농사만 지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낮에도 ‘총총’ 잊혀지지 않고 빛나는 것일 게다. 그래서 그런 ‘걱정’들이 “별똥별”로 모여 ‘못잊어 감자’가 된 것이리라.
“실패한 청춘도 헛웃는 그 이름도”에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비장감이 확 들어온다. 땅값은 고사하고 트랙터 한 대에 수 천 만원 씩 하는데 감자 값은 턱없이 헐하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자조의 말들은 이미 농촌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농사에 실패하면 이제는 거액의 채무자가 되는 길 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야말로 “가슴 강”에 농사 지은 감자알을 “차돌맹이로 잊은 듯 가라앉혀”야 하는 슬픈 현장인 것이다. 그래서 결국 농사 지은 사람은 당연하게 ‘잊지 못하고’ 먹는 사람도 그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 바로 그 감자의 이름은 “못잊어 감자”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연령이 젊어야 50이고 거의 60대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려니 농산물을 살 때에는 값을 깍지 말고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받을 일이다.
삐걱대는 빌딩 숲 고시촌이 들썩인다 화려한 스펙 앞에 휘청이는 슬리퍼 푸석한 복도 끝자리 아슴아슴 야위고
비상하던 부푼 꿈 삐쩍삐쩍 말라간다 출구 없는 터널 안 심혈관을 조여오고 부르튼 안경 너머로 저당 잡힌 또 하루
나뒹구는 낙엽 위에 세상무게 불어난다 고층의 유리벽에 반사되는 이력서 내걸린 삼선슬리퍼 허공에 펄럭인다 - 장남숙 「삼선슬리퍼」 전문
한국의 경제 정책은 다분히 대기업 중심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 정책이 수출에 의존하는 무역 중심이어서 원자재를 수입하여 가공 수출하는 가공무역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수출을 강조하다 보니 국가가 집중 육성하고 세제 혜택을 주며 키워 온 대기업들은 이제 거대한 재벌군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 때 수출입국의 역군으로 나날이 막강해진 재벌들은 개혁의 대상이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대기업들은 공장마저 국내 건설을 기피하며 제3국으로 진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국내의 취업난은 심각한 나머지 포기에 이르는 경우까지 이르게 되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인원은 엄청난 경쟁률을 감수해야 한다. 3수가 기본이고 5수는 필수이며 10년 가까이 고시촌에 휩쓸려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장남숙의 희화 된 시제 「삼선슬리퍼」는 이러한 현장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삼선슬리퍼’는 아마도 검정 바탕에 흰 세 가닥의 선이 그려진 흔한 슬리퍼를 말하는 것 같은데 ‘슬리퍼’는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암시한다. 우선 슬리퍼는 집안이나 아주 가까운 곳을 갈 때 신는 신발이어서 최소한의 간편한 복장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모든 격식을 다 내려놓고 공부에 몰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복장이기도 하다. “화려한 스펙 앞에 휘청이는 슬리퍼”는 초라하지만 ‘슬리퍼’로 상징되는 수험생은 ‘시험 통과’라는 한 방의 응수로 아무리 ‘화려한 스팩’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시원한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삐쩍삐쩍 말라간다” “심혈관을 조여오고” 등의 표현은 둘째 수와 셋째 수의 초중장과 함께 조금 지루하게 연결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슬리퍼’가 시험공부에 전념하는 청년의 강력한 이미지를 담고 있어서 “내걸린 삼선슬리퍼 허공에 펄럭인다”는 모습은 마치 삼색슬리퍼를 신고 공부했던 수험생이 고시에 합격한 사실을 널리 알리는 승전보처럼 힘차고 재미있다. 전국 각지에서 슬리퍼를 신고 공부에 매진하는 청년들에게도 합격을 알리는 ‘삼색슬리퍼 깃발’이 나부끼기를.
밤을 도와 내달려온 호미곶 해맞이광장 마지막 달력 한 장 방석인 양 깔고 앉은 왁자한 노숙의 잔영 그 틈에 내가 섰다
바다가 한숨처럼 토해 놓는 물안개 속 꼬리 잘린 지난날이 숙취로 비척대고 선득한 바람이 와서 신열을 재고 간다
빈 가슴 밑바닥을 울려오는 파도소리 물끄러미 바라보는 물마루 경계 너머 갓밝이 새날을 열며 부챗살을 펴는 동살
이윽고 수평선도 어둑서니 금줄을 걷고 상생의 손 조각상이 햇덩이를 움켜쥘 때 머리 흰 괭이갈매기 날개 활짝 펼친다 - 임채성 「애년艾年의 아침」 전문 먼저 시인의 애년을 감축해야겠다. 이제야 사람의 감칠맛이 배어나고 눈도 어두워져 조심스럽게 귀를 열어 타인과 자연의 소리에 집중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당사자는 걱정이 태산 같아 보인다. “왁자한 노숙의 잔영”과 “바다가 한숨처럼 토해 놓는 물안개” “숙취로 비척대”는 “갓밝이 새날”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서고 있는 분위기다. 아무리 백세 인생이라 할지라도 오십이라는 나이가 무섭지 않을 수 없겠다. ‘이제 당신도 나이 50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선득한 바람이 와서 신열을 재고 간다”는 표현이 묵직하게 다가선다. “빈 가슴 밑바닥을 울려오는 파도소리”도 범상치 않았을 것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물마루 경계 너머”의 전경 속에도 이제 내려가야 할 생의 무게와 속도가 느껴졌을 것이다. 포기하기엔 조금 늦었고 감내하기엔 너무 벅찬 삶의 중량은 새날을 맞는 각오 치고는 버겁게 들이닥쳤을 것이다. 그렇다. 누구나 맞아야 할 나이 50은 그런 분위기로 다가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것을 맞이할 당사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마지막 수의 분위기는 앞의 세 수를 조용하게 응시하고 수긍하며 담담하게 애년의 새 아침을 두 손으로 받아 안는 장엄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참 좋다. “어둑서니”는 마치 너무 심한 경계심으로 안절부절 못하던 시인의 마음처럼 서 있다가 자연스럽게 걷히고 있다. 이런 전경은 <상생의 손>이라는 조각 작품과 어울려지며 힘차고 평화롭게 “날개 활짝 펼친” “괭이갈매기”와 어우러지며 애년의 아침을 멋지게 열고 있다. 불안하고 을씨년스럽던 호미곶 해맞이 광장은 이제 환하게 50을 맞이하는 시인에게 커다란 축복을 빌어주고 있다.
마을버스가 데려다 준 막다른 종점 근처 허름한 고기집 이층 에둘러 찾아온 잔치 간간이 눈물 배인 노래 울음처럼 흘렀다
거마비 사양하고 노래 불러준 가수 친구 시집을 주겠다고 멀리 올라온 시인 친구 한나절 연가를 내고 합류해준 고향 친구
갓 따놓은 포도주 붉은 잔에 잠긴 겨울 연탄난로 둘러앉아 따뜻하던 십대는 가고 깊어진 눈자위 주름 아코디언처럼 펴졌다 - 이숙경 「7시, 버금랑에서」 전문
“따듯하던 십대는 가고” “깊어진 눈자위 주름 아코디언처럼 퍼” 진 50대들이 축하 잔치를 벌인 자리가 제법 재미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50대들의 잔치는 막무가내 신나지만은 않지만 또 시큰둥 늘어지지 않고 아직은 힘이 있어서 “포도주 붉은 잔에 잠긴 겨울”처럼 애잔하고 상큼하다. 이제는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친구들이 들려주는 소식과 살림살이는 “간간이 눈물 배인 노래”라서 짤끔 눈물이 묻어나고 상처가 깃든 아픔이 보이지만 말하지 않아도 머리가 숙여지고 고마운 마음 오붓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7시’면 저녁 시간이고 ‘버금랑’은 특별한 자리는 아니라 해도 으뜸의 아랫자리일 것이니 한 발 아래 서 있는 그 자리도 도톰하고 따스하겠다.
번화하고 시끌벅적한 자리는 아니라도 “막다른 종점 근처”라 아늑하고 시끌벅적 레스토랑이나 뷔페식당 보다는 “허름한 고깃집 이층”은 얼마나 푸근할 것인가. 그러니 50대에 어울리는 장소이며 분위기에서 그들이 치른 축하연은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해도 편안한 저녁 밥상처럼 구수하고 좋은 자리였을 것이다. 이렇게 50의 연치는 부드럽고 둥글다. 모나서 거칠고 힘이 넘쳐 시끄러운 자리가 아니라 버금만 가도 자별하고 따듯한 자리여서 좋았겠다.
박경리 선생은 만년에 시집을 한 권 묶으며 이런 말을 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감감하던 세상이 살포시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들도 언뜻언뜻 들리기 시작하는 50대들의 이야기는 분명 운치 있고 진솔하다. 농사를 짓다 실패해도 웃으며 뒤돌아볼 줄 알고 ‘삼색슬리퍼’들의 고뇌와 신음도 새겨 들을 줄 아는 괭이갈매기 날개 활짝 펴는 애년의 아침도 싱그럽다. 인생 백세가 실제 상황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이제 뉘엿뉘엿 기우는 나이가 아니라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 50대들에게 인생은 또다시 청춘이다. 애년의 시들이 푸릇푸릇 힘차다.
정용국❙2001년 ≪시조세계≫로 등단. 시집 난 네가 참 좋다 외 2권, 시선집 눈이 물고 온 시, 기행문집 평양에서 길을 찾다. 한국작가회의 시조분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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