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편. 힐링할 지도
인생이라는 긴 트랙을 마라톤 하듯 꾸준하고도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쩌면 내 쉴 곳 하나 없을까. 바라건대 벌거벗은 내 영혼과 가난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작은 쉴 곳 하나 만나고 싶다. 이름하여 ‘나의 힐링지’
그 작은 소망 하나 품고 바다의 끝, 깊은 계곡 너머 그리고 인적 드문 숲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이들이 여기 있다.
자연으로 치유하고, 사람으로 꿈을 품는 풍경.
살짝이 엿보는 것만으로도 거기 당신 또한, 힐링할지도!
1부. 첩첩산중 행복이 오지 5월 24일 (월) 밤 9시 30분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
전봇대 고꾸라져 있는 깎아지른 벼랑과 산개울을 건너는 험한 여정 끝에 드디어 만났다.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하다 이제는 나답게, 내 맘대로 살고 싶어 강원도 양양 산중 오지로 들어왔다는 박성우 씨. 유년의 고향(묵호)이 그리워 멀게라도 고향 바다가 보이는 곳에 터 잡고 황혼의 힐링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단다.
심심산골이라 무료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 먼 걸음 한 고향 친구 조강석 씨와 함께 걸음을 먼저 배웠는지, 수영을 먼저 배웠는지 모를 바다 사나이들의 노는 법을 뽐낸다. 얼음장같이 시린 계곡으로의 입수는 물론, 5성급 전망을 자랑하는 계곡 옆 욕조에서 개똥쑥물 노천욕도 즐긴다. 마무리는 각종 산야초 넣어 뜨끈하게 끓인 버들치 매운탕. 특별한 것 없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두 남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큰 행복이자 힐링이 되는 지상낙원이다.
2부. 이런 게 사는 맛 5월 25일 (화) 밤 9시 30분 화림원 지붕 아래 일곱 식구
전북 남원 지리산 중턱에는 조금 특별한 집이 있다. 한때 실상사 스님들의 수행공간이었던 화림원. 낙지, 정어리, 뿌나, 달곰, 밤비, 상우, 짱짱… 현재는 육해공 아우르는 별명을 가진 20대부터 50대까지의 일곱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농사가 짓고 싶어’ ‘좋은 인간이 되고자’ ‘공동체 실험을 하고파서’ 등 서로 다른 이유로 화림원에 살게 됐다는 이들. 방은 1인1실, 한 달 10만 원씩 살림 동참금을 내 생활비를 충당한다. 누구나 살 수 있지만, 서로 간의 작은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빨간무, 싱아, 쪽 등이 자라는 공동 텃밭을 함께 가꾸고, 마음공부 겸 수행도 정기적으로 함께.
”서로 어울려서 살며, 삶으로 희망을 만들어보고 싶다. 혼자는 어렵지만 같이는 되지 않겠냐? 우린 꿈을 갖고 온 사람들이에요“
‘사람’으로 힐링하는 이곳은 ‘화림원’이다.
3부. 우리들의 비밀 낙원 5월 26일 (수) 밤 9시 30분 빨간 튤립과 통나무집, 그리고 나
강원 횡성의 울울한 숲속엔 색색이 고운 튤립, 수선화, 은방울꽃이 자라고 있다. 발전소 엔지니어에서 꽃 농부로 변신한 서른두 살, 조민성 씨의 숲속 꽃밭이다. 그 꽃밭 너머엔 손수 지은 작은 통나무집이 있다. 오래된 LP판과 카메라, 손때 묻은 만화책 등 좋아하는 애장품들이 가득한 실내. 꽃과 통나무집이 어우러진 풍경을 배경 삼아 육수 진하게 우려낸 수제라면 한 젓갈을 후루룩 들이켜 본다. 온통 좋아하는 것들 틈에 있으니, 여기야말로 나의 낙원 아닐까!
“우리 얼굴에도 평화가 넘친대요“
귀농한 지인의 얼굴에 평화가 흘러넘치는 걸 보고 귀농을 결심했다는 김영삼, 정난미 씨부부. 경북 영양의 ‘정골’이란 외딴 골짜기로 들어와 남편의 이름 ‘영삼(03)’에 걸맞은 동그란 지붕 세 개 붙인 흙집을 짓고 산다. 풀과 놀다 보면 하루해는 짧고, 산나물 툭툭 뜯어 만든 ‘나물 김밥’ 들고 툭하면 계곡 소풍 떠나기에 심심할 새는 없단다. 이제는 부부의 얼굴에도 평화가 넘실넘실. 부부만의 비밀스러운 낙원에서 정 불어 넣어가며 놀 듯, 쉬듯 살아가고 있다.
4부. 초록길 따라 오세요 5월 27일 (목) 밤 9시 30분 해발 700미터! 새뜻한 녹차 로드
이른 아침, 전라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질펀하게 섞어 쓰는 할머니들을 태운 모노레일이 출발한다. 경남 하동 해발 700미터 산기슭에 자리한 황인수 씨네 녹차밭이다. 봄이면 할머니들과 함께 녹차 채취를 한다는 인수 씨. 그는 어릴 적부터 학교보단 녹차밭이 책보보단 녹차 포대가 익숙했다는 녹차 장인이다. 녹차를 따는 족족 가마솥에 덖고 말리고, 겨우 허리 한번 펼 때쯤에야 맑은 찻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도 푸른 녹차 밭을 보면 그게 힐링이 된다는 인수 씨. 자연의 소리와 자연의 향이 물씬 느껴지는 녹차 밭으로 떠나보자.
남해 바다 굽어보는 고사리 로드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는 경남 남해 창선. 5월 이맘때면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마다 고사리 뜯는 농부들이 가득하다. 박송애 씨 가족도 그렇다. 라이더, 등산객도 사랑해 마지않는 고사리 언덕에서 똑!똑! 봄의 보물, 고사리를 끊는 맛은 황홀경. 갓 딴 고사리는 군부대 하나는 먹이고도 남을 커다란 솥단지에 삶아 바로바로 바닷가에 말린다. ”바다 보니 가슴 뻥하고, 고사리 뜯어 돈도 벌고! 좋고 말고요!“ 남해 창선엔 박송애 씨 가족의 초록빛 힐링 로드가 펼쳐져 있다.
5부. 거제에서 힐링할 거제 5월 28일 (금) 밤 9시 30분
”바닷속은 천국이지예, 천국“
경남 거제 구조라항. 쑥과 주홍빛 부표, 검정 물옷을 든 여자들이 모여든다. 극한직업의 대명사, 해녀. 그중에서도 ‘특공대’라 불릴 만큼 독하게 일한다는 하정미 씨와 해녀 엄마들이다. 40년 경력의 대상군부터 이제 2년 차 정미 씨까지 자맥질 한 번 했다 하면 뿔소라, 우뭇가사리, 바위굴, 성게… 진귀한 바다 보물이 우르르 딸려 나온다. 다섯 시간의 물질을 마치고, 촌집에 둘러앉아 오늘 잡은 해산물로 만찬을 즐기는 해녀들. 누가 봐도 생고생이건만 그녀들은 이렇게 말한다. 거제 바다는 ”돌아서면 그립고“ ”생각하면 아늑한“ ”천국이자 힐링“이라고.
”나는 공중에 그림을 그리는 거지예“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그림 같은 정원과 대궐 같은 한옥이 자리해 있다. 수풀, 나무 위 막론하고 맨발로 성큼성큼 돌아다니는 박정명 씨의 집이다. 고향에 버려진 선산을 30여 년 동안 세월과 정성을 들여 가꿨다는 정명 씨.
”평생을 즐거우려면 꽃나무를 가꾸면 돼! 미술가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다면, 나는 공중과 자연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역시나 맨발로 집 주변을 돌며 산야초를 뜯어와 직접 만들었다는 돌판에 삼겹살 얹어 아들과 특식을 즐기는 오후. 이제는 거제의 비경으로 거듭난 정명 씨의 그림 같은 집과 정원에서
당신도 힐링할 거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