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노래산 성지]
청송군 안덕면 노래2리에 있는 노래산(743m)은 피난지로서, 1801년 신유박해 후에 충청도의 홍주․ 청양 ․ 덕산 고을과 전라도와 경상도 상주에서 숨어 든 신자들이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15년 동안 비교적 풍부한 생활을 하면서 살았던 교우촌이다.
그러나 1814년 전국적인 큰 흉년을 만나 어려운 처지에 이곳을 드나들며 신자들의 도움을 받던 박물장수 전지수가 도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활대축일인 1815년 2월 22일에 청송현의 관장에게 밀고를 하여 첨례(미사)를 드리고 있던 신자들을 모조리 체포하였다.
신자들은 청송의 상부 관청인 경주 진영과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끌려 다니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증거 하였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옥중에서 순교하였고 고성대(베드로) ․ 고성운(요셉) ․ 김화춘(야고보) ․ 구성열(발바라) 등이 옥살이를 하다가 1816년(병자) 11월 1일(음)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하였다.
현재는 신흥종교(엘리야재림선교회 혹은 한농복구회)가 이 일대를 차지하고 있어서 순례가 쉽지 않다.
(안동교구 성지 소개에서)
지난 7월 19일(토)은 노래산 성지를 방문 하기로 계획 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장마비가 계속 되어 취소하려 하였으나 청송 지역에 약간의 비만 예보 되고 있어 계획대로 본당에서 10시에 출발하였습니다.
본래 계획은 이렇습니다.
10시 : 본당 출발,
11시 30분 : 청송 달기 약수터 도착, 산불 피해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비 진작 활동으로 점심 나누기,
13시 : 약수터 출발, 청송 양수 발전소 상부댐 도착, 노래산 성지 위치(뷰)확인 후 마음 모아 기도하기,
14시 30분 : 노래산 성지 입구(노래 2리 마을 회관) 도착, 마음으로 성지 순례하기
15시 : 포항으로 출발.
그런데 몇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첫번째는 기계를 지날 즈음 예보와는 달리 엄청난 호우가 내렸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는 차가 물위로 뜨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도로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차 안 여기 저기서 들리는 걱정스러운 농담은 심적부담으로 작용하여 핸들을 잡은 손은 과도하게 힘이 들어 갔습니다.꼭두방재를 지날 무렵에는 빗줄기가 가늘어 졌지만 긴장한 손은 쥐가 날 정도였습니다.
많이 쫄았지요? 포항으로 돌아 갈 때는 영덕 방면으로 일정을 수정합니다.
두번째는 청송호 방문입니다.청송 경제를 위하여 달기 약수탕을 방문, 점심을 맛있게 먹고 청송호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집중호우로 낙석 위험이 있다고 양수 발전소 입구에서 출입을 제지 당했습니다.
청송호는 성부댐과 하부댐으로 구분 되는데 하부댐은 발전으로 흘러 내린 물을 저장했다가, 밤에 심야 전기를 이용 상부댐으로 다시 이송합니다. 하부댐은 단순 저수지 역할을 합니다.
또 상부댐으로 가야 주변 경치 감상도 하고 노래산 성지 쪽을 바라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크나큰 실망감을 품고 차를 돌려 하부댐으로 이동합니다.
세번째는 노래산 방문입니다.
하부댐에서 노래산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연료 눈금이 반 칸만 남아 급하게 Gas 충전소를 찾았습니다.
검색 된 가장 가까운 충진소가 길안입니다. Gas 충진 후 go go ~~
어디로 가는 거야?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산이 아니라 청송 Ic 입니다.
고속도로 달리는 동안 내내 혼쭐났지요. 다음부터는 정신 바짝차리고 잘하겠습니다. 총기가 흐려저서 그만 ㅠㅠ
하지만 이런 신세계도 경험했습니다. 화진에 있는 카페 오딘(북유럽의 최고 신이라고 합니다)을 들렸는데 대단했습니다. 규모도 전망도 방문객도.
온 나라가 호우로 아우성인데 나들이 다녀 왔다고 질책도 받고 여러사람 걱정 시켰지만, 효자 시니어 열한 분 우중 임에도 많이 웃고 활력 넘치는 하루였습니다.
ps 온 나라가 물 난리라는 소식에 걱정 되어 지구 반대쪽에서 딸냄 전화 왔는데 나들이 갔다는 소리에 조금 이상한 할배들 소리 들었습니다.
글 올려야 할지 말지 고심 고심.
마카 반성합니다. 글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