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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의로울 필요(로마서 6:12~13)
2024년 10월 6일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로마서 6:12~13)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가는 아주 중대한 임무를 맡은 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삶 자체가 중심이고 기독교가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맡기신 임무를 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보다도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마지막까지 저 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다만, 지금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구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저 나라까지 이끄시는데 그는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오늘 주어져 있는 것은 그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을 할 지금 이 시간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종류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신 일을 감당할 수 있을 우리의 심령을 유지하고, 하나님 뜻을 받아들여 우리의 임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대단히 어려운 교회의 상태로 인해 허덕이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교회를 많은 사람에게 신앙을 심어주고, 삶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삶의 방법을 열어주고, 복받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교회를 보는 구도가 잘못돼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잘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임무는 주님이 하시는 일의 종으로서 충실히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명예로운 일입니다. 우리가 그의 일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복 경찰처럼, 경찰복을 입진 않았어도 능히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처럼, 우리도 겉으로 보기에는 별볼일 없어 보이지만, 그런 옷을 입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영광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분이 뭡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자들입니다. 그것이 진짜 이 땅에서 우리의 신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과 그리스도 교회의 삶을 이 본분에서 벗어나서 다르게 오해하게 만드는 모든 묘사들은 다 제거돼야 합니다. 맞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전에 주님의 심판대에 가서 주님께 설명을 해야 될 것입니다. 모든 자가 그 동안 숨겼던 자기 일을 그때는 발가벗듯이 그 분 앞에 다 나아가서 자기의 모든 것을 그대로 고백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죄를 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남은 일은 마지막 날에 주님과 정산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우리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내게 축복을 심어주신, 축복을 약속해 주신 그가 위탁하신 일을 여기서 이루는 것입니다. 나는 더 고생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조금 덜 고생스러운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삶의 환경 속에서 주님이 어떻게 쓰실지 모릅니다. 나는 주의 일을 파트타임도 안 되는 식으로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의 일부가 되었는가? 내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서 내 역할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내가 존재하는 것은 주의 나라를 위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교회는 우리 성도들의 믿음 자체를 지키느라고 허덕입니다. 교회는 영혼들을 보존하기 위해, 그들이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계속 격려하고 그들을 깨우고 가르칩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다. 의의 종들입니다, 의의 병기들입니다. 여기서 잘 살고, 여기서 엄청난 업적을 쌓고, 여기서 자기 사업을 잘해 놓는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부함이 오히려 신앙에 방해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돈으로 사람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 어떻게 쓰임이 되었는지입니다.
여기를 서비스센터처럼 여긴다면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인도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공하신 시간을 허비할 수 있습니다. 각자 인생의 길이가 다른데, 그 길이가 영원토록 내게 주어진 전 재산입니다. 저 나라에 가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게 되지만, 이 땅에 있는 동안은 내게 주어진 그 시간이 내 자산입니다. 그런데 잘못 인도를 받으면, 그 자산을 다 쏟아서 허탕치고 맙니다. 하나님은 종으로 일하라 하셨는데 다른 일을 하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서비스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가 나한테 왜 뭐 안 해줘?’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당신에게 뭘 해줘야 합니까? 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보호해줍니다. 영혼이 마귀에게 잡혀서 지옥에 가지 않도록, 주님이 구출해 놓은 자들을 잘 양육하여서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여서 마귀에게 끌려다니지 않도록 합니다. 또 영혼을 찾아다니고, 구원합니다. 사실상 우리 교회는 영혼 찾는 일은 못합니다. 사태 때문에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이 있어서, 그거 막기에 급급해서 아무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죽어라고 열심히 교회를 파괴하는 일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 교회가 철저한 개인주의에 치중되어 있었습니다. 서로 같이 하는 것은 안 하려 했습니다. 다들 개인적으로 알아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에 대한 오해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사역하시는 곳에서 성령이 시키는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물론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 와 계십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돕는 자로만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명하고, 가르치고, 깨끗케 하고, 일이 진행되게 하십니다. 그 일에 필요한 능을 그가 우리에게 주십니다.
또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세상의 빛입니다. 주님이 세상의 빛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그를 반사하는 그 빛이 되었습니다. 이 빛은 어디다 비춰야 합니까? 겉에 비추는 게 아니라 마음에 비춥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그동안 마귀가 세상에서 안심하고 사람들을 죄악 가운데 부리고 다녔던 것이 깨져버렸습니다. 이제는 마귀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람들을 마음을 끄집어 냅니다. 마귀는 손을 못 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빛으로 오셔서 이것을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빛에 드러나기 싫은 사람은 교회에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 마음을 드러내기 싫어합니다. 자기의 마음의 악한 것을 보이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반발합니다. 우리 교회에 악을 끼치고 교회에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도 보면 반발합니다. 신학교까지 어렵게 하고, 또 월산도 어렵게 하고, 교회도 너무 어렵게 합니다. 이제는 교회에 빛이 비추는데, 빛이 들어오는 걸 원치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배울 때에,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이 유대인 됨 그 자체로 자동으로 구원된다 믿었던 데 대해 ‘아니다. 원래 아무도 의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라는 의미로 그들과 싸우며 한 말씀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입니다. 오늘 이방인인 우리하곤 거의 관계가 없는, 관계 있긴 해도 아주 먼 그런 것인데 우리가 ‘의인은 하나도 없지. 우리가 아무리 한들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의는 없으니까, 의는 그냥 버려버리자!’ 하면서 악인이나 의인이나 똑같이 취급합니다. 나는 똑같이 취급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똑같이 취급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 하는 말씀에 “아, 의인은 없지. 어차피 의인 없으니까 다 똑같아.”라고 합니다. 연쇄살인 강도나, 주를 위해 7년, 8년 동안 눈물 흘리며 자기 일을 못하며 교회를 살리려고 애쓴 사람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똑같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도 악인이 있고 의인이 있습니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나오는 그런 의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요런 악인과 약간 품위 떨어지는 의인과 또 이런 악인과 덜 악인과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로마서에 보면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롬 3:9)”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묶이면 안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원래 죄 아래 있다.[1]’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죄의 버릇이 습관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은 ‘어차피 의인은 하나도 없다.[2]’ 했는데, 이것은 ‘유대인이라 그래서 다 천국 가는 줄 아느냐? 못 간다.’ 이걸 주장하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천국에 간다는 걸 주장한다는 것인데, 이 구절을 가지고 “의인은 필요 없대.” 하면서 교회가 영혼들을 훈련을 전혀 하지 않고 악인을 마구 들여오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있던 마귀 자식이 교회 들어오면 첫날부터 하나님을 닮도록 훈련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마귀 닮은 모습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대로 하나님의 양식을 먹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여러 성도들이 있는데, 정말 착한 성도들, 정말 의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다 똑같지 않습니다. 훨씬 의로운 자가 있습니다. ‘다 악인이다.’ 하고 고집부리고, 멱살을 잡고 달려드는 사람에게는 얘기를 못하겠는데, 상대적인 개념으로 말하겠습니다. 상대적으로 심성이 착한 성도가 있고 나쁜 성도가 있습니다. 아마 성장할 때 일찍이 그렇게 형성이 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 10살 미만 때 다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10대 이전에 이미 거짓말하는 능력, 속이는 능력, 이런 것이 훈련을 이미 합니다. 근데 어릴 때부터 이미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것에 조금 서툰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내 생각에 상대적으로 선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악인 중에서 선한 악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악인 중에서 정말 악한 악인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괴롭히고, 정말 마귀의 역군이 되어서 우리 교회를 파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거짓 것으로 선동하고. 그러한 심령과 다른 심령들이 다 똑같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선한 심령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잘 보거든요? 눈은 나빠도 잘 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나를 감동시키는 성도가 여럿 있습니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합니다. 주님이 ‘너는 뭐냐? 저기 봐라. 너는 뭐냐?’ 해서 제 자신을 꾸짖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훌륭한 성도입니다. 자기보다 교회의 일이 더 중요하고, 자기보다 주님을 사랑함이 더 하고, 감독인 나 자신보다 감독을 사랑해줌이 더 지극하고, 감독을 정신 차리게 합니다. 그런 성도 하나가 교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는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오늘 온 성도가 보는 앞에서 이야기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 모두가 다 그런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더 의로운 성도가 있고, 의가 부족한 성도가 있습니다. 의에 가치를 두지 않고, 마음이 타락이 돼 있고, 마음이 망쳐져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한데 섞여서 교회에서 함께 생활합니다. 우리가 지예배당이 있습니다. 지예배당은 본부 교회를 섬겨줘야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어떤 사람은 ‘교회로부터 내 지예배당을 보호해 주겠다.’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어디서 나온 것이죠? 당신이 2천년 전에 태어났으면 모르지만, 지금 태어났는데 어떻게 주님을 위해 목숨을 겁니까? 어떻게 목숨을 버려서 주님을 섬깁니까? 주의 교회를 위해 지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의 교회를 하찮게 여기고, 주의 교회 전체를 상대로 해서 재판을 거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의 교회, 그러니까 교회에 불과합니다. 회중입니다. 회중을 위해서도 목숨을 버려야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하찮게 여기는 그런 마음의 타락이 지배하고 있는 곳에서 어떤 때 저는 홀로 싸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더 의로운 성도가 그렇지 않은 성도보다 훨씬 낫습니다. 조금 더 선한 성도가 훨씬 낫습니다. 조금 더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가 훨씬 낫습니다!
그런가 하면은 악한 성도, 의가 부족한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그들 가운데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완전히 바닥인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너무나 어려운데 그런 데에는 아무 감정 없고 “우리나라의 문제를 생각합시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회에 의를 끼칠 수 없는 사람, 그냥 피하는 것이 최선인 그런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어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몇 년 동안 앞으로 그렇게 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상상도 못할 그런 일들을 합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많은 자가 교회에서 혹시 자기 권위가 떨어질 까 봐 걱정합니다. 자기 권위 세우는 데에 집착돼 있습니다. ‘이 주위의 성도들이 내 권위를 무시하면 어쩌지?’ 세상에서 하는 식으로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불행한 때 있었습니다. 지금 다 떠나갔지만, 목사들도 잔뜩 있는데, 다 선하지가 않습니다. 장갑만 끼면 전부 권투 선수일 것 같았습니다. 목소리도 걸걸하게 해서 멋있게 보이려고 하고. 그런 사람들이 성장해서 교회를 어렵게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뚱어리입니다. 인자로서의 주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몸은 여기 있습니다. 우리를 몸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 됩니까? 우리 하나님, 창조주의 몸이 되도록 주신 영광입니다. 이것은 우리 일생에 단 한번뿐입니다. 내 일생의 가치는 어떨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은 얼마짜리 인생일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이 인생을 맡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심할 것입니다. ‘너 니 인생이나 잘해. 돈 벌어.’ 그러나 나는 이 인생이 100번 나를 바쳐도 하나 후회가 없습니다. 가치 있는 일이고, 영광일 뿐입니다.
자기가 교회의 아픔이 되어서는 안되고, 자기가 교회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나중에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많이 울어야 할 것입니다. 괴로워서 후회로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오히려 감사와 감격으로 우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고생 많이 해서 ‘잘 참았다.’ 하고 스스로에게 기쁨으로 생각하는 자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사태 끝나고 우리 행복하고 싶습니다. ‘정말 예수 믿는다는 건 행복하다.’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지금 세상에 가면은 “목사님이다.” 하면 낮게 보고 “목사 사모입니다.” 하면 벌써 색안경 끼고 차별합니다. 성락교회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교회 무너뜨리자!’ 하고 있는 것은 너무 우리에게 슬픈 일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냥 교회라는 건 그냥 종교야.” 마귀가 어둠을 씌워서 하나님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는 함께 일하는 그 동료들 중에서 제게 정말 도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혼자 할 수 없잖아요? 내가 의지하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힘이 되고, 너무너무 용기가 되고, 너무 아름답습니다. 내가 그들을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자부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 내 눈이 보고 있는 저 사람, 기억해 주십시오. 축복해 주십시오.’ 하고 그런 자들이 잘 되길 빕니다. 그 사람이 당장은 안 되는 것 같아도, ‘제발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약간 모욕을 받을 것 같습니다. 저 사람 살려주시고, 저 사람 잘되게 해 주셔서 당신의 명예를 높여 주옵소서.’ 내 진심입니다. 나는 보면서 그런 자들이 축복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주시기를 정말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널 지지한다! 나는 너를 정말 칭찬한다! 나는 널 기뻐한다!’ 하고 그에게 알려주시길 원합니다.
악인이 다 똑같다고 하는데, 똑같지 않습니다. 정말 교회를 힘들게 합니다. 지금도 소수는 아주 극단적으로 지겹게 교회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것도 시들어서 다 지나가고, 사태도 다 끝나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때는 나도 마음을 좀 놓아 보고, 조금 쉬기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도들과 즐거운 찬양 부르면서 예수 믿는 것의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 예수 믿는 의미가 뭐예요?” “즐겁습니다. 재밌습니다.” 딱 이렇게 돼야 되는데. “당신이 예수 믿는 게 어때요?” “희망 찹니다! 설렙니다!” “당신, 예수 믿는 거 어떠세요?” “나 찬양하러 가고 싶어요!” 이렇게 되기 원합니다. 속상하고 아프고 인생 전체가 이렇게 비극적인 것 말고요.
의로운 성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만큼 의로운 것보다 그보다 더 의로운 것이 훨씬 낫습니다. 너무너무 영광스럽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언젠간 주님 앞에 갈 때, 그날에야말로 주님이 정말 깨끗하심 같이 자기 자신도 그렇게 되었음을 그날에 가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준비하여서 주님과 같이 되는 우리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있을 때 주님의 일꾼으로서 자기 맡은 일을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베드로전서 3:21)
침례를 받았다면 내게 요구되는 내 변화, 자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양심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욕하고 누가 주의 교회를 욕해도 내 양심으로 평생을 하늘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은 양심이 고장 나서 바꿀 수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양심이 화인 맞아서 계속 외식만 하고, 거짓말합니다[3].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섞여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이 자꾸 선한 일에 쓰십니다[4]. 그래서 빌립보서 말씀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도록,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알며, 의의 열매가 가득하도록 도우신다.[5]’라고 했습니다.
조금 더 의롭고, 더 나은 사람, 더 의로울 필요가 있는 것을 아시고 변화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더 의롭게 하여 주옵소서. 더 내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내 말이 너희를 깨끗하게 하였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 들을 때마다 우리가 자꾸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말씀대로, 당신의 말이 묘사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 되고 싶습니다. 더 착해지고, 더 선해지고, 더 양심이 훌륭하고, 더 주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를 역사해 주시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들은 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이 정말 더 깨끗하게, 더 의롭게, 더 선하게 변화되도록 주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 삶의 의미는 주님께 쓰임받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복이 제공되는 그런 정말 반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영원하신 기업에 참여하는, 사용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역사해 주시옵소서. 그 심령 속에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 마음에 변화를 입고, 주의 영광에 이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1]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9)
[2]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3]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5]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9~11)
[출처] 20241006 조금 더 의로울 필요(로마서 6:12~13)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 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