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094)-물가에 남긴 ‘남은 기도’(180825 대흥봉수산성지 복자 김정득 베드로 순교일)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2,4).
신해(1801) 음력 칠월 보름 다음날 달이 대흥옥과 내천(奈川)을 비추었다.
김정득 베드로는 사흘 전에 서울서 김광옥 안드레아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들의 고향인 예산과 대흥으로 압송하여 참수하라.”
둘은 나흘 동안 말잔등에 걸쳐져 귀향하였다.
예산 무한산성 밑에서 둘은 지상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최후 인사말은 짧고도 굵었다.
이제 이 밤이 지나면 이승이 아니라 저승 사람이 된다는 생각은 놀랍게도 속을 가볍게 만들었다.
칠월 열이레 새벽, 이슬을 맞고 잦아드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달이 봉수산을 넘고 있었다.
옥문이 열리고 턱밑까지 닿을 밥사발과 찔름거리는 국사발이 놓인 밥상이 옥 안으로 들어왔다.
최후조찬이었다.
베드로는 성호를 긋고 숟가락을 들어다 이내 놓고는 상을 물렸다.
밤도와 옥을 지킨 옥졸에게 밥 한 끼를 내고 싶었다.
한편 걷지 못하는 자신이 밥을 먹으면 형졸들이 형장까지 들것에 실어갈 때 무거울까봐 속을 비웠다.
칠월 열이레(양력 8월 25일) 해가 떴다.
내천(奈川) 건너 백사장이 베드로가 천국으로 떠날 장소였다.
안드레아는 예산 장터 물가에서 출발할 것이다.
두 사람이 기다리던 천국 재회 시간이 임박했다.
두 사람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기도’를 받쳤다.
그 ‘남은 기도’는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남은 시간’ 동안 찾아내야 할 기도 같다.
▲1964년 12월 예당호가 생기며 수몰된 땅과 남은 땅(1962년 모습)
①예산 가는 길, ②살내두리(신양 격양천과 광시 내천 합류지)·처형지. ③송지대야리. ④백사장. ⑤가방교(1922년 일제 시멘트다리 지방도 616호 연결). ⑥대흥초교. ⑦대흥농창, 대흥옥. ⑧대흥동헌. ⑨현재 성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