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을 잘하던 아이 | g1
작성자 : 김영순 01-06-18
난 우리 집에서 막내이기에 모든 잔심부름은 다 하고 살았다
어른들 말씀이 막내는 그런 심부름을 해야한다고 세뇌시켰고
또 말 잘듣는 날 칭찬하였으므로 칭찬듣는게 좋아라
심부름만 시키면 단숨에 해치우려고 안간힘까지 쓰기 일쑤였다
시장 푸줏간에 심부름을 가면 고깃집 아주머닌 내 몫 이라며
덤으로 쇠갈고리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내장들 사이에서 쇠간을 한칼씩 잘라 주셨다
막걸리 심부름을 가면 양조장 창고엔 대형 막걸리 저장탱크가 수십 개가 있었는데
어른이 발판위로 올라서서 한되 두되 퍼주었다 이방저방 기웃거리면
수 많은 막걸리 저장탱크엔 알딸한 냄새를 풍기지만 구경하기 재밌었다
가끔씩은 종업원 아저씨가 주인 몰래 술밥 말려 논걸 뭉쳐서 먹으라고 주면
그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두부집도 어마어마하게 큰 물탱크에 햐얀두부가 담겨져 있었다
손 칼로 자르기에 조금이라도 크게 잘려진 부분을 찾으려고 눈을 크게 떠야했다
콩나물집도 자주 다녔는데 개량바람이 불어 물 콩나물이 나오자 밥하는
언니는 물 콩나물을 사오면 씻기가 편하므로 좋아라했고 까만
재에서 기르는 콩나물을 사오면 엄마가 맛있다고 좋아하셨다
이렇게 말 잘듣는 나에게 한가지 크나큰 주문이 들어왔다
우리집 우물은 연중행사로 물을 퍼내고 소독을 하는데
우물을 푸는 날은 모든 식구들이 다 모여 하루종일 물만 퍼낸다
구경도 한두 시간이지 지루하여 동네꼬맹이들과 놀고있을 때
큰일난 듯이 엄마가 부르신다 가보니 우물 안에 아버지 밥그릇이 빠져있는데
나보고 그것을 건져오라는 게다 말 잘듣고 심부름 잘하는 아이가 것두 아버지 밥그릇을 이라니
선뜻 들어가겠노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땐 우리 집에서 내가 몸무게가 가장 가벼웠으므로(?)
영광스럽게도 뽑혔는지도 모른다
난 팬티만 입고 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방방이 가운데를 밧줄에 꽁꽁 묶어 양쪽을 발판 삼아
밧줄을 잡은 채로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물은 거의 퍼내고 바닥에만 있었다
난 아버지 놋밥그릇을 주어들고 우물 밖으로 나오려니 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조그마한 동그라미에 하얀 하늘이 보이고
알아볼 수 없을만큼 작은 가족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 빨리 올려달라 하니까
이양에 내려갔으니 우물 안 청소를 하란다 남아있는 물을 바가지로 퍼서 양동이를 채우면 올려가고
채워놓으면 올려가고.... 바닥이 드러날때까지 우물안 물을 박박 긁어 퍼내었다
마지막엔 날더러 바가지를 쓰고 옆가장자리고 서라했다
그러더니 소독약을 섞은 물을 우물안 돌틈 벽 사이사이로 마구 끼얹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더럽혀진 물까지 모두 퍼내고 나니 그때서야 방망이가 달린 밧줄이 내려와서
가볍게 그 밧줄을 타고 세상 밖으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