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
백남이
엄마 심부름을 하면서도
천천히 하늘을 쳐다보고
주저앉아 들꽃 보며
해찰하는 정이와
쑥개떡을 싸서 들고
앞산을 오르기로 했다
늘 빈손에 늦게 오거나
때때로 약속을 저버리는
산 넘어 한이가 따라 붙겠단다
저도 제 앞산을 오르겠지
정상에 이르니 낮달이
먼 산 위에 떠 있다
고모*
후배의 노모가 치매에 들었다는 소식에
신혼이 끝나고 인생을 살겠구나
어른은 철학을 하시겠고
자연스러운거지 그렇게 사는 것도 복이라고
내는 오빠*도 가뿟고 없다
뉴스에 기가 찬 비보가 날아들면
고모는 지레 온몸이 찔리는 겁에
추모시를 쓰지 못하고
부산 갈맷길부터 낙동강 올렛길 몽골사막
물 따라 길 따라 경계를 넘어 걷는다
발 디딜 때마다 업고 온 가족들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철이가 종철이가 못 밟은
조국의 땅과 세상의 너른 곳도
세월의 무게만큼 겨워졌으니
고모, 이제 천천히 걸으세요
고모는 1987 이후 모습도
심미안 있는 사람들 눈에 드는
시들지 않는 사랑, 역사 속에 핀
붉은 맨드라미꽃이라는 것을요
* 고모 : 박정애 (부산작가회의 시인)
* 오빠 : 박정기(박종철 열사 부친)
카페 게시글
지난호 읽기
시 두 편
앞산 / 백남이
김명아
추천 0
조회 25
24.07.11 16:40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