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잔묵(殘墨) / 김연주
은하수 추천 0 조회 58 18.11.06 21: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잔묵(殘墨) / 김연주

 

글씨 쓰다 남은 먹물 버릴 수도 있지 누가 뭐래나.

말라빠지게 동댕이칠 수도 있지 쓸모없다고

 

긴 시간을 정성들여 갈고 간 먹물인데

버릴 수도 마르게 둘 수도 없네

 

묵향(墨香)이 진해진 남은 먹물

사군자(四君子)를 치지요

무한(無限)희열(喜悅) 맛 볼 수 있어

 

살다 살다 남은 인생(人生)

찌꺼기 인생(人生)

버릴 수도, 내동댕이칠 수도 없는 여생(餘生)

 

나 잔묵(殘墨)이 되어

검은색이 희게 될 때까지

한 방울도 버리지 못할 겁니다.

 

- 시집 殘墨(조광출판사, 1976)

........................................................

 

<잔묵>은 신성일의 어머니 김연주 여사가 1976120일 회갑연에 맞추어 출간한 시집이다. 이 시집엔 어머니에게 바치는 신성일과 엄앵란의 글도 수록되어있다. 신성일에겐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대구 어머니와 영덕의 어머니, 그렇게 두 분 어머니가 계셨다. 신성일의 부친은 대구농협조합장 시절 직원이었던 김연주 씨와 결혼하기 위해 영덕의 본처와 이혼을 했다. 하지만 본처와의 사이에 자식도 셋이나 있고 하여 그 후로도 서로 왕래하며 배다른 형제끼리도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신성일은 대구수창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방학만 되면 영덕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영덕 어머니는 무학이었지만 그에게 따뜻이 잘해주었다고 한다.

 

신성일의 큰형(강신우 회장, 강석호 의원의 부친)은 포항에서 트럭 6대를 가지고 소규모 운송업체를 운영했었다. 포항과 영덕을 오가는 화물을 실어 나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는 대한통운이 전국을 지배하는 최대 운송회사였다. 김연주 씨는 남편의 별세 후 경북도청 초대 부녀계장으로 봉직했다. 그때 네짱(일본어로 누님)”이라 부르며 따랐던 박태준 씨가 포항제철사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우리 아들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박태준은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포철의 일감을 삼일운수에 나눠주었다. 이를 계기로 큰형의 회사는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삼일그룹으로 키워 집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또 둘째 형 강신구 공군 소장은 대한민국 공군이 세계 4번째로 F-4D를 인수할 때 직접 조종간을 잡고 K2기지로 착륙시킨 장본인이었다. 김 여사는 양가의 자식들을 가리지 않고 친아들처럼 여기며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도왔다고 한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먹물이었고 인텔리겐치아였다. 여느 집안이라고 다를까만 신성일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하늘같은 존재였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그런 그가 어머니로부터 따귀를 얻어맞은 일이 있다. 이태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 고부간의 갈등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때 어머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어머니께서 나가서 사셔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겠으나 어머니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일찍부터 남편 없이 살아오면서 막내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으신 분이기에 경아 엄마는 제가 데리고 살 여자이지, 어머니가 데리고 살 여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한 마디에 어머니는 며느리 앞에서 그의 따귀를 후려쳤던 것이다. 노여움 가득한 음성으로 불효자식!”이라며 두 번째 손을 날렸을 때 그는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버렸다. 바로 쓰러져버린 어머니는 한참 후 냉수를 마시고 일어나서 생각해보자.”그러셨다. 그 뒤로 정릉에 보아둔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 집에서 홀로 소일하며 묵을 갈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끼적이기도 했던 것이다.

 

내 선친은 공무원하실 때 대한부인회에 간여한 김 여사와 업무적으로 약간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 인연으로 워커힐 북새통 결혼식에도 갔었고 여사의 서울 회갑연에도 참석하신 걸로 기억한다. 신성일의 선거운동 기간 우리 집에 들른 엄앵란과 어머니가 잠깐 나누시던 이야기도 들었다. 어머니는 엄 여사가 나왔더라면 단박에 됐을 낀데라고도 했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스포츠신문에 연재된 그의 화려한 연애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도 현영의 몸매가 내 스타일이라느니, ‘임예진의 몸이 생각보다 예쁘다느닌 여배우들을 품평한 바 있다. 신성일은 정치바람에 얼룩은 좀 졌지만 평생 거침없이 사랑했고 폼 나게 살았다.

 

그가 폐암 진단을 받고는 담배도 오래 전 끊었고 운동도 꾸준히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며 어머니 돌아가신 뒤 3년간 매일 추모의 향을 피웠는데 그 연기를 들이마신 게 원인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폐결핵으로 사망한 부친의 가족력 유전일 가능성이 높다. 그도 아니면 운명인 것을 어쩌랴. 그는 훗날 건국대 국문과를 나왔을 정도로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구속되어 있을 때 독서와 운동을 양껏 할 수 있어 좋았다고 어느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오래 전 KBS <낭독의 발견>에 출연해 신성일 선생이 낭독한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그 음성이 아련하게 재생된다.

 

권순진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