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교수 컬럼
호르무즈 해협의 검은 구름
서울공대 엡진 2020 No. 118
김효철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정년퇴임 후 인하대학의 정석물류통상연구원의 연구 교수로 재직하던 2009년 여름 부산의 중소기업인 ㈜동현시스텍으로부터 선형 시험수조 관련 계측기 사업의 기술 지원을 요청받았다. 공과대학이 공릉동캠퍼스에 있던 시기에 저항 추진 교과목과 소형 중력식 선형 시험수조 실험실을 담당하였었고 관악캠퍼스로 이전할 당시 실험실의 이전 실무와 예인 전차 방식의 현대적 실험시설을 계획하고 건설하는 실무 경험이 있었다. 또 관악캠퍼스에 새로운 실험시설을 마련하고 퇴임하기까지 시설의 책임을 져 왔을 뿐만 아니라 학회의 선형 시험수조 연구회 활동을 통하여 국내의 연구기관들과 폭넓은 협력관계를 이어왔었기에 스스로 전문가라 생각하던 문제이어서 흔쾌히 요청에 응하였다. 마침 정부가 지원하는 고경력 과학기술자로 중소기업지원사업에 참여 신청하여 2012년 4월 테크노 닥터로 선임되어 정기적으로 부산을 다니며 기술고문으로서 동현시스텍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였다. 당시 ㈜동현시스텍은 새로운 선형 시험수조를 준비하고 있던 이란의 Mowj Parda Kish University : MPK와 발주단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기술협상을 하여야 하였다. 이란이 힘을 기울여 실험시설을 마련하며 한국의 중소기업을 찾게 된 데는 미국의 규제를 피하며 장비를 사들일 수 있는 나라 중에 우리나라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제 제재로 이란은 달러화나 유로화로 무역거래가 불가능하였는데 이란에서 원유를 사들이는 우리나라는 원유 대금과 상계처리가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란은 계획 초기에 유럽의 계측기 제조사들과 기술적 문제의 상담을 이어가며 장비 대금을 지급하는 방법을 여러 면에서 검토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다자간 중계무역을 거쳐 장비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상당수의 계측 장비를 구매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으나 계획하고 있는 계측 시스템 전반을 공급할 수 있는 계측기 회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더러는 관심을 두는 회사가 있었으나 실험시설의 요구 조건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어려움과 시설의 목적을 의심하여 제품공급을 포기하였다. 이란으로서는 최종적으로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나라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가 남게 되어 10여 명으로 대표단을 구성하고 세 나라를 순방하며 장비 공급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이란은 시설공급자의 의견을 듣기에 앞서서 이란 국내의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단순하게 보이는 수조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에 들어간 상태이었다. 축조 중인 선형 시험수조는 길이가 390m이고 폭이 6m이며 깊이가 4m로 계획되어 있었다. 발주하려는 예인 전차는 최고 속도 19㎧에서 6초간 실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예인 전차를 1.5㎨ 이상으로 가속 또는 감속할 수 있어야 하는데 레일에서 차륜이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가속도가 0.6㎨를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이 현장에서의 경험이었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예인 전차가 미끄러지지 않으며 가속할 수 있는 특수한 구동 방식이 필요하여 레일의 측면에서도 구동하는 새로운 구동 방식을 제안하였고 이란은 이 제안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동현시스텍을 예인 전차와 부대 계 측기기의 공급자로 선정하였다. 예인 전차의 새로운 구동 방식은 4개의 차륜은 레일 위를 단순히 구르게 하고 8개의 차륜을 수평 방향으로 배치하여 구동하는 방식이다. 그림과 같이 한 쌍의 수직 모터에 수평 차륜을 연결하고 차륜이 레일의 옆면을 높은 압력으로 눌러주어 레일과 차륜 사이에 충분한 마찰력을 얻어 미끄러짐 없이 추진력을 얻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란에서 방문한 대표단의 기술진들은 새로운 구동 방식의 타당성을 이해하고 동현시스텍의 예인 전차를 구매하기로 합의하였다. 새로운 구동 방식을 제안하고 구매자의 실험 목적에 가장 적합한 예인 전차가 되도록 사용자와 긴밀한 협의를 거치며 기본설계 시안을 마련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실험시설의 목적이 일반상선의 성능 평가에 있으며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연구는 이란 해안에서 고속으로 운항할 해상 앰뷸런스를 개발하여 주민의 의료 지원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라 하였다.
해상 앰뷸런스로 운항하는 목적이라면 선박의 규모를 쉽게 가늠할 수 있으며 운항 속도도 상식선에서 추정할 수 있다. MPK 대학 수조 치수에 가장 적합한 모형선의 크기를 기준으로 모형시험을 한다면 예인 전차의 속도를 5㎧로 하더라도 40knot급 앰뷸런스 개발에 필요한 모든 시험이 가능하였다.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45knot급 고속 함정을 개발하는 실험에도 10㎧의 속도면 충분하였다는 예를 제시하며 새롭게 건설하는 시설의 효율을 고려하여 예인 전차의 속도를 낮추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MPK 대학에서는 선박의 고속화 추세와 학문적 관심에서 전차의 속도를 결정한 것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결국, 예인 전차에서 사용하는 계측기기는 실험 목적에 따라서 적합한 규모로 설계하기로 합의하고 예인 전차 설계를 하였다.
MPK 대학과 이메일을 통한 협의를 계속하며 설계를 진행하여 최종 협의 단계에 테헤란을 방문하였다. 일주간 체류하며 설계 협의를 마치고 시간을 내어 수조 건설 현장을 방문하였다. 대학의 정문은 바바아이 하이웨이 쪽에 면하여 있었으며 정문 경비실에서 확인을 받아야 캠퍼스 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문의 오른쪽으로는 훈련용으로 쓰이리라 짐작되는 Sepehr 공항이 있었으나 항공기는 보이지 않았고 MPK 대학이라 하였는데 캠퍼스에는 학생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2013년 두 번째로 현장을 방문하였을 때 비로소 정문에서 왼쪽이고 도로가 5각형으로 둘러싸는 구간을 공과대학이라 하였다. 최근의 Google 위성 지도에는 공과대학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한글로 임시 휴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Google 위성사진으로 찾아보면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Imam Hossein University가 표기되어 있고 그 우측에 비스듬하게 보이는 기다란 회색 구조물이 선형 시험수조이다. 수조 건설과 예인 전차 설치와 시험 운전을 위하여 여러 번 현장을 찾았는데 여전히 학생은 눈에 띄지 않았고 공사 현장을 벗어나 캠퍼스 내부로 들어가 보지 못하였다. 공사 계약은 MPK 대학이었으나 당연히 관계가 있어야 할 공과대학은 현재의 지도에는 임시 휴점으로 표기되었으며 공사 기간 중 듣지 못하였던 Imam Hossein University가 새로이 출현한 것이다. 시설이 준공식에는 이란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듯하였는데 현지에 파견되어 작업하던 기술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행사 현장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대학의 실험 수조라 하였던 수조는 현재 National Iranian Marine Laboratory :NIMALA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수조의 아래쪽 삼각형으로 보이는 공간에 대규모 실험 시설을 계획한다며 계획 검토를 요청하여 오기도 하였다.
예인 전차를 설치하는 기간 중 MPK에서는 하루 시간을 내어 조선소를 방문하자고 제안하여 함께 Hormuz 해협의 Bandar Abbas를 방문하였다. 소형 수조를 계획하고 있던 대학과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ISOICO 조선소 그리고 고속선 조선소 등을 보게 되었다. ISOICO 조선소는 국내의 대형 조선소보다 넓은 대지를 활용하고 있었으나 건조 활동은 침체한 듯이 보였다. 고속선 조선소에서는 해상 앰뷸런스로 사용하기 위한 선박이라며 다수의 FRP 선박을 건조하고 있었는데 한동안 경정 보트 생산에 적용하였던 선박을 자동차 생산과 같은 방식으로 생산하는 시스템 기술을 이들에게 전수하여 주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리라 판단하였다.
이란으로부터는 주문받아 새로이 설계하여 납품한 고속 예인 전차와 각종 계측 장비를 순조롭게 납품한 후에도 선형시험과 관련하여 한국의 연구기관들과도 지속적인 교류를 희망하여 왔다. 다른 한편으로 이란은 조선소의 생산기술을 향상할 생각에서 한국이 이란의 조선소에 설계도서와 조선기자재를 공급하고 한국 기술자의 지휘 감독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조직을 만드는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계측기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다루기 어려운 규모여서 조선소와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여 보려 하였으나 촘촘하게 쳐진 미국의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러는 과정에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갈등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점차 격화되었는데 2019년 05월 15일에는 사우디의 정유공장이 무인기에 의한 공격을 받는 일이 발생하였다. 2019년 06월 13일에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2척이 피격되었으며 2019년 06월 20일에는 미국의 정찰용 무인 항공기가 격추되었다. 또 2020년 01월 04일에 미국은 이라크 공항을 찾은 이란 혁명 수비군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를 무인기로 공격하여 살해하였다. 이들 사건의 배경에는 이란의 잘못이 있다며 미국은 해협의 통항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병력파견을 하는 한편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항로에서의 통항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공동활동을 요청하였다. 우리나라도 아덴만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에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하여야만 하였다.
사진 출처 조선일보
사진 출처 연합뉴스
이와 같은 중동지역에서 불안이 고조되는 기간 중 계측기기를 공급하며 이란의 호르무즈 해역을 방문하였을 때를 되살리게 되었다. 고속선 전문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던 선박은 해상 앰뷸런스라 하였으나 필요한 시점에 일부 개조 작업을 거치면 어뢰정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었다. 또 필요 이상 높은 속도를 요구하였던 배경에는 어뢰와 같은 수중 물체의 실험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일기도 하였다. 특히 당시에 호르무즈 해협에는 석유 경기의 퇴조로 수많은 초대형 유조선들이 계류상태로 있는 것을 떠올리었다. 만일 많은 선박이 계류된 상태라면 해협을 통과하는 대형 유조선 몇 척만 피격되어 항로에서 운항 불가능 상태에 빠지면 항로에서의 통항이 크게 제약받으리라 생각하였다. 혹시 자부심을 느끼며 설계하여 이란에 공급한 계측기기들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검은 구름을 일으킬 수 있는 공격 능력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