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 내 삶의 봄날을 찾아 봄 글: 이애현 수필가
새벽 공기가 차다. 쏟아진 봄 햇살로 여기저기 고개 든 고사리 생각에 몸과 마음이 안달이다. 서둘러 고사리 밭이란 곳으로 향했다. 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이다. 너무 일찍 왔나 생각했는데 웬걸, 도로를 조금 빗겨서니 새벽을 가르며 달려와 주차한 차량들이 즐비하다. 고사리를 찾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주차한 차량은 많은데 사람들이 없다. 어둑새벽, 어둠을 휘휘 가르며 너른 들판을 탐색 중인가 보다.
고사리 꺾을 준비를 끝내고 따뜻한 차 한 잔까지 마시니 어둠이 걷혔다. 목장 안길, 시멘트 포장길 따라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욕심은 끝이 없는 걸까. 사물을 분간하며 주위를 살필 수 있는 시야의 한계가 너무 좁다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 했다. 도로 오른쪽 방향으로 보노라면 왼쪽에 있는 것들을 놓치는 것 같다. 다시 그쪽을 바라보면 이내 반대편 것들을 자꾸 놓치는 것만 같아, 눈과 마음은 한없이 분주한데 손에 쥔 것은 하나도 없다.
고사리 꺾으러 나선 인파로 이맘때면 야산은 항상 붐빈다. 마침 휴일인 데다 엊그제 비가 내려줘서 그럴까. 고사리 하나에 사람 하나더라는 말이 맞다. 들판이 넓다지만 여기저기 사람도 많다. 밟았던 길 가고, 또 다른 이가 다시 거쳐서 가기를 반복했는지 고사리가 안 보인다.
여태 두어 줌도 못 꺾어 다른 쪽으로 옮길까 생각하며 등성이 풀숲, 작년 고사리 이운 흔적 따라 후미지고 경사진 곳을 가로질러 올랐다. 소나무와 덤불로 덮인 한 어귀. 그 짧은 이동에도 솔가지는 손톱을 세우고, 무리 진 찔레며 억새 숨죽인 곳에선 짊어진 가방과 발길 따라 바짓단을 징긋징긋 잡아 비튼다.
야산 속, 많은 발길이 오갔겠지만 눈에 안 밟혔나 보다. 통통한 것들이 모도록이 키 자랑을 하고 있었다. 우리 거실 크기 남짓, 사람 손이 탄 적 없는 고사리 밭이다. 오호~ 횡재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눈은 다음 꺾을 고사리 찜하느라 분주하다. 행여 누가 다니다 여기로 올까 봐 숨도 크게 못 쉬겠다. 꺾은 것을 가방에 담을 틈도 없이 움켜쥐었던 고사리는 옆에 놔두고 정신없이 다시 꺾었다.
두어 시간 심심하게 헤매다 이곳에서 꺾은 고사리로 가방이 제법 빵빵하다. 인정과 여유는 곳간에서 나온다 했던가. 새벽을 가르며 왔으나 눈인사도 제대로 못 나눈 찔레꽃과도 눈 맞춤을 했다. 고사리 찾아 헤맬 때엔 모자며 가방이 가시에 걸리는 바람에 짜증 나던 찔레가 아닌가. 가만 보니 하얀 꽃이 녹색 가지와 어우러지며 야산의 한 허리가 휠 듯하다. 곱다.
생각지 않게 얻은 즐거움과 소소한 기쁨이 계절 안으로 깊이 들어온다. 고사리 꺾으러 나선 길에서 밋밋했던 시간 위에 떨어진 횡재처럼, 삶에도 때때로 이런 행복이 그득 묻어날 때가 있다. 지치고 힘든 게 삶인가 생각하다 보면, 어디선가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더러 성취감에 도취되어 날아갈 것 같은 시간들이 마련되기도 한다. 세월을 밟는 동안 묻어 두고, 잊혔던 기쁨들이 곳곳에 왁자하지 않을까.
시간 내 찾아보면 삶의 봄볕 같은 날들도 꽤 있었을 듯하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잊고 또 서두느라 놓쳤을 뿐. 아까 손 안 탄 고사리 밭처럼 세월에 놓치고 흘린 줄 모르게 흘린 소소한 기쁨을 찾아봐야겠다. 비 오고 나면 계절의 걸음도 한층 빨라질 것이다. 마음의 메모장에 오늘은 이렇게 써야지. 이 봄, 내 삶의 봄날을 찾아 봄.
출처 : 제주일보(http://www.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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