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과 그 딸 / 최아란
잠든 아기의 기저귀를 간다. 새것을 엉덩이 아래 깔아 놓고 젖은 기저귀를 빼낸다. 잠결에 순서가 엉키면 오밤중 빨래 대소동이 벌어진다. 자고 있을 때가 아니면 더 부산스럽다. 순식간에 몸을 돌려 포드득 내빼는 녀석. 차분했던 큰애와도 다르고 내 순발력도 전과 다르니 아이 여럿을 키운대도 노련해질 수 없는 일이다.
미동 없이 자는 듯하여 기저귀를 여미지 않고 잠시 펼쳐 둔다. 온종일 버스럭거리는 일회용 펄프 안에 갇힌 여린 살이 안쓰럽다. 혹시라도 오줌이 나오면 얼른 덮어야 하기에 아기 음부를 노려보는 꼴을 하고 있다. 암막 커튼까지 친 어둠 속에서 온 감각을 집중해 그곳을 쳐다본다. 작을 뿐 아를 것이 없지는 않은 여자 몸. 내 모습도 저렇겠지 생각하니 남세스럽다. 두 딸을 키우며 한 번도 남 앞에서 기저귀를 갈지 않았던 이유였으리라.
우리 엄마도 딸 둘을 낳았다. 그것도 연년생으로. 태아 성별 확인이 불법이던 시절, 태동이며 진통까지 첫째 때완 확연히 달랐다는 엄마는 둘째를 낳고 사흘을 울었다고 했다.
"딸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장손을 봐야 한다든지, 아들을 키워보고 싶어서도 아니었어. 불쌍해서, 내 딸들이 불쌍해서 울었다. 이 핏덩이가 앞으로 여자로 살아갈 일이 애처로워서. 지독한 생리통을 겪고 심한 입덧에 목숨 걸고 애를 낳아야겠지. 여자니까, 엄마니까 참고 차별 받고 눈치 보고 두려워해야 하겠지. 나처럼, 내 아이가 그걸 또 겪어야 한다는 게 기가 찼다. 부디 남자로 태어나 모든 걸 피했으면 싶었어."
남동생들보다 공부를 잘했던 장녀는 서울 진학을 양보하고 2년제 교육대를 나와 일찍 밥벌이를 시작했다. 결혼해 시부모 빚 갚아가면서도 집 평수를 늘렸고, 출산한 지 한 달도 안 돼 학교에 나가 남의 애들을 가르쳤다. 시동생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어르신들 상 치르고, 친정아버지 병원비 대고, 동생들 살림까지 돌보는 큰누나이자 맏며느리였다. 가부장적이지만 성실한 남편의 아내, 순하고 영리한 딸들의 엄마로 사는 건 물론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희생하며 버틴 구석이 어찌 없을까. 아첨꾼처럼 비위 맞추고, 배알도 없이 인내하고, 두 배로 뛰어다니면서도 반 토막밖에 가져갈 수 없었던 서러움이 양수와 함께 눈물로 쏟아져 나온 것이리라.
다시 아기를 음순을 바라본다. 너무 하얘서 인형 같고 그림 같은 살결. 당장은 기저귀 데는 일만도 까마득하여 이 아이가 소녀가 되고 아가씨가 되고 엄마가 되는 일 같은 건 상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영 오지 않을 일은 아니다.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사는 일. 이미 정해진 일이고 벌써 하고 있는 일이다.
나는 울지 않았다. 내가 여자로 살면서 우는 날은 있었지만 내가 여자를 낳아서 울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낳은 여자만이라도 덜 울게 하리라 각오했다.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고 또 내가 그녀들을 여물게 키울 거라고, 아기 머리통을 내보내느라 찢고 꿰맨 아랫도리가 쓰라려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나는 마음먹었다.
딸들 앞에 놓인 모든 자갈을 치워주고 매서운 공기를 걷어내 줄 순 없지만, 내가 위로받았던 고운 뜰에 손잡고 데려가리라. 내가 헛디딘 돌을 피하게 하고, 내가 깨달은 약간은 교묘한 노하우까지 일러주리라. 여자라서 좋은 날들을 부풀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의 절망 또한 숨길 생각은 없다. 가지지 못한 것에 감사해야 가진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법이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되어 당황한 딸들이 질끈 용기 내보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포기하고 싶을 때 꺼내 보라고 주신 사부님의 비법 주머니까지는 아니더라도 시행착오를 고해하는 오답노트 정도는 되고 싶다. 식은 도시락통 안에 든 작은 쪽지이기를, 나도 너처럼 이곳에 왔다 갔다는 낙서라도 되고 싶다. 할머니와 어머니로 이어진 어미라는 종의 역사가 나를 통해 너에게도 전해졌음을 일러주는 문장이 되고 싶다. 내가 자꾸 글 속에서 애들을 끄집어내고, 어머니의 둥실한 허리에 매달리고, 할매 빈 젖에 파고드는 이유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거대한 텍스트다. 그 장구한 컨텐츠를 담아낼 미디어가 아쉬울 따름이다. 종이는 평면적이고 캔버스에선 시간이 멈춘다. 악기는 음정과 음정 사이, 박자와 박자 사이를 표현할 길이 마땅찮고 필름 또한 국한적이다. 그래도 인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더라면 역사는 아무것도 누적하지 못했을 것이다. 증오나 자부심도, 지혜나 반성, 교감과 상식 같은 것들이 실존을 공증하지 못한 채 소문처럼 떠돌다 휘발돼 버렸을 것이다.
내 딸들이, 너무 소중해서 덜컥 겁부터 나는 세상의 딸들이, 갑자기 양수처럼 서러움이 터지고 젖샘이 눈물샘으로 전이될 때, 그 여린 동지들을 달래줄 만한 마음을 언어로 일궈 둘 수만 있다면. 나는 온 힘을 다해 나를 사랑하고 성장케 하는 너희들과 종이로 쓰여진 나무 앞에 체면 차릴 수 있으련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