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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된 일이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남자 아이들의 팬티 디자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하루는 학교를 갔다 오더니 “엄마, 친구들이 나더러 여자라고 놀려요”그러는 거였다. 어디로 봐도 내 아들이 여자 애 같은 구석이 전혀 없어 의아스러워 “왜?”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기가 막혔다. “엄마, 팬티 앞에 구멍이 없는 앞이 막힌 여자 팬티 입었다고 친구들이 여자라고 놀렸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어지럽기까지 했다. 아, 이런 것이 문화쇼크라는 것이로구나. 그 이질감이란… 그 말을 듣자마자 난 일본 아이들이 내 아들을 왜 놀렸는지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다. 큰 애가 입고 다니던 팬티는 한국에서 산 거였다. 일본에 처음 와서 보육원을 보낼 때 어린이용 일본 팬티를 사 입히고 싶었는데 값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한국에 갈 때마다 팬티나 런닝, 양말 등을 사다 입혔는데, 남아용 일본 팬티와 한국 팬티는 모양이 확실하게 달랐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남자 팬티는 앞 부분이 터져 있는 게 많다. 최근에 성인용은 터진 모양만 있고 앞이 막혔거나 아예 막힌 디자인이 많아졌지만, 어린이용은 아직도 막힌 건 없는 것 같다. 그 후론 팬티가 아무리 비싸도 일본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로 사 입혔다. 당시새삼 느낀 것이지만 나라마다 아이들이 입는 속옷이 이렇게 다르구나, 아주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아이들에겐 팬티 한장으로 남녀의 성을 구분지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 준 사례였다. 보육원 때에도 당시 인기 있던 가면라이더가 그려진 신발을 사주니까, 보육원에 가서 친구들에게 마치 자기가 가면라이더가 된듯 신발을 자랑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현실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다른 게 너무도 많다. 초등학교 때 아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일본 엄마들은 꼭 과자 1봉지라도 간식을 아이들 편에 챙겨 보낸다. 그러다 보니 빈 손으로 오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개중에는 개인 물통까지 가져와 목이 마르면 가져온 물을 먹는 아이도 있다. 물값이 얼마나 한다고, 아이들이 마시면 얼마나 마신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 한국인들의 생각이고, 남의 집에 가면 시끄럽게 하고 폐를 끼친다고 해서 꼭 주의 사항을 일러주며 최소한의 간식을 싸서 보내는 게 보통의 일본 엄마들이다. 물론 아이들과 엄마들끼리도 친해지면 허물 없이 지낸다. 보통의 경우, 잘 모르는 집에 아이를 보낼 때는 절대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 건 우리와 다르지 않나 싶다. 요즘엔 작은 아이가 학교 가서 선물을 자주 받아 온다. 선물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지만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다 왔다며 디즈니랜드 마크가 찍힌 손바닥만한 과자 한 봉지, 혹은 지방에 사는 할머니 집에 다녀왔다거나 온천에 다녀왔다면서 열쇠고리나 손가락만한 작은 곰 인형 등 아주 자잘한 것이지만 마음이 담긴 선물이 대부분이다. 큰 애도 일본 학교를 다닐 때는 꽤 자주 받아왔던 기억이 난다. 일본 아줌마들이 한국에서 선물을 사다가 나눠주는 걸 보면 더 재미있다. 예를 들면 봉투 하나에 커피믹스 5개, 1회용 옥수수차 5개, 립 밤 1개, 초코파이 2개 정도를 넣어 예쁘게 표장해서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사온 선물이라며 하나씩 돌린다. 일본에서 없는 것으로 이것저것 조금씩 넣은 한국 문화랄까 한국 물건의 맛보기용 선물이다. 통 큰 한국인이 보면 쩨쩨하기 그지없는 양이라고 한 마디 할 지 모르지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최대한 성의 표시를 한 선물 구성이다. 그래서 한국인 거리로 유명한 도쿄 신주쿠의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한인 거리 슈퍼에서는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한두 개씩 넣어 파는 선물용 포장 상품도 등장했다. 금액은 적지만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선물을 선호하는 일본인들 쇼핑 성격에 맞춘 상품이다. 우리 아이들도 한국에 가면 친구들에게 준다며 인사동이나 이마트에서 책갈피,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과자, 스이카 카드(일본의 교통 카드) 뒷면에 붙이는 스티커, 지우개, 샤프 펜슬 등을 사와 나누어 준다. 일본어로 선물은 오미야게(お土産)인데, 뜻으로는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다. 그곳을 가야만 살 수 있는 그 지역의 특산품을 선물로 사오는 게 일반적이다. 내가 일본에 살면서 가장 많이 받은 선물은 쌀로 만든 교토의 선베와 찹쌀떡이다. 쿄토를 자주 가는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 학생이 아들 집에 갔다 올 적마다 사다 준다. 이 역시 금액으로 치자면 아주 소액이지만 교토까지 가서 나에게 줄 선물을 사왔다는 그 마음을 생각하면 결코 작은 선물이 아니다. 여행을 가서 누군가를 생각하고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선물을 받으면 진심으로 좋아하고 고마워 한다. 반면 무조건 비싼 것, 큰 선물을 선호하는 우리 한국인에게 작은 선물도 진심으로 감사해 하며 주고 받는 일본인들의 오미야게 스타일은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선물은 마음으로 받아야지 값으로 환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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